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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죄송합니다.


BY 사이다 2001-10-22

이제는 글로 좀 옮길수 있을 것 같네요.
지난 추석 저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서 지금까지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너무 긴 소설이 되겠지만 일단 추석때 일만 하지요.
저희는 막내지만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시댁에서 같이 살죠. 시댁에서 산다고 하지만 마음편하지는 않아요.
세상 천지에 자기 몸만 아는 시아버님, 75세라는 연세에 무슨일을 벌렸는지 빚이 9천만원이 되어 본인이 다죽게 생겼다고 아들들에게 빚갚으라고 심심하면 한번씩 온 집안을 뒤집어 놓습니다.
하긴 그래도 신랑이 중간에서 잘한면 여자는 참고 살지요. 우리 신랑 결혼 4년동안 사업한답시고 여기저기 빚만 끌어쓰고 생활비 한푼 내놓지 않네요. 점점 무서워 지는건 시아버님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거구요.
지난 9월 한달 우리 신랑은 외박을 한 7일은 한 것 같습니다. 전화 한통없이요. 저 밤잠 제대로 못자고 출근해서 하루종일 비몽사몽으로 지내다 퇴근해서 아기 챙기고 집안일 했습니다.
추석때 아주버님들이 오셨기에 제가 아주버님들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발 동생에게 정신차리게 얘기좀 한 번 해 달라고요. 평소에는 천사표를 자처하는 시어머님, 좋은 명절날 그런 얘기 하란다고 저게 한마다 하더군요. 제가 그랬습니다.
그럼 언제하냐고, 명절이니 모였을 때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때부터 기분이 별로 안좋았겠지요. 우리 어머님이요. 추석 당일날 점심까지 먹고 나서 본인 딸들은 몇시에 온다고 했는데, 왜 안오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며느리 셋에게는 전화로 안부전하면 그게 찾아뵙는거나 마찬가지라 하더군요.
계획에도 없던 고향의 선산을 간답니다. 선산이 좀 멀거든요. 그 잘난 신랑 저에게 처가에는 고향 갔다와서 가잔 일언 반구도 없이 자기 고향 간다기에 그럼 저는 버스타고 친정간다고 했습니다. 나는 버스타고 가니 아기는 어머님이 데리고 가라 했습니다. 어머님과 남편과 다른가족 어른 4명이 승용차로 가기에 그렇게 하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어머님 뒤로 넘어 가시더군요. 그러면서 저한테 명절날 분란일으킨답니다. 이제 4년 참아놓고 그런답니다. 본인은 평생을 참았답니다. 저도 평생 참고 살아서 내 자식들이 신랑 즉 아버지를 지금 우리들이 아버님 미워하듯이 그렇게 되길 바라시난 봅니다. 그리고 내 망쳐버린 내 인생도 책임질수 있나 봅니다.
말이 안되니 형님이 한마다 거들더군요. 4년을 참아도 하나도 바뀌는게 없으니 동서가 속이상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나중에도 우리 형님은 잘했답니다. 한번을 내 속을 표현해야 한다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아기 데리고 가랬다고 한번 한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면서 자기가 아기를 뺏어가더군요. 저 그때 알았습니다. 먹고 살아볼려고 어머님께 아기 맡기로 직장생활한건데 키워주신 권한이 그렇게 큰 건지 그때 알았습니다. 그럼 어머님도 저에게 돈 잘버는 신랑만서서 가라고 하셨으니, 우리 이혼해도 할 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길로 저 집을 나와서 밖에서 이틀자고 신랑이 다시 한번만 자기에게 속는셈치고 믿어 달라는 말에, 우리 아가 잘 키워야 되지 않겠냐는 말에 들어와서 삽니다만, 아직까지도 어머님을 뵐때면 그 모습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그렇게 이중적이라고 항상 생각하게 되고 솔직히 같이 밥먹기도 싫습니다. 저 벌받아도 좋습니다. 어머님은 다른 집안 일 때문에 신경이 날까로운 것 까지 너에게 다 화풀이 했다고 저보고 이해라하고 미안타고 하셨지만 저 아무 대답도 안했습니다.
그동안은 어머님이 너무 고맙고 뭐든 없는 능력이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어머님은 항상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은 어머님 생신입니다. 하지만 식구들 다 모이는게 너무 싫습니다. 식구도 한 30명정도 되니 장난아닙니다. 모든 어려움을 넘어서 어서 어머님을 다시 전처럼 생각하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심란해서 하소연좀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