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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내복을 입어요.


BY 통통감자 2000-12-04


딩동! 딩동!
일요일 아침. 갑작스런 벨소리에 놀라 일어나보니 보람이가 자그마한 보자기에 뭔가를 가지고 왔다.

> 어~ 보람이구나?

> 예. 엄마 심부름 왔어요.
우리 김장했어요.
어제 왔었는데 안계셔서...

반갑게 내미는 그릇을 받아보니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김치가 한 보새기 담겨있다.
아침일찍 식전에 맛보라고 내려보낸 보람엄마의 마음씀에 무척이나 고마웠다.

> 잘 됐다. 안그래도 아침부터 뭘 먹을까 걱정했는데, 맛있는 김장김치에 밥먹어야겠다.

좋아하는 날 보며 생긋웃는 보람이를 보다 난 깜짝 놀랐다.
가디건 속에 반팔 티셔츠가 보였기 때문이다.

> 보람아?
너 그렇게 입고 안 추워?

> 예. 집에 금방 올라갈텐데요. 뭐.

그새 나와있던 신랑이 한 마디 거든다.

> 환경보호론자인 보람이네가 그러니 아저씨는 실망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석유도 한 방울 안나고 가스도 안나오고, 전기도 사용하려면 많은 돈이
드는데, 게다가 자연파괴는 또 어떻구!

머쓱해하는 보람이를 쓰다듬으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 음~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은 애국하는 길이자, 환경을 지키는 일이야.
에너지도 역시 자원이고 이것이 고갈되면 우리에겐 엄청난 시련이 올 수도 있거든...
게다가 요즘처럼 경제가 안좋을때는 나 한사람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모두을 위해서
실내온도를 18~20 도 정도로 낮게 하는게 좋아.
우리가 에너지를 10% 절약하면 22억불을 모을수가 있단다.
어때? 굉장하지?

> 그렇게나 큰 돈이 모아져요?

> 그럼.
아저씨네는 일부러 베란다 샷시를 고쳤는걸..
열을 밖으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어때 아저씨도 멋지지?

항상 보람이와 내게 환경보호 얘기를 듣던 신랑이 오늘은 에너지 절약에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한다. 후후.

사실 우리는 실내온도 높이는데만 치중을 했지, 열의 관리에는 소홀한 면도 없지않아 있다.
언제부터인가 두터운 커텐은 자취를 감추었고, 내복을 입는 사람들은 웃음거리가 될 정도가 되었다.
아파트의 난방은 거의 25도를 웃돌고, 한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지내는 집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와 집의 온도차는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
건조한 아파트에서 적절한 환기도 없이 따뜻한 공기만 맴돌면 기관지며 호흡기에 좋지 않을뿐더러 갑자기 밖에 나가면 온도차로 인해 감기에 쉽게 걸린다.
적절한 실내온도는 여름의 경우 26~27℃이고, 겨울은 18~20℃이다.

일층이어서 약간 외풍이 있는 우리집은 다른집에 비해서 좀 추운 편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내복을 입히고 얇은 실내복을 하나 더 입힌다.
우리 부부역시 보통때는 두툼한 추리님을 입고 생활한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건조한 기운도 적고, 실내공기 역시 비교적 쾌적하다.

그깟 난방비가 몇푼이나 된다고 그러냐고 질문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것은 가계에서 나가는 금전적 지출에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좁게는 가정의 지출, 넓게는 나라의 지출, 더 나아가서는 지구자원의 고갈을 막는 엄청난 참여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보람이가 내게 살짝 이렇게 말했다.

> 아줌마.
올라가서 제가 엄마 혼내줄께요.
이제부턴 나도 긴팔입고 지낼거예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