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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방어능력은 과연 몇 점일까?


BY 노일실 2001-11-08

선생님의 방어능력은 과연 몇 점일까요?

원주에 사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 어떡할까, 윤희 머리 자른 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스님처럼 밀어 버릴까?"
동생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미술교실 에서 이미 연락을 받은 상태였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딸아이의 머리를 본 동생은
도무지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든 모양이었다.
"아서라,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 속 동생에게 애초 롭게 말했다.
조카는 아직 네 돌이 채 되지 않았다.
요리조리 꾸며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바램에는 아랑곳없이 머리핀 하나 꼽는 것도 거부하던 사자 머리 조카는 그 나이 여자아이들의 통과의식처럼 서서히 공주병을 앓기 시작했다.
미용실조차 가지 않았던 아이다.
머리카락도 아픈지 자른다는 것은 엄두도 내질 못했다.
그 아이가 Y 미술교실에서 머리가 잘리웠다.
그것도 듬성듬성 머리 속이 보이도록 3분의 2가량이나 말이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는다면 아마도 남자들 군대갈 때 머리 모양조차도 만들기 힘들단다.
더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건 그 시간을 담당했던 미술교사의 말이다.
"머리야 또 자라는 거고, 엄마가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 방어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동생은 어미로서 귀가 잘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하찮게 취급되는 것에 울화가 더 치민다고 했다.
교사가 있는 시간에 터진 일이다.
머리가 길도록 그 긴 시간을,
싫다고 했는데도 자른 또래 오빠에 대한 미움과 조카의 상처,
그리고 동생과 제부가 어미아비로서 바라봐야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지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그리고 선생님이 운운하신
그 방어능력을 제대로 갖춘 교사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적어도 선생님은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과실을 인정하고,
조카와 동생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선생님 자신을 위하는 방어능력이 아니었을까?
동생 쪽에서 흥분했다고 해서
"그럼 제 머리를 자르세요"라고 하는 교사에게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바랄 수 있을 런지 묻고 싶다.
선생님,
조카는 매일 머리를 빗어줄 때마다 고개를 떨군채 소리없이 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