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쌕쌕대며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남편은 이번 주말도 모임이 있다고 집을 비웠다.
혼자 세탁기 두 번 돌리고,
애들 실내화, 신주머니 빨아놓고,
손빨랫거리도 다 빨아놓고,
허드렛물로 목욕탕청소 빡빡해놓고...
그래놓고도 잠이 안 온다.
냉장고에서 남편이 먹다 남긴 술이 없나 뒤지다가
반병 정도 남은 매실주를 보고 눈이 번쩍!
당근을 깎아 고추장에 찍어 안주삼아 우적거렸다.
쓴 쇠주보다 훨씬 달착지근하고 입에 붙는 매실주,
그래, 딱이다. 앞으론 매실주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남은 반병을 다 먹고나니 괜히 더 우울하고 슬프고...
돌아가신 친정엄니가 갑자기 보고싶고...
그런데 빨래 널러 몇 번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아깝게도 술이 다 깨버렸다.
어쩔거나?
그냥 뒤비 자버릴까?
아님 술을 사러 나갈까?
아님, 불빛환한 저 밤거리로 어우동처럼 분장하고 나서볼까?
잠시 갈등하게 된다.
오늘, 엄청 속이 상하고 우울한 일이 있어
그걸 잊고 푹 잠이 들려면 술이 약인데,
벌써 약발이 떨어졌으니 우야꼬?
가정주부들이 왜 혼자 술을 마시는지
전에는 몰랐는데, 진정 난 몰랐는데...
그런 여자들의 나약한 의지를 비웃었는데...
나도 별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흐트러진 내 자신이 안타까운건
아직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던가?
아자! 아자!!
내일 일은 내일 고민하고 그만 자러가야겠다.
어차피 살 날은 까마득하고
이렇게 잠못드는 밤은 또 얼마나 무수히 많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