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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댁에 갔어요..


BY 블루 2001-08-13

남편이랑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9개월된 아들이랑 시댁에 갔습니다.
며칠전 친정제사가 있어서 남은 음식 싸들고 말이죠.

바로 어제 남편한테 침튀기면서(^^) 왜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일꾼으로밖에 여기지 못하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건만 저보다 손주를 더 반가워하시는 시어머니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손자만 예뻐하시고 저 아는 척 안하면 담부턴 애비랑 얘만 보내고 저 안올거예요." 몇 번을 연습했는데.. 표정관리까지 해가면서.. 못하겠던걸요..ㅠㅠ

어머님 저더러 밥하라시더군요..
힝~~
왜 시댁에는 밥통에 밥이 없을까요?
전 막내며느리라 윗동서이신 형님이 계시면 말 그대로 시다바립니다.
저도 잘 할 수 있는데 어머님은 맏며느리를 더 미더워 하시죠..
뭣 좀 하려면 "너거 동서 어디 갔냐? 찾아 봐라.. 동서 시켜라.."
하시는데 형님 뵙기 민망해서 정말 형님한테는 깨갱이죠..

울 형님 가게 가시고 아주버님 아직 출근 안하셨길래 기회 포착하고 제사음식 남은 거랑 찌개랑 냉장고에 있는 반찬 죄다 예쁜 그릇에 담아서 말 그대로 점심상을 잔치상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

어머님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아주버님 "우와" 울 남편 어깨에 힘 주고 있더군요..
저보고 속으로 그랬을꺼에요..울 남편..
'저 여우... 이뻐 죽겠따아~~~' ^^;

실컷 차려놓고 밥 먹을려는데 바로 아랫집에서 갈비집하는 큰 시누 절 불러요... 단체손님 들어왔으니 좀 차려달라네요.. 허걱~~
몇 년인데 아직 적응이 안돼요.. 식당일 좀 힘듭니까? 몸에 밴 일도 아닌데...

열심히 부지런히 뛰어다니다가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니 어머님 미안한지 얼른 밥 먹으라며 밥 퍼줍니다..
에궁~~ 잘 차려놨던 상이 개밥상 됐네요...
며느리는 새 밥상에서 같이 밥을 못 먹는 법이 울 나라에 있답니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아직 체한 게 안 내려가니.....

엄청난 설겆이에 허우적대다가 주방 반짝반짝 빛내놓고 보니 울 남편 아들이랑 딴방에서 자고 어머님은 저보고 반색을 합니다..

"아이구. 야야.. 어깨고 허리고... 어제 뭘 잘 못 들었더니.. 어쩌구.. 군시렁..."
주물러 달랍니다.. 주무릅니다.. 한 시간을..
어머님이랑 TV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합니다. 주로 제가 하죠...
어머님 저와 대화하는 거 무진장 좋아하십니다..

몇 시간 자던 어머님 아들과 제 아들이 깨어났습니다..
이젠 제가 피곤하네요..
저녁 먹고 가라길래 밑의 식당에 내려갔더니 시누 표정이 안 좋아요..
엄청난 단체손님 가고 나면 그릇 걷어내고 치우는 거 안 도와줬다고 그러나 봅니다.. 전 고개도 까딱 안합니다. 모른체 여우같이 "형님 고생하셨죠?" 애교떱니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비벼 가지고 와서 남편이랑 급하게 먹기 시작했죠... 울 남편 야간에 출근해야 하거든요..

어머님 저 다음달부터 학습지 교사하는거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남한테 애를 어찌 맡기냐.. 너거 엄마는 안 봐주신다더냐.. 울 엄마 환잡니다.. 알고 물어보시는 시어머니 짜증났지만 용케 표정관리 했습니다..
"어머니,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요.. 안 그럼 요즘 누가 애 맡기고 일하겠어요? 어머님이 봐주실 것도 아니면서.." 울 어머니 꿀먹은 벙어리 됐습니다. 남편도 암말 못합니다.

그러더니 울 아들 보고 좋아라 물고 빨고 하십니다. 이거(?) 가고 나면 눈에 며칠씩 삼삼하다고 하십니다. 33....
자주 오라는 말씀인 것 같지만 역시나 전 끄떡도 안합니다.

어머님께 쌀을 달래서 차에 실었습니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해야지..." 말 못하는 울 아들 핑계대고 인사하고 시댁을 빠져 나옵니다. 앗차~~ 큰 시누한테도 인사합니다.

역시나 오늘도 시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블루는 오늘 이 일들을 쌀값이라고 생각하고 맙니다...

저 참 편리한 성격이죠?

선배님들 오늘 하루 잘 정리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