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끙! 끙!
> 이그, 끙! 끙!
벌써 한 시간 째 아세톤 냄새에 머리를 지끈거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있다.
얼마 전 색칠놀이를 하라고,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사온게 화근이었다.
아무래도 작은 도화지가 좁았던지, 온 집안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야단 치던것도 잠시, 눈물이 체 마르기도 전에 다시 또 그림을 그린다.
텔레비젼 화면, 화장대 거울, 방바닥, 장롱 할 것 없이 형주의 야수파 그림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꼭 색도 바꿔서 칠해야 한다.
여기저기 울긋불긋, 동그라미에 작대기, 꼬불꼬불 타원.
기하학적 도형이 온 집에 가득하다.
벽지에 그려진 그림은 어쩔 수 없다하다라도, 맨들맨들 닦여지는 부분은 있는 힘껏 지워보려 10시가 넘은 야밤에 부부가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힘드는 와중에도 사람좋은 울 신랑은 우스게 소리를 한다.
> 난 옛날에 크레파스하고 양초로 껌만드는 줄 알았다.
크크. 사실 나도 언니들이 껌만들어 준다며 쌀초에 크레파스를 질겅질겅 씹으면, 그 밑에 턱괴고 앉아 맛난 양초껌 나오길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 옛날 크레파스는 종이로 돌돌 말려져, 칠하다 종이를 벗겨내기가 영 귀찮았었다.
그렇다고 종이를 미리 벗겨내면 온 손마디에 알록달록 크레파스 물이 들었다.
무르기는 왜그리 무른지, 빈틈없이 꽉꽉 눌러 쓰다보면 여기저기 크레파스 똥이 그림을 망치기 일쑤였고, 한 번 묻은 크레파스 자국은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20 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들의 손에는 크레파스 얼룩이 거의 없다.
단단하기도 하고, 잘 묻어나지 않아서 귀찮은 종이조각도 없다.
다행히 입에 잘 넣거나 빨지 않는 아이기에 별 다른 걱정없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크레파스가 어디 그랬던가.
다량의 납 화합물이 첨가제로 사용되었다.
그런 크레파스를 껌 만든다 질겅질겅 씹어대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 옛날 우리가 얼마나 우매하였는지 안타깝다.
기술은 계속 발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를 가중시키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놀잇감이나 교제는 더 없이 안전해야 한다.
20년 후를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완구마트에 가면 이것저것 뒤적여 보며 꼬투리를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꼼꼼한 소비자가 있어야만 더욱 더 안전한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모 CF 처럼 <꼼꼼하게 따져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