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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사라지니 모든게 끝


BY 울쩍 2008-08-06

나보다 너댓 살 위인 그 여인을 보고 나는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 언니를 알게 된지가 한 이 년 되었습니다.

사무실 바로 아래 자그마한 촌 식당을 경영하는 그녀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매일 점심을 그곳에서 먹으니 자연스럽게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지요.

그 언니가 운영하는 식당은 외진 곳으로 크게 벌이가 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언니가 외 홀로 낯선 이곳에서 힘겹게 식당을 꾸려가며 사는지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느날 스스로 말하고 싶은 날 말하면 들어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크게 관심도 없었구요.

그런데 그 동네사람들로 봐서는 그 언니는 타지에서 온 소위말하는 떠돌이로  비춰졌습니다.

처음 그 언니가 이동네 왔을 때 바로옆 수퍼집 여자와도 또 그옆 미장원집 여자와도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음식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다정하게 웃고 즐겁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어느날부터인가 그들과 멀어지게 되는 일이 있어 급기야 완전히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멀어진 이유는 식당의 그 언니가 말을 함부로 옮기고 다니며 거기에 찾아온 남자 손님들에게

행실이 조금은 난하여 자신들은 이 언니가 싫다는 것이 이유 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임대료를 받는 일로 수퍼나 미장원이나 그 언니 식당이나 모두 드나들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와도 기울게 어울려서는 공연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비록 돈은 주지만 그 언니가 한 밥을 먹고 있고 또한 홀로 있는 그 언니가 측은한

생각도 들고하여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어느날

언니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해 주었습니다.

그 언니를 만난지 수 개월이 지난 후 였지요.

자신의 남편은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술을 먹었다하면 행패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고 자식들에게도

폭력을 쓰고 하여 오랜 세월을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없는 집 외동 아들인 남편은 곱게만 자라

일은 안하고 마누라만 고생시키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남편의 문제점을 오랜시간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언니가 지금 자신의 말을 털어놓고 싶은 순간인가 보다 하고 성실히 들어 주었습니다.

동정을 섞어 가며 맞장구까지 치며 함께 속상해 했습니다. 나의 진심이었습니다.

말을 다 한 언니가 마지막에

"그래서... 나.. 이혼했어."

라고 할 때 나는 그 언니가 하도 불쌍하여 저절로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언니를 위로했습니다.

"괜찮아. 언니는 성실하니까 잘 살거야."

 

그 언니 곁에는 언니를 돌봐주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은 풍체가 좋고 거무튀튀하여 천상 남자상를 한 사람으로 그 언니도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나역시

그렇게 호칭을 했습니다. 식당을 한다는 것은 매일 시장에 나가 장을 봐야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와야

하므로 할아버지가 그 언니 곁에 있는 것은 언니로 봐서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도 몇 안되는 자식에 다들 먹고살기 힘들고 하여 기댈 데 없이 사는 사람으로

언니와 서로 의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가 할아버지를 두고 밥차려주기 귀찮다는 말을 할 때 나는 그 언니 처지를 생각하여

"언니, 꾹 참고 할아버지 한테 잘 해드려. 낯선 곳에서 의지 해야 할 것 아냐."

여자라는 이름으로 홀로 세상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아줌마로 살면서 저절로 터득한 일이므로

나는 정중히 그렇게 일렀습니다.

 

참말로 갑자기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온 말이었습니다.

"언니, 혹시 할아버지하고 뭐..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웃으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아무생각없이 정말 아무생각 없었습니다.

 

언니는

"아니야! 아니야!... 차라리 그러면 좋게..그런데..아니야!" 했습니다. 단호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남자로서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나는 "응!..그래!"하고는 끝이었습니다.

점심식사 때가 되면 할아버지와 언니와 나는 언제나 둘러 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 후 동네 사람들로부터 언니와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남녀의 관계로 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누구보다 그 일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아니에요."하며 고개까지 절래절래 흔들어 보였다.

 

언니는 딸 둘, 아들 둘 이렇게 사 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효자라고 했습니다.

딸들은 언니의 생일엔 언제나 커다란 꽃바구니를 보내왔습니다. 식당 한가운데 떡하니 올려 놓으니

자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시시때때로 요상하게 생긴 빵을 보내온다. 옷을 보내온다.하여 언니를 기쁘게 했습니다.

언니는 힘들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억척같이 일을 했습니다.

공사장의 인부들이 식당에서 대놓고 밥을 먹었기때문에 늘 바빴고 힘든 가운데 그래도 돈이 좀 되었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인부들이 돌아가면 또다시 파리가 날리는 식당이 되곤 했습니다.

참말 뼈빠지게 일한 언니는 주머니에 돈이 조금 들어 찼던가  봅니다.

갑자기 집을 사야겠다면서 바쁜가운데 복덕방에서 안내한 집을 보러다니느라 그것 또한 바빴습니다.

 

집과 사람도 인연이었던지 언니는 먼데까지 집을 보러 다니더니 하루는 바로 가게 옆에 집이 났다면서

보러가서니 곧 계약을했습니다.

언니는 몹시 감격해했습니다. 나도 덩달아 좋아서 집구경을 하고 잔치집같이 야단이 났습니다.

진심으로 언니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언니는 모든 가제 도구를 새로 샀습니다. 예쁜 장롱, 화장대, 소파, 식탁.. 등등 돈을 엄청 써댔습니다.

마치 스므 살 새댁같이 신혼집 꾸미듯 집을 꾸몄습니다. 나이 먹어도 여자는 여자구나 생각했습니다.

고생하며 사는 언니가 드디어 안정을 찾는가보다하고 나도 좋았습니다.

 

언니와 내가 만난 지도 어언 이 년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나는, 전 날 할어버지와 점심 먹으며 나눈 이야기 중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답게 자기주장이 세며 고집이 있다는 험담을 언니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아마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이었던거 같습니다.

"언니... 언니 혹시 할아버지와 그런거...아니지?..."하였습니다.

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맞어!"

"......"

나는 일순 돌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우두망찰했다.

"???"

"뭐야! 아니라매..아니라면서?..하이고.. 참말로...뭐냐?.."

 

'그토록 아니라면서, 아니라면서.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라면서. 뭣땜에. 나한테. 그렇게 말하고 얻어지는게

뭣이었기에. 왜. 차라리 끝까지 속이던지.'

나는 이제 식당에 가기 싫습니다.

할아버지도 그 언니도, 폭력적었다는 전 남편의 존재도,

식탁놓인 꽃다발의 정체도, 효자 아들들의 실체도 모두 깨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모든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녀에 대한, 한 인간에 대한 철석 같은 믿음은 끝이 났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자꾸만 믿을 것은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