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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갈등


BY 난초 2001-09-16


나는 젊어서는 옷욕심이 거의 없었다.
몇천원 짜리 티조각을 입고도 괜찮았다.
욕심이 너무 없어 아주 가난한 남자를 만났는데도 개의치 않고
결혼했다. 정말 백치에 가까웠다.
결혼후 옷 한벌 사입기까지 몇년이 흘렀다. 어떻게 그렇게 지독하게
살 수가 있었는지, 물론 나는 결혼전에도 좋은 옷에 대한 욕심은 그렇게 많이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사람도 변하나 보다.
주름살이 생기고 온몸에 군살이 붙으니
이제 나도 영낙없는 중년아줌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차츰 이 늙음과 가난함을 좋은 옷으로 카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을 나는 중년이 넘어 마흔 문턱에서야
가지게 되었다.
좋은 옷 입어 안 예쁠 여자가 있겠는가?
옷이 날개라는 말은 아닌게 아니라, 진짜 맞는 소리였다.
그러나 웬만한 옷은 2,30만원을 호가한다. 나의 경제적 형편이란 것은 아직도 좋지가 않아서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없다. 아무리 객기를 부려봤자, 한 두 번 입고 말 옷이지 계속 매번 그런 중상가의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나는 항상 중저가 의류매장을 맴돌게 된다.
마음은 중상가 옷에 가 있는데, 현실은 중저가 옷에 적합하니 불만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카드빚을 져가며 무리하게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무모한 용기도 없는 주제라서, 나의 이 변변치 못한 모습이 스스로도 한심해 보인다. 요즘엔 가난하다고 해서 꼭 싼옷을 입는 것도 아닌데, 돈을 옷에 치중하지 못하는 내 성격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돈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텐데....
자식이 커가면서 드는 사교육비도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 그렇게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에게 돈을 들여가며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도 내게 스트레스를 준다. 차라리 그 돈으로 내가 입고 싶은 옷이나 실컷 사입지, 하며 사교육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교육비를 들여도 공부엔 관심없는 아들의 성적은 그대로 요지부동이니 괜한 돈 낭비다 싶고,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되기도 한다.
자식을 위해 내 욕구를 희생해가며 사교육비를 들이는 것은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보통 아줌마라면 누구나 다 겪는 심정일 것이다.
정말 한국 학부모 노릇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 공부엔 관심도 없는 애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공부상 차려놓고 한자라도 더 익히게 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가엽다. 마치 밥 안먹는 애, 한술이라도 떠먹이는 엄마의 모습이다. 나는 내가 이런 엄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슨 애가 밥도 그렇고 안 먹고, 공부도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지, 애를 먹이고 신경을 쓰게 하는지, (나는 내가 다 알아서 했는데)...
그런 애 붙잡고 바둥대며 살아가는 내 인생이 싫다. 엄마노릇도 엄마노릇이다. 난 왜 이렇게 주어진 역할마다 힘든 역할을 하는지...죽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기가 쉽지 않다. 눈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잔소릴 안 할 수가 있을까?
내 인생은 넘 많이 변질되었다. 타인에 의해...남편에 의해, 자식에 의해...
차라리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자식을 위해서도 나을 지 모른다. 자식은 엄마가 자기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제는 그러면서 시키면 하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안 시킬 수도 없고, 작은 효과를 얻기 위해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속 상하다.
사교육비로 어느날 왕창 백화점에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서 사들고 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