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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어다 준 돈 다 어쨌노?


BY 하소연 2001-09-14

너무너무 속이 상하고 살기가 싫습니다.
그래도 힘들다고 푸념할 수 있는
속상해 방이 있어 제게는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결혼해서 6 년동안 아기 키우느라 딱 1년 쉬고 계속 일했습니다.
조금씩 전세를 늘려가고
시댁에 서운하게 안 하려고 어려운 가운데 인간 도리 해 가며
알뜰하게 살았습니다.
아주버님이 하는 무역업이 재미를 좀 보았는지
우리 남편한테까지 바람을 넣었나봅니다.
같이 하나 해 보자고 3천만뭔을 투자하라고 권했나 봅니다.

제가 그 돈이 어디 있나요.
먹고 죽을래도 없지요.

남편은 퉁명스럽게 그러더군요
그 간 내가 벌어다 준 돈 다 어쨌냐고.
둘이서 벌었는데 그 돈도 못 모았냐고.

기가 막혀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래, 내가 다 삶아 먹었다 어쩔래..

눈물만 나옵니다.
알뜰살뜰 사느라 고생 많다고 격려 한 번 안 해 주면서
어째 저런 소릴 할까.
그래도 자기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친구들 만나고 할 짓은 다 하고 다니면서..

제가 그 돈을 다 어쨌을까요.

보증금 천 만뭔에 월세 30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시작을
남편은 잊었을까요.
반지하에서 물난리때 하수구가 넘쳐
울연서 똥물을 퍼 내던 그 때들을 잊은걸까요.
아직도 그 건물에 살고 있지만
지금은 2층에서 전세 6 천만원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 가게 확장 자금으로 1 천만원이 더 들어갔죠.

피나게 절약하고 억척을 떨어서 그나마
이런 모양이라도 갖추고 살게된 걸..

이제 와서 벌어다 준 돈 다 어쨌냐요.

남편이 이렇게 밉기도 처음입니다
집을 나가 버리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데 아무런 의욕이 안 생깁니다.

오천 원, 만 원짜리 티쪼가리나 걸치고 사는 나는 뭡니까.
지금은 새벽 1시 15분이고 이제
날이 새면 오늘부터 절대로 여태까지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당장 미용실도 가고
오며 가며 눈도장을 찍어둔, 제 눈에는 너무 예뻐 보이는,
지하철 역 앞의 옷가게에 걸린 정장도 사 버릴 겁니다.
가을에 어울리는 립스틱도 새로 하나 살거고
젤 친한 친구 불러내서
갈비탕도 한 그릇 사 줄랍니다.
그리고 그토록 망설이던 우리 딸 학습지도
신청할 겁니다.

혼자 아끼며
마음 고생하며 살지 않을랍니다.

정말 남편이 밉습니다.
부글부글 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