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끙끙거리다 후련히 쏟아버리면 시원이나 할까싶어 이렇게적어봅나다.답답하고 긴얘기지만요.어제늦은밤 술이거나하게 취한남편이
이렇게 말하데요.다음주 화요일 엄마랑 시골아버지 산소에 다녀온다
그러더라구요.저는깜짝 놀라"뭐.어떻게 어머니가...그말에 남편은
"몰라.늙어서철드나.꿈에아버지가 보이더래.밥을달라그래서 밥을차려줬더니 밥상을 차버리더래아무래도 걸린다고 한번같이 산소에 가자네"
듣고는 났지만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그럼 그아저씨는?"제가물었습니다."둘이 헤어졌데"아.기가막혀!"언제""얼마전에 그래서 혼자사신데데"그얘기를 나누는데 가슴이 답답해져오고 남편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그냥 어머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로 들려오지않았습니다.
뭔가 계산된 생각이구나 하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어머니.이분을 얘기하자면 제남편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해야 하고 제얼굴 침뱉기 일지모를 긴얘기를 해야합니다.창피한 얘기지만요.
그러나 어제밤이후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풀어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남편이 일곱살 시동생이 세살때 가정을 버리고 다른
남자랑 야반도주를 했다합니다.이유는 시아버지의 심한 폭력과 바람
때문이었답니다.매일술에 젖어 집에 오면 식구들을 폭력으로 휘두르곤 했다합니다.견디다 못한 어머니 다른남자를 사귀게 되었는데 자식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거까지 보이게 되었나 봅니다. 이사실을 어머니는 아시는지 모르지만...어린제남편에게 "밑에서 기다려 엄마 조금있다올께"하고 여관으로 들어가시더랍니다.한참을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않자 남편이 올라가 문을 조금열고 들여다 보니 모르는 남자랑 엄마가 같이 있더랍니다.그리고 얼마후 엄마는 도망가고...물론 이얘기는 남편에게세 들은얘기죠.단지 그때는 남편마음에 어머니의 존재가 부정적으로 있을때였구요.그렇게 떠난 엄마에 대해 일곱살 먹은 꼬마에겐그리움 밖엔 없었겠죠.보고픔에 버스가오면 신작로에 나가 마냥 바라보고 울며.. 걸어 다른지방에 있는 외가에 엄마?아갔다 외할아버지 외삼촌에게 쫓겨난이야기 들으면 듣는데로 눈물밖에 안나오는 얘기를들으며 남편이가여워 마음이아팠습니다.그이후에도 아버지의 술과여자는 끝이없고 수시로 새엄마가 바뀌고 아버지의 구타로 힘든날의 연속이었습니다.다행히 공부는잘해 전교일등을 놓친적이 없었고 중학교도장학금을 받고들어같다고 합니다.그렇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할수있던 기회도 아버지가 교과서를 다불태워 버리게 되면서 서울로가출을 하게됐다하였습니다.서울에서의 고생도 이루말할수 없었죠.
그러다 아버지가 병이들어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에 시골에 내려가병간호를 하게되며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다아버지의 병간호에 ?P아붙게 되었다했습니다.그때 아버지때문에 빚까지 지게 되었는데 저를 만날때 까지 그빚이 있었는데 전그걸 오랜후에 알게되었습니다.저에게 부담안쉬울려고 그랬다합니다.남편은 그때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약까지 준비했었다합니다.그렇게 혼자(그때시동생은 어릴때 집나가고없었습니다)아버지 장례까지 마치고 서울에 오니 입영영장이 나와면제 받으려고하다 어머니를 찾게되었다합니다.친척숙모와 찾아보니 어머니는 다른남자와 살고 있더랍니다.집에를찾아가니 당황해 하시며밖에서 만나자고해 만나니 먼저시동생은 남편쪽에서(어머니)어릴때 죽은줄 알고 있으니 그애 얘기는 하지말아달라고 하더랍니다.옜날 그렇게도망친 남자랑은 얼마못가 헤어지고 다른남자를 다시만나 같이살며아이둘을 또낳고 또헤어지고 고생고생하다 지금의그 아저씨를 만나 전처자식 셋을 키우고 있다했습니다.남편은 다른건 필요없고 그서류문제만 해달라 했고 그이후로 서로연락이없었습니다.그이후 저를만났고남편은저에게나제 친정에 양부모는 안계신다고 했습니다.그와 사귀다 저희 친정부모도 돌아가시게 됐고 그후 그에게 어머니가 계시다는걸 다른사람을 통해 알게됐죠.그는 어머니를 아주나쁜여자로 제게 표현했고###년이라는표현 까지섰습니다.저는 상처로 가득찬 그에게 그래도 돌아가시고 안계신 부모보다 살아계신 그런 어머니라도 계시니 당신은행복한 사람이라고 누누이 말했죠.그렇게 한참 잊고살다 제가 큰아이 임신하고 팔개월때 숙모가 오셔서 이따 어머니 오신다 그러시대요.정말 그렇게 어머니는 갑자기 오시고 처음 남편은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못하다 제가 아기낳고 오시고(그래도 어머닌 제산후조리해주시지않았습니다.두번 병원오시고집에?p번 오신게 전부죠)그렇게 하다 남편도 눈녹듯 그세월이 잊혀져버렸죠.처음 어머니 오셨을때 제가 어머니께 큰절을 올릴때 저는 눈에 웬 눈물이 그리나오는지 하염없이 울고절을 하는데 어머니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으시데요.지금와선 그것조차 화가나네요.그후로 저와 남편은 명절.생신.어버이날.또두달에 한번 꼭 작든 크든 선물을 들고 찾아뵙고 인사드리러갔었답니다.이얘기를 하면 또 욱하니 올라오는게 있네요.제가 처음엔 큰애 후엔 작은애 안고 붙잡고 가면 돌아올땐 꼭 속울음을 울고왔습니다.가서 어머니 저 왔어요.하면 그래 어서와라 하신후 간단히 서로 안부 묻고 나면 침묵 그렇게 삼십여분 지나면 이제 그만가라 하십니다.번번히 그렇게 돌아오니 나중에 남편에게 정말이제 가기싫다하였습니다.남편은 그렇게 엄마에 차갑던 사람이 한번풀어지니 그렇게 효자가없었습니다.한번은 어머니 친정쪽 결혼식이 있어남편직장을 일부러 하루쉬어가며 결혼식에 갔습니다.남편에겐 외가인데도 모두 서먹서먹 꼭남의 결혼식손님같았습니다.어머니도저희에겐 한번오신후 그후론 식이끝난후 잘가라는 인사 하러오신게 전부지요.모두 어머니네 집으로 가신다며 저희에겐 같이 가자는 말씀한번 없으시데요.애들둘 돌.백일.때도 저녁에 오셔서 식사 잠깐 하시고 기시며 팔찌하나 주고 그냥 기시고요.애들 유치원.학교.모든 입학.졸업 전화나 안부하나없고요.하다못해 제가 병원에 대수술 받고 입원해 있을때도 전화조차 없었죠.모든 힘든 일 있을때 저희는 누구의 도움한번받은적 없이 지금껏살아왔죠.지금의 집장만 할때도 누구의 도움없이 마련했죠.지금도 남편은 술한잔 하면 그러네요."우리 대단하지 아무의 도움 없이 이렇게나마 살고있으니 그지?"남들 볼땐 어떨지는 몰라도 정말 저희이렇게 사는게 저희 스스로 대견해합니다. 몇년전 시동생 문제로 어머니 저에게 전화해 얘기하시다 저한테 그러시대요.앞으로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체 하지말자 너네랑 앞으로 연락 안하고 사마 그말씀 하시고 한달정도지난후 어머니 신랑 한테 전화해 부산에 있는 시동생이 병원에 입원 했는데 내가 못가니 니가가서 병간호좀 해라 하셨데요. 남편 직장일부러 일주일 빠져가며 부산까지가 병간호 했습니다.우리 시동생 얘기또 하자면 속터지고 한이없지요.그건 생략할렵니다.남편 병원에 있는동안 시어머니 병원에 저녁에 잠깐 내려오셨다 저녁 한끼 사주고 바로 올라갔답니다.그래도 제남편 자기엄마라면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못하게 합니다.그러다싸움 한두번 한게 아니구요.저 친구들 만나 시어머니가 뭐 해주고 어떻게 해줬다하는 얘기 들으면 가슴 미어집니다.아이들 에게도 할머니 얘기하다보면 가슴아프고요.너무너무 긴얘기네요. 또 힘들고요.나머지얘기 다음에 올릴께요. 제가 어떻게 했음좋을지 좋은말씀들 부탁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