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 종가집의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침에 아주버님이 출근을 하실 때 컨디션이 안 좋으셨는지 침대에서 배웅을 하셨다는 군요.
그런데 아주버님이 6시 30분 귀가 하셨을 때.
침대에서 주무시듯이 돌아가신 형님을 발견했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야말로 사후처리 였답니다.
만 60세 올 해가 회갑의 나이 이신데..
종가집 며느리..
정말 고되고 힘든 날들이였을 거라 짐작합니다.
내가 결혼 하고 두해 쯤 지나서 큰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그바람에 제사를 물려 받았으니.
아마 고인이 8~9년 동안 집안의 제사를 직접 모셨을 것 같습니다(물론 그 전 이라고 손 놓고 쉬지는 않았지요.)
시댁은 조상 따지고, 예의 범절 따지고, 가문 따지고, 정말 까다롭기 그지 없는 유교 사상이 자손 대대로 뿌리깊게 이어져 온 집안 입니다.
그저 평범한 집안의 맏며느리 위치도 쉽지 않고. 일복을 타고 난 듯이 어렵고 힘든 자리인데..
하물며 종부의 위치는 더 했겠지요.
그런데 내가 서러운 것은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다들 슬픔을 표하면서도 뒤로는 [천벌을 받았다.],[순리에 역행을 하면 다 그런 것이다.],[자업자득이다..]라는 등
말이 많더군요.
고인에게 장성한 아들만 셋이 있는데, 위로 둘을 출가 시키고 막내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주장 하기를 사당을 지어 사당에서 명절 차례와 제사만을 모시자고 했었지요,
자기 자식들에게 고된 종손의 자리와 종부의 자리에서 짐을 좀 덜어주고 싶어 하셨답니다.
난 충분히 이해할 것 같던데..
한 집안의 종부이기 전에 자식 갖은 어머니로서 자기 자식에게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나 또한 한 집안의 며느리 이지만..
난 솔직히 고인 처럼 할 자신 없습니다. 아니 못할 것 같습니다.
그저 간단한 대여섯명의 손님을 치루고도 다음날 꼬박 몸살을 앓는 나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지요.
고인이 한 집안의 종부로 들어와 살아온 수고로운 삶은 다 어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저 마지막 떠나기 전 집안 어른들과의 제사 문제로 붉어진 마찰만이 [자업 자득]이라는 소리와 [지가 한게 뭐가 있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참.. 어르신네들..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며느리가 뭔지..
종부가 뭔지.. 휴~~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