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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의 제 아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BY 알토 2002-02-28


저는... 결혼한지 3년된 주부입니다. 회사원인 남편과 평범한 일상을 꾸려나가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아이를 가졌구요. 그럭저럭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꾸 그런 불안감이 듭니다. 제가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잘 키울수 있을까... 함부로 대하며...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절 좀 도와주세요...


저의 부모님은... 어쩌면 만나선 안될 분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하루 세끼 밥도 못먹는 가난한 집에서 시골 중학교도 졸업못하고 중퇴를 했고, 엄마는 그 근처에서 외할아버지 땅을 밟지 않으면 걷지를 못할 정도로 부자집에서 태어나 객지로 나와 하숙까지 하며 유명한 여고를 졸업했습니다.


엄마는 졸업후 집에 있으면서 몇군데 선을 봤고.. 당시로선 부자집에 대졸인 남자들의 중매가 줄줄이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제가 보기에도 엄마가... 좋은 남자 만났으면 장관부인 정도의 그릇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떻게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선을 본 직후 병약하신 외할머니께서 쓰러지셨고, 오늘 내일 돌아가신다고 할 정도로 위급했습니다. 죽기전에 혼인시킨다고, 급하게 서둘러 선본지 한달만에 결혼을 시켰습니다. 물론 집은 가난했지만, 사람 됨됨이는 괜찮고, 고졸에, 자기집 한채 있고, 자기가게를 운영한다고 하여 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외할머니는 완쾌되었지만... 엄마는 기가막힌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얘기한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고졸이라던 것도 거짓말, 집도 없고, 자기 가게도 없고, 공장에 운전기사였던 것입니다. 엄마는 옷이며 구두며 다 맞춰입고 신으며, 돈에 부족함없이 자라다가 난데없이 한가구에 7명이 사는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가... 잘 하기라도 하면 되는데, 남존여비로 똘똘 뭉친분이라 배움도 짧고 사리판단도 못하시면서 넌 여자니까 무조건 따라야 된다고 강요하고, 잘산다고 유세떠냐고 윽박지르셨다지요. 엄마는 아버지의 자격지심을 건드릴까봐 숨소리도 못내고 살고, 외가에서도 왜 우릴 속였냐고비난 하기는 커녕 쌀이며 간장 고추장 반찬 등등과 때로는 돈과 제 옷이며 유아용품을 사서 보내면서도 부디 받아달라고 사정사정 했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자기가 번 월급을 몽땅 할아버지께 드리고 거기서 조금씩 타쓰자고 하더랍니다.(물론 엄마가 그건 필사적으로 반대했죠.) 곱게 자란 엄마가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물건살때 받아온 비닐봉지도 곱게 접어서 팔아가며 적금든 것을 몽땅 해약해서 할아버지에게 주고, 월급까지 가불해서 줬으며, 걸핏하면 찾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에게 밥해먹이고 용돈 줘가며 살림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습니다. 엄마의 희생속에서. 그러다가 엄마 생각에 돈도 배경도 지식도 없는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해봤자 아이들 대학도 못보내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할것 같아 두려웠답니다.


엄마는 건설현장을 알아봤고, 집짓는 것과 매매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설득해서 집장사를 하자고 했지요. 처음에 아버지는 월급쟁이 생활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으나 곧 현금으로 수천수백만원을 만지자 건축업으로 완전히 진로를 틀었습니다. 현재 평범하게 나마 먹고 사는 것은 그때 엄마의 결단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돈을 벌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아버지는 술을 엄청 마시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면 주사를 부리고 가족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엄마는 몇차례 병원에 입원했구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알콜중독자의 자녀는 자기자신을 항상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아들의 경우 아버지를 혐오하면서도 같은 전철을 밟기쉽고, 딸의 경우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만날수 밖에 없어'라고 생각하거나 똑같이 알콜중독남편을 만나 고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고 합니다. 또는 알콜중독을 피하려는 생각에 더 심한 결점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알콜중독만 아니면 된다 이거죠.


니까짓게 별거냐고 늘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저는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의견을 제시하면 대든다고 뭐라하고, 조용히 있으면 병신같이 쭈뼛댄다 뭐라하고, 사사건건 부정적인 말만 들으니 사람이 그야말로 병신이 되더군요. 그것도 정신적으로 어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말이죠.


저는 늘 '난 불행하게 될거야, 난 사회의 쓰레기와 결혼하겠지' 라는 생각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늘 하고 살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게 알콜중독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심리라고 하대요. 여동생도 왠지 모르게 그런 강박관념이 들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대요.


게다가 엄마는 평탄치 못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결혼이었기에 자식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냉정하고 무섭던지 저는 엄마에게 뭘 조르지를 않았습니다. 아직도 "잘했어? 잘못했어?"라는 다그침이 귀에 쟁쟁합니다.


게다가 엄마 역시도 자신의 좌절된 욕망과 힘든 결혼생활때문이었는지 늘 부정적인 말로 자녀들을 무시했죠. "감히 네가.. " "니가 뭘 해본들.." "해봐야 별수있어" "니가 하는거 다 그렇지." 화초를 키우며 니가 싫어, 죽어라, 바보같애 하는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려주면 화초가 말라죽는다고 하지요. 저와 동생 둘은 부정적인 두명의 정원사에게 시달리는 세포기의 어린 화초들이었습니다.


저는 갈길을 몰랐고, 중학교때 불량한 애들과 어울려 놀며 삶을 포기했습니다. 삶에 아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건... 아무리 어려도 알수 있답니다. 그때 제 친구들은 술집에 다니는 애와 다닐 애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술집에나 취직해야 겠다라고 생각했구요.


그런데.. 왠지.. 술집에 취직하면 부모에게서 벗어날수가 없겠더군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마음을 잡고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를 안하다 해서인지 재미있고 즐겁더군요. 성적이 오르니... 엄마가 저를 신경쓰더군요. 중학교 다닐땐 동네 챙피하다, 내가 너같은걸 왜 낳았나 모르겠다, 너만 안생겼어도 네 애비랑 벌써 헤어졌다.. 라며 온갖 욕을 하고 정도 주지 않더니 공부를 잘하기 시작하자 정을 쏟더군요.


전엔 밥먹는 것도 쳐다보지 않더니, 밥도 차려주고, 간식도 해주고, 데리고 나가서 옷도 사주며 뒤늦은 부모노릇을 하더군요. 누구나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부모애정이 무조건 적이라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못하는거 보단 잘하는게 좋고, 챙피하기보다는 자랑스런 자식이 좋지요. 이해는 되요. 근데... 용서는 안되더군요.


그때부터 그럭저럭 평범하게 지내왔고, 저는 점점 상처를 감추고 강인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고등학교를 잘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다 저의 신랑을 만났죠. 그런데... 그 넘치는 사랑을, 그런 사랑을 처음으로 받아보니, 기가 막히대요. 난생 처음으로 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신뢰하고, 감싸주는 그런 것은 처음 느꼈습니다. 저는 신랑과 만나서 즐겁게 연애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있는 어두운 그늘을 느꼈는지.. 그러더군요. 무슨일이든 자기가 다 받아주겠노라고...


저희는 매일 만나서 얘길 했어요. 그가 퇴근해서 오면 저녁을 먹고 그의 집에 가서 이런 저런 얘길하다 설움에 복받쳐서 울곤 했습니다. 이해되세요? 청춘남녀가 밤에 울며 얘기하다 잠든다면요. 저는 저의 모든 상처, 슬픔등을 모두 털어놓았고 늘 울면서 잠들었습니다. 20여년이 넘게 받아온 상처를 모두 털어내는 데는 6개월 정도 걸리대요. 6개월동안... 사랑한다며 내 얘길 모두 들어주고 따뜻하게 감싸안는 그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익숙하지 못했던 저는 그의 사랑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그러나... 그의 사랑안에서 저는 치유받고 이젠 상처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사랑을, 사람을 믿지 못하고 늘 어두운 표정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죠. 절 만나는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밝고 부드럽고 남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밝게 자란 사람같다고 하더군요. 그런 얘길 들으면... 기쁘기도 하면서도.. 약간은 씁쓸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것은 남편이지 부모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 제가... 가장 싫어하는 부모의 전철을 답습할까 그것이 너무도 겁납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잖아요.


저도... 제아이를 낳아서, "니까짓게" "니가 뭔데" "해봤자 뭐" 하는 부정적인 말들로 아이의 영혼에 상처를 줄까봐 두렵습니다. 매일 싸우는 부모밑에서 늘 불안에 떨고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날마다 자살을 꿈꾸며, 불시에 차에 치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길거리에 나가는 아이로 키우는, 그런 부모가 되기는 싫습니다.


저요? 지금.. 부모님께 잘 해드립니다. 남들이 아들보다 나은 딸이라고 부러워할 정도로요. 솔직히.. 부모님이 하신걸 생각하면 결혼을 기화로 남남으로 돌아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부모에게 연민이 들더군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싶구요.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도 싸울일이 생기고 의견충돌이 생기는데, 서로 얼굴본지 한달만에 공통점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이 그것도 한쪽의 거짓말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부모님 서로를 피해자이며 가해자로 만든거죠... 그러나.. 과연 아이들까지도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리라는..


그러나.. 저를 치유해준 남편의 따뜻하고 포용력있는 마음이.. 우리 아이도 잘 키울수 있겠지요. 저의 모든 상처도.. 극복되었겠지요. 저는 부모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저라는 다른 사람이기에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겠지요..


저와 같이... 부모의 부정적인 영향하에 자라서... 자신의 자녀는 올곧게 잘 키우고 계신 분 있으시면... 부디 좋은 말씀좀 들려주세요. 제가 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그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글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원래는 뭣좀 여쭤보려고 글을 쓰려했는데... 왠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넋두리가 되었습니다. 읽어주신분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