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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술 한잔 했다.


BY 지나다 2001-09-25

오늘 하루 종일 백화점 안을 맴맴 돌았다.시댁 식구 추석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아기를 대여한 유모차에 태우고 무얼사면 좋을까 고민하며 돌고 있는데 아기가 자꾸 안으라고 징징거린다.좀 안다보면 내려 놓으란다.유모차도 싫단다.걷게하면 물건 잠깐 보는 사이 없어지기 일쑤다.
그렇게 하면서 하루 종일 시댁 식구에게 줄 선물을 장만했다.시어머님 시아버님 시댁조카 4명 형님들 선물을 사니 족히 50만원 이상이 날아갔다.제비는 따로 드려야 한다.
울 남편 평범한 회사원이다.하지만 내가 이렇게 무리를 하는건 시댁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나 예전부터 주윗사람들에게 좋은 평-알뜰하다거나 착하다거나 하는-을 많이 들었지만,울 시댁에선 날 첨부터 좋아하지 않으셨다.형님도 어머님과 짝짜꿍이 되어 나를 곤경에 빠뜨리곤 한다.그렇다고 우리 친정이 문제가 있는 집안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울 부모님 두 분다 평범한 공무원이셨다.
물질적으로만 노력하는건 아니다.명절 제사까지 일년에 8번인 제사 빠지지 않고 꼭 갔고 열심히 일했고 어머님께서 그리고 형님께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예예 했다.그렇게 살았다.그래도 안되니 물질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통하지 않는 일이나 이번에도 한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울 남편 워낙 효자라 결혼전 제사 명절 생신 어버이날은 물론 집(울 시댁)에 내려갈 때마다 선물을 한보따리 들고 가고 해외 출장 갔다 올 때도 한보따리 들고 왔단다(해외 출장시에는 결혼 후 2년 정도는 계속 그랬다.그것 때문에 100만원이 넘게 나온 카드대금으로 부부싸움도 많이 했었다).시댁이 장사를 하시는데 그 일 도와주는 건 기본이다.다른 형제들 낮잠 잘 망정 울 남편은 가게일을 돕는다.
그러던 남편이 결혼하고 명절 생신 어버이날에 며느리가 챙겨주는 선물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신다.우리 남편더러 결혼하더니 아무것도 안 사온다고 변했다고 하신다.그나마 다른 며느리가 사온 물건은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우리 맏며느리가 사온거다 라고 하시면서 내가 다리품 팔아 없는 돈 탈탈 떨어 사온 물건은 항상 우리 작은 아들이 사온거라고 하신다.
백화점에도 싸게 사려면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는 물건도 있지만 난 언제나 정품을 세일 가격이 아닌 제 값에 산다.우리 남편 형제들이 다 서울 물을 먹어서 어떤 브렌드가 고가품인지 아닌지 빠삭하게 안다.더구나 시누들은 백화점 다니길 좋아해서 어떤게 한정판매인지 세일제품인지 훤하다.그리고 우리 시어머님 선물사오면 꼭 가격을 물으신다.하지만 난 거짓말은 못한다.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다 나타난다는걸 나 스스로가 알기 때문이다.
나 한번은 형님에게 선물했다가 빠꾸 당한 적도 있다.이런거 너나 갔다 입으라구.
오늘 하루 종일 고심하며 다릿품 팔며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아기 잡아가며 물건을 샀는데...... 참 서글프다.
오빠가 일이 잘 안되서 부모님 퇴직금 다 날리고 빈털털이로 사시는 우리 친정 엄마 아빠 이런 물건들 구경도 못하고 사시는데......동생은 이제겨우 직장 잡아 다음 달 부터 출근하고.
우리 부모님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시댁에나 잘하고 살아라 하셨지만,나밖에 부모님 챙겨줄 사람이 없는데 그나마 나도 시댁눈치보랴 친정부모님은 신경도 못 쓰고.......
나 지금 술 한잔 하며 이 글 쓰고 있다.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쿨쿨 잠만 잘 잔다(알 턱이 있나).
엊그제 전화에 추석때 들릴거냐는 울 엄마말이 웬지 쓸쓸하게 들렸다.
일이 잘 안되고 직장까지 잃은 큰 아들데리고 사는 부모심정,더구나 돈 한푼없이........ 울 엄마 말이 감옥에 갖혀 사는거 같단다.
친정부모님도 신경 쓰면서 살고 싶지만 너무너무 죄송하지만, 난 나 자체만으로도 살아내기가 너무 힘겹다.더구나 어려서 오빠는 귀남이 난 후남이로 살았기 때문에 친정부모님의 지금 이런 상태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솔직히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