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한참만에 만나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만큼 반갑고 할 말이 많았지요.
주부라면 누구나 직장이 있든 없든 남편, 자식들 우선의 생활방식일 수밖에 없으니
그들에게서 벗어나 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입니다.
나와 친구 둘. 이렇게 셋이서 한마디씩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한사람이 끝나면 곧바로 또 다른 친구,
곧이어 또 다른 친구.. 이렇게 이야기는 몇시간이나 이어졌지요.
나이들을 제법 먹은 아줌마이기도 하지만 진화된 세월탓인지 자연스레 남자 이야기도 도마에 올랐지요.
생각지도 않았던 요조숙녀과 누구누구가 세상에나 남자를 사귄다더라."부터 시작해서 밤에 잠자리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남자들의 성, 여자들의 성이야기에 대해 모두 도통한 사람들처럼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남편이야기, 시집이야기, 자식이야기, 혼자된 시누의 새 애인이야기, 누구네 친정 올케의 뻔뻔한 행태이야기 ,
누구누구의 홀시아버지 모시는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이야기
그런데
어쩔수없이 주부이고 어머니이다 보니 결국엔 자식 이야기로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나는 잘 안되는 시부모 모시기인데,
나의 친정 올케의 파렴치한 내 부모 배신행위인데,
위암걸린 친정아버지를 단칸방에 내 쫓은 친구의 친정 올케인데,
깊디 깊은 나의 가슴 밑바닥은 진정 친하지 않은 나의 시집인데..나는 잘 안되는 일인데..
내가 죽도록 사랑한 나의 아들은 제발 나를 배신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이야기입니다.
참.. 완벽한 아이러니 입니다.
이른 아침 교복을 입고 피곤에 지쳐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묵묵히 밥을 먹는 아들에게
식탁너머로 나의 팔을 뻣어 밤가시 같은 아들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뻐, 이뻐, 참 이뻐, 사랑한다." 하니 아들은 으레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입니다.
문득 생각만 해도 가슴 쓰르르한
집을 떠나 공부하는 큰 아들, 언제까지나 귀엽기만한 아기같은 키 190의 작은 아들.
남몰래 짝사랑하는 어느 남자가 이토록 이쁠 수가 있을 까요.
눈물이 질끔 날 만큼 이쁘고도 이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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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도 나도 각자의 어머니에게는 이런 존재였을 것이고 지금도 기필코 그렇겠지요. 영원히
죽어서도 엄마에게는 까까머리 내아들같은, 눈물이 질끔 날 만큼 이쁘고도 이쁜 아기겠지요.
지금은 시집도 친정도 먼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잠 못드는 캄캄한 밤 중. 생이 참 쓸쓸하다고 생각되는 적막한 한 밤 중.
시부모님도, 나의 홀로 지내시는 친정 어머니도 당신들의 죽어서도 사랑하실 자식들을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속상해 방에 시부모, 친정부모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나도 잘 안되고, 너도 잘 안되는 부모에 관한 그것.
참 잘 안되는데..
나는 왜.
내 아들만은, 내가 죽도록 사랑한 내 아들만은
흔히 있는 완전하게만은, 아주 영영 나를 배신하는 것만은 않아 주었으면 하는 것일까요.
내가 잘 안되는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