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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반성문.....


BY 파이링 2001-11-06

안녕하세요.
아컴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받아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다시 이렇게 글을 씁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많은 힘이 되었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많은 반성과 후회를 했어요.
지금은 프린터로 "잠깐! 우리 딸은 지금 행복할까"라는 문구를 대문짝하게 프린트해서 온 집안 곳곳에 붙여뒀어요.
화가 나고 꼭지가 돌려고 하는 순간마다 그 글귀가 눈에 들어오면 심호흡을 하고 감정을 추스립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웃는 얼굴로 애를 대하지요.
덕분에 그날 이후로 큰소리 한번 내지 않았습니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갑자기 악마로 돌변할 수 있음을 우리 딸은 이미 깨달았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없는 두려움속에 살 수도 있겠지요.
우리 딸의 마음 깊이 새겨졌을 상처를 생각하면....
정말 제 입을, 제 손을, 찍고싶습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잘 하려구요.

기억나시는지요.
지난 번에 울딸이랑 저랑 울 아들이랑 같이 엉엉 소리내서 울 때 엄마.....괜찮아.....괜찮아....라고 제 등을 쓸어주며 위로해 줬던 우리 딸 이야기.
그 딸이 바로 저희 딸이예요.
그렇게 착한 딸을 구박했으니 더 괴롭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부터라도 잘 하렵니다.

우리 딸은 수면장애가 있어요.
6-7개월부터 시작해서 밤잠이고 낮잠이고 잘 때면 한 두번은 꼭 깨서 벌떡 일어나서 울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달래지지가 않아요.
어떨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부딪혀서 기절할 듯이 울어대기도 하고요.
전문 병원에서 진찰 받은 결과 수면장애라네요.
아직 어리니 크면서 좋아질 수 있다고 치료는 보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 재워놓고 누리는 조금의 평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는 시간이 두려웠지요.
아무런 자극이 없이도 깨서 울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노크소리라던지, 라디오의 박수소리 같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깨서 난리를 쳤기 때문에 애가 잘 때면 늘 초긴장상태입니다.

그래서 전 큰 딸 낳고 지금 이날까지 잠다운 잠을 자 본 적이 없어요.
잠은 항상 모자라구, 집안 일은 산더미구(애가 자는 시간에 일을 못하니)애기 아빠는 항상 늦구....

애기 아빠는 지금 우리 둘째 놈이 한창 낯가림을 하는데 얼마나 아빠가 집에 없었으면 아빠 얼굴만 보면 울어댑니다.
아빠한테 낯가림을 하는거죠.
그정도로 집에 늦게 옵니다. 며칠 얼굴 못보는건 예사지요.

그리고 우리 딸 한대 맞을거 두대 맞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제가 결혼 전부터 예비시누한테 시달리기 시작해서 결혼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너무 시달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결국은 시누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사를 왔죠.
우리 딸을 임신하고 있었을 때 시누를 너무 미워했는지 우리 딸이 시누를 똑같이 닮은거예요.
눈매하며, 한 쪽만 들어간 보조개하며, 얼굴 형태하며, 고집피우고 떼쓰는 것 까지 어쩜 그리 닮았는지.
시댁 갈 때마다 친척들이 시누 어릴 때랑 똑같다고들 하는 통에 우리 딸이 떼를 쓰면 그 미운 시누 생각이 나서 더 화가 났었어요.

저는 이런 것들을 핑계랍시고 대고는 우리 딸을 더 구박을 했던 거였습니다.
맞아요.
모두 핑계였어요.
내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저에게 문제가 있음을요.

우리 딸은 고의로 엄마 너 골탕좀 먹어봐라 이러면서 장난치거나 말썽을 피우는 거 절대 아닌데 받아들이는 제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요.

우리 딸아이.....
정말 착하고 천사같은 아이.....
때리는 엄마 품을 다시 파고드는 우리 아이....

만일 우리 시어머니가 저에게 제가 우리 딸 대하듯이 했다면 저 아마 시어머니랑 인연끊고 살았을 겁니다.
내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펄쩍펄쩍 뛰면서 손찌검까지 한다면, 이유도 영문도 모르는 채 맞고 살고, 아랫 동서만 예뻐하고 구박만 한다면, 밥 때가 되어도 밥도 잘 안준다면 제가 살았겠습니까?
마음 깊이 원망만 했겠지요.

그래도 착한 우리 딸 오늘도 제 손을 꼭 잡고 잡니다.
동생을 앞집 아주머니가 데리고 가시면 당장 눈빛부터, 목소리부터 달라지면서 안아달라고 어리광입니다.
이제 겨우 26개월.....
저도 어린 아이인데.....
제가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산 것입니다.

저는 나쁜 엄마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요.

내 딸은 지금 행복할까.

당장의 행복을 위해 앞으로 절제도 예의도 모르는 공주로 키우지도 않아야 겠지요.

그래도 이 말을 항상 새길겁니다.

저는 더이상 제 안의 악마에게 지지 않으렵니다.

아컴의 여러분.
제가 잘못했죠?

이제라도 잘 할터이니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리플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