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 두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입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제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사동기로 만난 남편, 결혼 때 돈이 없다고 걱정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남들 다 하는 패물 다 생략하고
14K 묵주반지 하나만 주고 받았습니다.
사실 시댁뿐 아니라 저희 집도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꾸미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패물 같은 것은 정말 사치라고 생각했었죠.
그래도 정성은 다 하고 싶어서 예단을 3백만원 드렸는데,
시댁에서는 입 싹 닦고 한 푼도 안 돌려주더군요.
딸 자식 하나만을 두신 저희 부모님께서는 그리 내색을 안 하셔도
좀 섭섭하신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세상 물정 너무 몰랐던 저는 그걸 속상해 하지도 않고
그저 남편에게만 눈이 멀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신혼집은 5천만원 짜리 주택을 전세로 얻었습니다.
남편이 5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4천만원을 모았고
모자란 돈은 회사에서 1천만원을 대출받아 결혼생활을 하면서 함께 갚아나갔습니다.
저희 결혼하면서 시댁에서 주신 돈은 결혼식 당일 절값으로 받은 30만원이 전부입니다.
워낙 기반 없이 시작했기에 맞벌이라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양가에 용돈을 20만원씩 드렸습니다.
허름한 신혼집에 살면서 큰일을 당할 뻔 한적도 있습니다.
남편 없는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제 목에 칼을 대고 금붙이를 달라고 하더군요.
받은 패물이 없었기에 뺐길 것도 14K 금반지 하나와 현금 20만원뿐이었습니다.
강도가 저를 겁탈하려고 하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하게 되어서 다행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때의 후유증으로 1년동안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 집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때까지 모아두었던 4천만원과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을 받아
1억원 짜리 18평으로 전세를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형님(동서네)를 비롯한 시댁에서는 언제 그렇게 돈을 모았냐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사실 당시 단기간에 많이 모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맞벌이라고 그냥 쉽게만 모은 돈은 아니었거든요.
지금 이 날까지 남들 다 있는 승용차도 안 샀고,
결혼 10년차인 지금까지도 저는 결혼 3~4년 전에 구입했던 옷을 입습니다.
단적인 예만을 든 것이지만, 정말 상상불허의 독한 짠순이지요.
아뭏든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서울 시내 변두리의 집도 샀습니다.
여기까지라면 그럭저럭 평탄한 삶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큰 아이가 4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해서 걱정이 심했습니다.
소아과를 거쳐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 갔더니 자폐라고 하더군요.
물질적으로나 손자 양육에 있어서 그 때까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던 시댁에서
그 탓을 전부 아이 외가집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직장 다니는 저를 대신해 아이를 잘못 키웠다구요.
하지만, 다들 아실 겁니다.
자폐는 선천적인 장애이지 양육자에 의해 발생하는 후천적인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까지 외손자 하나만을 위해 정성을 기울였던 친정 부모님께서는
그런 말을 듣고 너무도 상심하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누이까지 저희집에 와서 친정 어머니가 있는 앞에서
"올케가 친정 생활비때문에 직장 다니느라 애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왜 그렇게 바보같았을까요?
그런 말을 듣고도 그저 가만히 있었으니까요...
시누이 대학학비가 없다고 해서 결혼하자마자 100만원을 주고,
결혼하는데 돈이 없다고 해서 축의금으로 400만원을 보태고,
또 매달 용돈을 30만원씩 드리고,
저도 시댁에 할 만큼 다했는데, 왜 아무 소리 못하고 바보처럼 있었을까요?
시어머니께서도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는 커녕,
제가 태교를 잘 못했다는 둥,
애한테 너무 신경을 안 쓴다는 둥,
제 아이가 부족하니 형님(동서)한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둥,
역시 시댁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그런 모욕적인 말들을 듣고도 천사표도 아닌 저는
마치 천사표인양, 바보인양 시댁에 30만원씩을 꼬박꼬박 세금내듯
(처음 20만원에서 10만원을 인상했습니다)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시댁에서는 확실히 저를 바보인양, 돈기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3년전 남편이 해외 지사에 나갔거든요.
저는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사내녀석 둘을 카우랴, 직장 다니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시댁에서는 생전 손주들 한번 들여다 보는 일도 없고,
남들처럼 학교에 들어간다고 가방을 사주거나 용돈을 주지도 않습니다.
제 아이가 장애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가방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러면서도 시누이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새벽부터 전화를 해대서
부의금으로 50만원을 내라고 하지 뭡니까?
평소에는 아무 신경 안 쓰다가 돈 필요할 때만 가족이고, 형제인 셈이지요.
물론 저도 50만원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10만원만 낼까 하다가, 남편 입장이 있을 거 같아서
지방까지 가서 20만원을 내고 왔습니다.
얼마 전엔 시아버님 칠순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기가 막힌 것은
온가족이 다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며, 저에게 콘도를 구할 수 있냐고 하더니
제가 회사에 콘도 제도가 없어졌다고 하니까
평일에 가야 싸다며, 형님네, 시누이네만 같이 간다고 하더군요.
별로 같이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은근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만 따돌리는 것도 같고, 애가 장애가 있어서 그런가 하는 자격지심도 들고,,,
그래도 남편만 사랑한다면, 이딴 거 아무렇지도 않겠죠?
그런데, 저 몇 년전부터 남편이 싫어졌답니다.
대화가 잘 안 되는 것도 싫고,
애 키워주는 친정 식구에 대한 고마움 모르는 것도 싫고,
같이 직장생활하는데, 회식 등등 저에 대한 배려 없는 것도 싫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3년 전 남편이 몹쓸 병이 옮아왔더군요.
(무슨 병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어느 날 잠자리에서 심각하게 저에게 털어놓더군요.
삽입은 없었고, 술집에서 오럴로 옮은 것 같다고...
후훗, 그 말을 믿어야 할까요?
저 덕분에 비뇨기과까지 다녔답니다.
해외에서 3년간 근무했던 남편이 다음 주면 돌아온다네요...
속 모르는 남들은 좋겠다고 하지만,
전 정말 싫어요.
여기서도 그랬는데, 밖에서 안 그랬을까요?
남들은 남편보고 FM이래요.
정말 아무걱정 안 해도 되는 사람이라나, 뭐라나...
3년전 그날 밤 이후로
제 마음은 남편에게서 떠났어요.
작년 휴가나왔을 때는 제가 남편에게 이혼하자 했었죠.
솔직한 제 심정 얘기하고요...
그랬더니 조금만 더 살아보자더군요. 살아보고 정 싫으면 그 때 해준다고...
아마 저 이혼은 못 할 거 같아요
저, 그냥 무난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든요.
남다른 시선, 주위의 기대 그런 거 저버릴 자신이 없어서요...
아마 귀국하면, 저는 또 속은 곪아터져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텐데,
이런 제 자신이 싫습니다...
저, 정말 바보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