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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해야겠다 3


BY 도라지꽃 2008-03-28

 

이제는 말해야겠다 3


  두메산골의 모기는 그 어떤 귀신이야기보다도 내겐 더 두려운 것이었다. 온 몸을 모기들에게 물어 뜯겨 피고름이 흐르자, 할머니는 내 전용 이불과 요를 만들어 주셨다. 부드럽고 하얀 무명 이불이었다. 그 이불과 요의 여기저기가 나의 몸에서 배어나온 피고름으로 흉하게 얼룩져갈 무렵, 장맛비가 내렸다.

 

  그 무렵 나는 정확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리고 온 몸에 종기가 퍼져 할머니는 내 몸 구석구석을 안타까이 들여다보고 연고를 발라주시며 혀를 끌끌 차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오두막 마당에서부터 할머니가 나를 업으시고는 아랫말 읍내 초입에 있었던 보건소에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가 두메의 산길을 나를 업고 걸어가실 때 간간히 눈을 뜨면 할머니의 벗은 발이 힘겹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맛비 때문에 산길은 빗물이 뒤덮어 흘러내려 길은 시냇물로 변해있었고 고무신이 미끄러워 할머니는 아예 신을 벗어, 나를 업고 엉치께에 맞잡은 당신의 두 손에 꼭 쥐고 숨차 하시며 걷고 계셨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할머니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건소에 가서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우는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울지 마래이. 이따 장에 가서 눈깔사탕 사 줄꺼이.”  그 시절 내 눈에 비친 할머니의 눈은 울지 않는데도 언제나 물기를 머금고 있었던 것 같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아버지가 두메로 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넷이 함께 완행버스를 타고 덜컹대는 신작로를 달려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신작로에 버스가 섰고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엄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여름내 시달린 종기 때문에 온 몸이 고름 투성이어서 자연스럽게 걸음을 걷는 것도 힘이 들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뒤따라 차에서 내려 그 버스 정류장 신작로 가에 섰을 때 나는 엄마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그 때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내 모습 전부를 볼 수 없어 잘 몰랐는데 언젠가 엄마도 그 순간을 얘기하면서 ‘양팔과 다리를 몸에 붙이지도 못하고 손가락들까지 종기가 나서 벌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고 했다. 그건 어쩌면 엄마의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말이다. 그 순간에 엄마는 애처로운 딸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까지는 오버라 해도 다가와 손이라도 잡아주었어야 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서 머리를 쥐어짜도 나는 엄마의 품에 포근히 안겨보았던 기억이 없다. 사람들은 흔히 포근함을 말할 때 엄마 품의 느낌을 들이댄다. 나는 엄마 품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정말 모른다.

 

   13년 전 남편을 만났다. 우리가 만나던 그 어떤 날 그가 나를 품안에 꼭 안아 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 때문에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누군가의 가슴이 그 품안이 그렇게 넓고 따스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뽀뽀하고 스킨쉽을 한다. 때때로 나는 그런 딸아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마음을 알아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딸아이를 안고 토닥이면서도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가능한 많이 안아주려고, 많이 예뻐해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직 덜 자란 내 안의 계집아이를 내 딸아이가 알아버릴까 봐 나는 언제나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