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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등신인가?


BY 알고싶다 2001-10-29

내가 아는 사람들이(이웃 주부들이) 날보고 등신이랜다.
나도 처음에는 내 별명이 등신인지 몰랐다.
하루는 우연히 길을 지나는데, 이웃 아줌마 둘이서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말을 하고 있었다.
'등신같이 왜 그러고 사나 몰라. 나 같으면 벌써 도망갔겠다'
'그러니까 별명도 등신이지. 하여튼 사람이 좀 맹하지'
아파트에서 이사가고 싶다.
그렇지만 남편 직장 가족들은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

남편은 한달에 2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작년까지는 170만원정도 받았는데 올들어 회사 사정이 좋아져 월급이 많이 올랐다.
작년까지 우리는 시골에 홀로 계신 시모님께 월 20만원씩을 드렸다.물론 시모가 안고 있던 빚도 우리가 갚아 드렸다(1000만원 정도)
물론 위로 형님들도 계시지만 그들은 시모의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시모 성격이 워낙 괴팍해서 명절때만 얼굴을 삐쭉.
물론 돈은 한푼도 없다.
우리 시댁 무지 가난하다.
시골에 있는 거라곤 작은 집 한채와 조그만 텃밭 하나가 전부다.
나머지 농토는 시부의 병원비로 확 날라갔다.
우리 시모 별나다.
동네에서 소문난 노인이다.
시골동네에서 친구하나 없다.
거기에다가 질투심은 하늘은 찌른다.
동네 노인 누군가가 좋은 물건 가지고 있으면 꼭 있어야 하는 성미이다.
그럴때마다 우리집에 전화한다.
시숙들 집에는 아예 안한다.
사이가 엄청나게 좋지 않아 아예 연락도 안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안해드리면 내게 욕을 나발나발하신다.
이년 저년에서 화냥년, 죽일년까지 나온다.
나는 욕듣기 싫어 달라는 돈 다 드려 버린다.
그러다가 우리 시모 암에 걸리셨다.
병원비, 바리바리 나간다.
적금 해약하고 월급봉투째 병원비로 나갔다.
그때 우리 시모 나이 70.
병원에서는 수술해도 2년정도라고 그냥 포기하고 진통제 드시다가 얌전히 돌아가시라고 했다.
우리 시모, 의사 멱살을 잡고 욕을 했다.
'**같은 놈아. 수술 왜 안해주냐'
의사 선생님, 별수없이 수술을 했다.
수술비, 모조리 우리 몫이었다.
그리고 2년동안 통원치료.
2년이 지나 또 다시 수술을 했다.
무슨 암이 또 수술하면 또 2년이랜다.
우리 시모, 또 의사 멱살을 잡아 흔들어 수술했다.
수술비 또 우리 부담이다.
그리고 또 2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수술도 안된단다.
우리 시모 마지막으로 몸부림이다.
집안의 가전제품을 모조리 바꿔 달라신다.
시댁에서 20분 거리인 우리집까지 와서 욕을 하는 통에 이웃 보기 창피해서 바꿔 드렸다.
아프다는 분이 근력은 나보다 더 좋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또 적금이 박살났다.
그러더니 어디서 나온 빚인지 또 빚이 있다며 갚으란다.
울 남편, 갚아 드린단다.
남은 적금 하나를 깨서 갚는단다.
내게는 한달에 생활비 40만원을 준다.
그 돈으로 전화요금에 핸드폰 요금, 인터넷 요금을 내고 나면 10만원이 덜컥이다.
남은 30만원으로 살림하고 출근때마다 남편 도시락 싸는데 너무 빠듯하다.
울 남편 내게 말한다.
'나머지는 니가 보태서 쓰라'
내가 무슨 재주로.
도둑질을 할까. 부업을 할까.
살림에 치여서 시간도 없는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런데도 우리 시모 전화를 한다.
'서방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그런 양반이 시부 아플때는 왜 그리 구박했던고.
동네 사람 말을 들어보면 우리 시부는 천덕꾸러기처럼 살다가 갔다는데, 그러면서 날더러는 훈계다.
남편은 하늘이라고.
실제로 남편은 내 앞에서 하늘 구실을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대접하고 싶지 않은데 영락없는 전제 군주다.
지 엄마 닮아서 성질만 더럽다.
대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운다.
특히 돈이 아까워서 퇴근과 동시에 땡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범맨이다.
손도 까딱 안하고 전제군주처럼 소리를 잘 질러서 탈이지.
한 마디로 성격이 아주 독선적이다.
좋은 점 반에 나쁜 점이 반인 남편인 셈이다.

우리 아파트에 남편과 한동네 출신인 아줌마가 있다.
이 아줌마는 완전히 중앙방송국이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는 물론 남편의 회사 직원 부인들도 우리집의 이런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
생전에 바깥 출입을 않는 내가 그래서 등신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걸 몰랐던 모양이다.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렇게 등신인가.
시모만 돌아가시면 편하겠거니 생각하고 버티고 있는데, 이런 내가 등신이라니.
하긴 결혼할 때 반지 하나도 못 받았는데 그 많은 돈을 갖다 바치고 있으니 등신은 등신인가.
결혼 7년에도 중소도시에 살면서 아직 전세 신세인 내가 처량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남편이 막내라서 결혼때 한푼의 보조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은 이제 안다.
그래도 등신이라는 말은 좀 그런데 내가 그렇게 등신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