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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 들어보실래요.. 좀 깁니다.


BY 남편 감시하기 2001-11-01

우리 남편은 야근이 많은 직업입니다.
집에 항상 늦에 오죠.
연애 기간동안 거짓말 한번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믿었습니다.
야근에 철야까지 해도 불평 한번 안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남편의 핸드폰을 무심히 본 나는 놀랐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거의 매일 똑같은 여자의 이름이 찍혀있는겁니다.
발신자 표시를 해 놨으니 찍혔겠죠.
남편한테 물었습니다. 누구냐고..
자기 회사 여직원이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왜 매일 통화를 하냐고 하니까..
집이 멀기도 하고(택시 태워 보내니까 걱정 된다나요?)..
요즘 회사일로 많이 힘들어해서 자기가 도와도 주고, 위로도 해 주는거랍니다.
(그 여직원이랑 우리 남편이랑 10살 차이가 납니다. 저랑 남편이랑 대학 같은과 커플인데.. 그 여직원도 우리과 후뱁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찌 매일 야근 하면서 일일이 걱정을 하냐구요.
그렇게 걱정되면 일찍 퇴근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관계면 밤 늦게 통화하지 말고 회사에서 얘기 끝내라고 했습니다.
알았다고 하더니 더 이상 통화를 하지 않더군요.
한번 의혹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자꾸 남편이 핸드폰을 보게 되더군요.
가끔 음성사서함에 전화도 걸어 확인도 했습니다.
011-200-8585 아시죠.. 011 음성사서함 센터인데.. 비밀번호만 알면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다른 이상한 것이 없더군요.

얼마 시간이 흐른 후였는데.. 어느날 아침에 남편 핸드폰에 문자 메세지가 와 있었습니다.
그 여직원이었어요.
- 감기약 꼭 드세요. 또 잊지 마시구..
- 너무해요 치~
이런 두 개의 메세지 였습니다.
이런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리고.. 너무해요 치~.. 그 의미는 무엇일까..
결혼한 남자.. 부인이 어련히 감기약 잘 챙겨 먹이지 않을까 별 걱정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냐.. 남편을 닥달했죠.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화해서 그 여직원한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집안에 일이 있어서 일에 대한 점검을 못해주고 퇴근을 했는데..
그것때문에 다른 상사한테 혼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메세지를 보낸거라네요.
10살이나 어린 직원이.. 아무리 친하다고 그래도 그런 메세지를 보내도 되는거냐고 남편한테 지랄아닌 지랄을 했죠.
한번만 더 그러면 그 아이 부모한테 말을 하겠다고 엄포도 놓고요.

의혹이 더해가니까 핸드폰 가지고는 성이 안차더라구요.
남편의 메일을 보고싶은 생각이 드는겁니다.
우리 남편은 회사 메일이어서 다른 사람이 볼 수가 없는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 메일을 볼 수 있게 된겁니다.
각 메일마다 외부 메일을 불러서 볼 수 있게 해 놓은것 있잖습니까..
그걸로 남편의 메일을 불러봤더니 오더라구요.
(다행히 비밀번호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확인을 했습니다.
한 달 넘게 아무 이상한것을 찾을 수 없었는데..
며칠전 한 개가 걸렸습니다.
그 여직원이 메일을 보낸겁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한 달에 한번.. 말일쯤만 되면 너무 걱정이된다. 조심한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건 어쩔 수 없다
그것때문에 짜증내고 귀찮게 해서 죄송하다..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어짜피 결과는 뻔한데.. 자기를 이해해 달라..
이 메일 보시면 바로 지우라고..-
그 메일을 읽는 순간 몸이 떨리는겁니다.

바로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실은 그런 메일을 봤다.. 그거 무슨 말이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남편.. 무슨 오해를 했냐고..
그러면서 얘기를 해 줍니다.
그 여직원이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데 매달 생리때만 되면 몸이 너무 힘들어지고 가끔 쓰러지기도 한다는겁니다.
병원에 가서 약도 먹고 조심을 해도 말일때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아프답니다.
우리 애가 심장 수술을 한 적이 있는터라.. 그것때문에 우리 남편한테
그럼 얘기를 한 거랍니다.
그러면서.. 자기 메일은 어떻게 봤냐고 묻습니다.
그런거 왜 묻냐고 했더니.. 자기 회사 보안과 관련이 있어서 알아야 겠다고 합니다.
그 여직원이 그 메일 보면 바로 지워버리라고 한 것도.. 회사의 다른 직원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안가르쳐 준다고 소리를 지르고 끊어버렸습니다.
좀 있다가 그 여직원한테 전화가 왔더군요.
다 죽어가는 목소립니다. 잔뜩 쫄아서..
진작 찾아뵙고 인사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우리 남편한테 많이 혼났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오해할만한 메일을 보냈다고..
자기가 몸이 아프고 힘든데.. 우리 남편이 너 그렇게 빌빌거리면 짤라버린다고 엄포를 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힘들것 좀 알아 달라고 보낸 메일이라는군요.
잔뜩 쫄아서 전화한 애한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같은 회사 동료고 선후배 사이니까 가까울 수는 있지만 결혼한 사람이니까 좀 신경을 써 달라고 하고, 언제 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나도 같은 과 선배니까 어려워하지 말고 만나자구요.

이렇게 남편의 감시는 일단락 됐습니다.
남편의 회사 메일을 담당하던 직원은 엄청 혼났다고 하더군요.
가정주부한테 해킹을 당했다고..
그래서 이사님 이하 모든 직원의 비번을 고쳤다는군요.
저번에 그 비번 얼마나 쉬워는지 아십니까.
아이디랑 비번이 같았습니다.. 회사 사람들 모두가..
우리 남편조차 자기의 비밀번호를 모르고 있는거 있죠.
한 직원이 직원 모두의 메일함을 만들면서 임의로 비번을 만들어 준겁니다.
확인은.. 회사 컴퓨터에 바로가기 입력을 해 놓아서 확인을 하는것이고요..
그러니 맘만 먹으면 같은 직원끼리 남의 메일을 볼 수 있다는군요.
그러니 비밀스럽고 이상한 메일은 주고받을 수가 없겠죠.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것 같아서 속상하다는 남편한테 말했습니다.
그러게..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회사 사람들 얘기들을 평소에 잘 얘기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것 아니냐..
첨에 그 여직원과의 사이를 오해했을때 나를 잘 납득시키고 그 여직원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으면 많은 오해를 하지 않았을것 아니냐..
나 오해하게 자꾸 뭔가 숨기는 느낌을 주지 말아라..
그랬더니 이 남자 하는말.. 뭐 구차하게 일일이 회사일을 집에다가 얘기를 하냐고.. 더군다나 다른 직원 일을 뭐하러 얘기를 하?l니다..
휴.. 정말 남자랑 여자랑 이렇게 사상이 틀린겁니까..
어쨌든 이제 남편 감시하기는 힘들어 졌습니다.
아니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거 너무 힘들더라구요.

우리.. 부부간에 비밀없이 대화를 많이 하고 삽시다.
사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많은 대화를 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말주변 있는 사람도 아니라 그 흔한 메일 한 통 나한테 보내지도 않습니다.
집에 있는 휴일엔 시댁에 가느라 얼굴 맞대고 있을 시간도 없습니다.

믿는 수 밖에 없겠죠.. 그게 제 속이 편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