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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청와대 관람 사건


BY abuba99 2001-09-23

어제 청와대 관람을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하도 황당한 경험을 해서 방금전 청와대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항의문을 남기고 왔는데요. 저 혼자만 열받고 있는건 아닌지, 혹 내가 너무 오버하고 있는건 아닌지(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아줌마닷컴을 찾았습니다. 이런 일로 처음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서 유감이지만 한번 들어와봐야지 하며 미뤄왔던 일이 이런 식으로라도 이루어지게 되었느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하여튼 각설하구요. 제가 청와대 민원실에 보낸 항의문부터 우선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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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친을 모시고 경복궁 관람을 갔었습니다. 내려가시는 기차시간이 한 세시간 쯤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 궁궐 관람을 하면 좋겠다 싶었죠. 제 동생과 저. 아버지까지 어른 세명과 저의 아이들(세살, 다섯살)을 데리고 였습니다. 그곳에서 청와대 관람 셔틀버스가 있더군요.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 같아 궁궐 관람 대신 약 50분 가량 걸린다는 청와대 관람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 타기 전에 신분증을 착용한 청와대 경호원(버스 승차시 신분증과 관람권을 검사하는)에게 분명 질문을 했었습니다.

-전체 관람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한 50분쯤 걸립니다. 차에 타시면 자세한 방송이 나옵니다.
-버스가 다시 여기로 오나요?
=관람이 끝나시고 분수대 근처에서 기다리시면 이 버스(셔틀버스)가 오는데 그때 타실 수 있습니다.
-그걸 타면 여기 경복궁 안으로 다시 들어올수 있는거죠?
-예.

셔틀버스의 개념은 분명 데리고 갔다가 원래의 위치에 데려다 주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번 정도의 갈아타는 불편이 있다고 해도 처음 버스를 탔던 곳으로 올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청와대 관람 버스를 탔습니다만 결과는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50분 동안의 청와대 관람은 전부 도보로 이루어집니다. 따가운 가을볕에 아이들 둘을 데리고 환갑을 맞으신 아버님을 모시고 관람을 마쳤는데요, 끝난 다음 문제의 그 분수대 부근에서 관람내내 우리는 경호(?)했던 청와대 경호원 소속인지 비서실 소속인지 그 분들은 모두 사라지시고 없더군요. 멍청하게 길을 건너서 효자동 사랑방인가 그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렸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습니다. 거기 경비서는 분들에게 물었더니 정확한 시간도 모르고 여기까지 안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 사람들과 우리는 소속이 다르기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겁니다.
결국 아버지와 동생은 택시를 타고 먼저 서울역으로 가셨습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아이 둘을 데리고 가까운 전철역이라도 가기 위해 저는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곳은 워낙 빈 택시를 잡기 힘든 곳이라는 걸 아는 사람을 아는 사실입니다. 결국 경복궁 동문 쪽(옛 프랑스 문화원) 으로 와야 하는 저는 청와대 앞길에서 경복궁 길을 따라 죽 걸어와서 국립 민속박물관이 있는 서쪽 문으로 들어와 다시 경복궁 입구쪽으로 한바퀴를 빙 돌았습니다.
애초에 분수대 앞으로 온다고 하던 그 셔틀 버스는 왜 오지 않았는지, 제가 거기서 기다리고 다시 경복궁 쪽으로 걸어오는 동안 셔틀버스 비슷한 그림자도 못보았구요. 애초에 운행이 안되는 것으로 밖에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열이 받을대로 받은 저는 처음 청와대 관람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서 항의하기 위해 경복궁 안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벌써 철수하시고 없으시더군요.

이 점에 대해 정식으로 청와대 관련부서쪽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청와대 관람 자체에 대해서도 불쾌한 점이 몇가지 있었지만 여기서는 셔틀버스 운행에 대해서만 말씀드렸습니다.
처음부터 셔틀버스가 가기만 하고 출발했던 곳으로 오지는 않는다고 말하셨다면
여유롭게 경복궁 관람이나 하지 청와대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50여분 동안 대부분 도보로 이루어지는 관람이었고 정해진 대열을 이탈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땡볕에 서서 사진찍는 것이 끝날 때까지 대열 안에서 기다려야 하는 황당한 관람이었습니다. 마지막의 <오지 않는 셔틀버스>는 최악의 마무리였구요. 좋은 구경 했으니 궁궐 담을 따라 한가하게 산책 한 셈 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기에는 제가 너무 약이 올랐고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했으며 저 역시 콜택시를 부르고 싶을 만큼 피곤한 상황이었습니다.

늘 이런 식으로 셔틀버스가 운영되는지 잘못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구요. 너무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생전 처음으로 민원 신청이라는 것까지 해보게 되었네요. 관련 부서의 담당자께서는 제 이메일로 정식 사과문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심심하거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긴 내용을 글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진지하게 읽어주시고 반드시 사과문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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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인데요.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웬 청와대 관람? 하고 웃어넘겼겠지요. 하지만 시골내려가셔서 자랑이나 하시라고 또 그런대로 색다른 구경거리가 될 듯싶어서 버스를 탔던 것이 그만... 다리힘좋고 낭만이 넘쳐흐르는 분들은 화창한 가을날 궁궐담을 끼고 산책한 셈 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앞선 관람으로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 아이들 둘을 하나는 안고 하나는 차도로 들어가지 않게 신경쓰면서 그 긴 길을 걸어내려오기가 엄청 약오르고 힘들더군요. 다행히 중간 못미쳐서 구멍가게가 하나 있던데 거기서 아이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먹였거든요. 생각같아서 아이스크림 값 1400원과 택시비(타지는 않았지만 걸어온 수고를 감안하여)까지 청구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서면으로 사과문만 받겠다고 올려놓았는데..............과연 어떤 답장이 올까요? 제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요? 참고로 저는 그흔한 라디오 사연 편지나 경품타기 엽서 한번도 보내보지 않았고, 뭐 불합리한 일을 종종 당해도 다 그렇지뭐 하고 넘어가곤 했던 약간은 우매하고 선량한 아줌마류였는데요. 청와대 민원실로 데뷔를 하게 되니 참 황당하단 생각이 들긴 드네요. 긴 글인데,,, 이런 사연 남겨도 되는지 걱정도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