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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균을 죽이는 숲의 요정 피톤치드 (인천대공원에서)


BY 통통감자 2000-10-13

>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보람이 엄마다.

> 형주엄마 쉬는 날인데,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 보람이가 하도 졸라서 ...

> 미안하긴요. 뭔데요.
어려워말고 말씀하세요.

> 학교에서 삼림욕에 대한 숙제를 내주었나봐.
나 보다는 형주네가 더 잘 알 것 같아서,
염치없이 이렇게 전화를 하네...


전화를 끊고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린 집안일은 제쳐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숲을 찾아 갈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있었다.
시간이 벌써 1시가 넘었다.
가까운 인천대공원에 가 볼 생각이다.


관모산 일대의 인천대공원은 인천에서는 보기드문 숲이 어우러진 도시생태 공원이다.
장미원과 식물원이 따로 있지만, 나는 10km 가까이 되는 산책로가 더 좋다.
한적한 공원로를 따라 걷고 있노라면, 기분좋은 풀내음이 코끝을 살랑인다.

> 아줌마? 산에 오면 기분이 참 좋아요.

> 아직은 산에 온게 아닌걸?
좀 더 걸어가면 등산로가 나올거야.
거기가서 우리 진짜 기분좋은 삼림욕을 한 번 해볼까?

10여 분을 넘게 걸어가는데, 벌써 형주는 잠이 들었다.
보람엄마에게 형주를 맡기고, 우리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 왜 산에 오면 기분이 좋을까?

> 새소리요.
삐릿삐릿! 너무나 신기해요. 볼수는 없지만 하늘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음... 집에서는 맡을 수 없는 이상한 향기도 나요.
하지만 싫지는 않아요.

보람이도 피톤치드(PHYTONCIDE)를 느끼는 가보다.
초목이 풍기는 향기.
소나무나 향나무 처럼 강한 향도 있지만, 모든 이름모를 풀과 나무에서도 그들만의 향기가 있다.
제 아무리 인간이 문명과 기술로 만든 공기청정기가 있다한들 신이 만드신 자연만 하겠는가.
흉내낼 수 없는 신선함이 가슴까지 파고든다.

> 보람아.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체란다.
움직이지만 않을뿐 우리처럼 똑같이 숨쉬고, 먹고, 마시고 하지.
그래서, 곰팡이(미생물)와 같은 균들이 나무에 접근하여 병이 생길수도 있지.

> 나무도 아파요?

> 그럼. 물론이지.
보람이가 소나무 가지를 꺾으면 소나무에서 피처럼 송진이라는 끈적이는 물질이 나온단다.
그래서 식물들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이한 냄새를 내뿜는 거야.
물론 이것은 미생물에게는 매우 독한 것이란다.
이것을 피톤치드라고 부르지.
이 피톤치드 때문에 나쁜병균이 죽게 되는 거란다.

> 우와! 굉장히 무서운 나무군요. 키키!!

>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요.
우리 인간한테는 이 피톤치드가 아주아주 기분 좋은 느낌을 들게 할 뿐이거든.

피톤시드(PHYTONCIDE)는 그리스어로 PHYTON은 식물을 뜻하고, CIDE는 살인자를 뜻하는 합성어 이다.
즉, 균을 죽이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피톤치드가 충만한 숲속의 공기는 균이 없는 깨끗한 공기요, 그 공기를 마시는 우리 몸 역시 살과 피가 맑아지는 것이다.

깊이 숨을 들이켜본다.
옆에서 아이도 힘껏 숨을 들이킨다.
우리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요란스레 숨쉬기 운동을 하였다.
멀리서 따박따박 걷는 소리가 들린다.
형주가 깨었나보다.

> 형주야!
나는 나쁜 균을 죽이는 정의로운 숲의 요정 피톤치드다!!

마치 세일러문의 한 장면처럼 멋을 부리던 보람이가 형주를 향해 뛰어간다.
누나의 행동이 이상했던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형주도 이상스런 손동작을 흉내내며 뛰어오고 있다.

어이없이 웃음지으며 보람엄마가 내게 다가왔다.

> 이제 우리 보람이가 피톤치드 요정이 되었나봐요.
얼마까지는 달의 요정이었는데,...

열심히 누나의 손동작을 흉내내는 형주를 보며 다시한번 크게 웃었다.
너무나 상쾌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