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5번째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뇌졸증으로...
살아생전에 고지식하고 독선적인 아버지가 미웠으나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생전에 잘해 들릴걸 하고 후회스럽다.
하지만 난 친정아버지 제사에 못갔다.
아니 안갔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린아이 둘 데리고 가기가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안갔다. 신랑도 마침 출장중이다
사실 아버지제사에 안간 이유는 따로 있다.
큰 올캐언니 보기가 껄끄러워서이다.
일은 잘하지만 너무나 박력이 넘치는 울 큰올캐 언니..
너무 부담된다. 아니 솔직히 무섭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큰오빠가 장가를 갔다.
육남매 중에 난 막내다(아들 셋 딸 셋)
엄마, 아버진 반대를 많이 했지만 연애결혼이라 울 큰오빠
고집이 넘 세서 할수없이 결혼을 시켰단다.
엄마, 아버지가 반대한 이유는 울 올캐언니가 넘 억세게
생겼단다. 그리고 양쪽부모님도 모두 안계신다고 반대를
많이 하셨다.
예상대로 독선적인 울아버지와 큰올캐 언니는 물과 기름사이 였다.
살아생전에는 아예 안보고 사셨다.
울 큰올캐 언닌 화가나면 시부모한테도 삿대질을
해대며 할소릴 다한다. 뒤끝은 없어 화끈한 편이다.
다행히 엄마는 성격이 너그러워 그나마 큰아들 집에 혼자 왕래
하셨다. 그리고 쌀이며, 부식, 기타 엄마의 쌈짓돈을 모두
큰아들에게 아니면 손주들에게 갖다주시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후엔 큰올캔 시댁(우리 친정)에 왕래를 했다.
일년에 명절날 두번 그리고 제사때 한번... 전화는 아예 없다.
볼일이 있으면 엄마가 큰오빠네로 가신다. 고추장 된장등을 싸들고...
3년전 엄마는 대수술을 했다.(디스크 수술)
언니들 두명과 막내인 내가 번갈아 가며 2달동안 엄마의 병간호를 했다. 올캐언니 2명은 병원만 달랑 그것두 한번 와보구 그이후론
모습을 볼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를 1년가까이 내가 모시고 살았다.
친정부모지만 그것두 아픈 환자를 모신다는건 힘든 일이였다.
엄마두 많이 미안해 하셨구 신랑도 내색은 안했지만 왜 불편치 않았겠나...그 사이에 재발하여 다시 입원하고 퇴원을 자주 하셨다.
그래도 올캐언니 둘은 보이지 않았다. 병실을 지키고 있는건 우리
딸들 뿐이였다.
마지막엔 퇴원 하시곤 큰오빠집에 가셨다.
큰오빠도 면목이 없었는지 엄마를 모셔가셨다.
하지만.. 그것도 3일만에 엄마는 쫓겨나다십이 다시 본집으로 가셨다.
저녁에 화장실 자주 늘락날락 하는거 꼴보기 싫고, 밥차려 드릴때
왕창 안먹고 조금씩 자주 먹는게 넘 싫단다.
싫은 기분은 이해가 간다. 나도 1년가까이 모셔봤기 때문에 나이
드신분 모신다는것 그것도 환자를(오빠집에 갔을땐 많이 완캐되어
거동도 잘 하셨다.)모신다는것 힘든줄은 알고 있다.
엄마가 큰오빠네 있을때 언니들과 나는
아들만 자식이가? 딸도 자식인데 오빠집에서 몇달 모시다 힘들면
번갈아 가며 모시자고 그렇게 서로 의논을 했었다.
물론 큰올캐언닌 몰랐다. 보름뒤에 다가올 친정아버지 제사때
다들 모였을때 얘기 하기로 하고 우리 딸들만 그렇게 생각 하고
있었다. 딸들도 며느리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며느리의 입장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그게 아마 작년 이맘때 일이다.
3일만에 큰아들 집에서 쫓겨나다십이 한 울 엄마일로 우리 세딸은
엄청 흥분했다.
독선적인 아버지밑에 자란 우리 육남매들은 성격이 모두 소극적이다.
할말 제대로 못하고 좋은게 좋다며 모두들 할말을 꾹꾹 참고 산다.
아니 어쩌면 언니들이나 나나 며느리였기에 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수술이후 부턴 이건 아니다 싶었다.
벼르고 별러서 아버지 제사때,
제사를 다지내고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딸들이 모은 제사비용을 주며 엄마이야기를 막꺼내려는데
울 큰 올캐 대뜸 '너네 엄마 너네들이 모셔!!
너네들 엄마잖아. 내엄마 아냐'
이년 저년 해대며 개거품 무는 울 큰올캐..
멱살잡히는 시누들...
할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들은 오빠집에서 쫓겨나다싶이 나왔다.
그때서야 엄마기분이 이랬스리라.. 느끼며...
오빠집에 나와서 보니 우리딸들 눈에는 모두들 눈물이 고여있었다.
시누와 올캐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현실에 분했고
앞으로의 울 엄마가 넘 불쌍했고
바보같은 오빠들이 넘 미웠다.
오빠들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지만(부인과 모친사이에서)
내가 볼땐 바보 멍청이 머저리 같았다.
울 둘째 올캐언닌 명문대를 나와 엄청 똑똑하다.
그래서 똑소리 나게 '큰동서가 못하는데 내가 뭐때문에
해' 하는식이다..
불쌍한 울엄마....
젊어선 남편한테 제대로 큰소리 한번 못하고 사시고
늙어선 자식한테 대접한번 제대로 못 받으시는
울 엄 마...
나도 늙어선 이렇게 돼진 않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울 큰올캐 언닌 오십이 넘어 큰아들이 군에 제대해 대학 4학년에
복학했다. 그녀도 며늘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꼭 당신같은 며늘 봤으면 싶다.
둘째도 아들이다. 지금은 군에 있다.
정말 더도 덜도 말고 꼭 울 큰올캐 같은 며늘 봤으면 싶다.
그게 우리 딸들의 소망이다. 아니 꼭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하늘이 있는 한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