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사랑해 주면 기뻐하며 잊지 말고,부모가 미워하시더라도 송구스러이 생각하며 원망하지 말고,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부드러이 말씀드리고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증자--
증자( BC505~BC436 ?) 중국.철학자.
자는 자여.공자의 문하생이었고,'대학'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대학'은 '예기'의 한 부분이며 사서 가운데 하나로 ,그는 여기에서 유가의 덕목인 충과 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유가에서 강조하는 '효'를 재확립하는 데 힘썼는데,
"부모를 기리고 ,부모를 등한시 하지 않으며,부모를 부양한다."라고 하여 효를 삼 단계로 열거했다.(다음 백과사전)
나는 매일 '따뜻한 하루'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모처에서 받고 있는데,여기서는 그 글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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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모님의 편지*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약하고 지저분해지거든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이해해다오.
늙어서 우리가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
너희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고 입혔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늙어서 우리가 말을 할 때,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말하는 중간에 못 하게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너희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를,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또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는지 아느냐?
상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법,옷을 어울리게 입는 법,너희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
혹시 우리가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 될 때면, 기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 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그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희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너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또 우리가 먹기 싫어하거든 우리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다오.
언제 먹어야 하는지,혹은 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단다.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다오.
너희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우리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의 손을 우리에게 빌려다오.
비록 우리가 너희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희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언젠가는 너희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자식 양육은 의무이고,부모에게 하는 효도는 선택인 걸까요?
부모는 '의무'라는 단어로 자식을 키우기보다 '운명'이란 단어로 자식을 키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싸고 ,때로는 훈육도 하며 바른 길로 인도해 줍니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를 주기만 하는 존재로,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존재로만 의식합니다.
부모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의 어릴 적과 같이 힘없고,아프고,투정도 부리고 싶은 존재란 것을 이제라도 알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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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서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한다거나 ,
자식들 키울 돈이 부족해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자식의 양육도 의무이지만,부모 봉양도 의무인 것이 인지상정이다.
여러분의 부모님들께서도 당신들을 키우실 때 많은 것을 포기하셨고,희생하셨으며,당신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여러분이 얼마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신 분들인 것이다.
그런데,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지 않던가?
힘도 없어지고,능력도 없어지며,정신도 흐릿해지기만 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하시느라 노후대비도 못하신 분들이시다.
그럼 옛날에는 자식들이 부모님들을 봉양했다.
그럴 땐 가정도 화목했고,많은 사람들이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행복하단 생각도 할 수 있었으며,불안하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식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자식 주위를 맴돌며 보살피고 싶어 한다.
물론 있는 집에선 부모님들께서 내 새끼 키우는 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자식에게 하는 정성의 10분의 1만이라도 당신들에게 쏟아주길 갈망하고 계신다.
그러나 당신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 쏙 뺏어가버리고 나면 나 몰라라 하며 방치하기 일쑤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 현실,
그럼 그 자식들이나 본인들은 행복한가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게 현실 아닌가?
늘 불안하고,불행하며,안절부절 못 하겠는 것이 왜라고 생각하는지?
부모님들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곤 생각지 않는지?
우리 부모님도 조부모님들께 그랬으니 나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그런 경우엔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바라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기왕지사이고,내가 끊으면 된다.
그러지 않으면 내 자식들도 나를 내팽개치며 ,아버지도,어머니도 그러셨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할 것 아닌가?
위 편지글을 보면 절절하지 않은가?
우리들도 저렇게 절절한 심정이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사실 아닌가?
요즘은 많이 약아져서 ,난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후대비를 한다며,그래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봤다.
이 무슨 패륜적 태도란 말인가?
여러분들을 키우시느라 뼈가 으스러지도록 고생 하신 것에 비하면 현재의 그 분들의 처지는 너무나도 비천하기만 하다.
그 마저도 빼앗지 못해 안달하지 말고 ,열심히 찾아 뵙고,보살펴 드리면서 노후라도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식을 잘 키우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도 한때는 부모님들과 격해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찾아 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도 보고 싶어하시던 내 자식들을 데리고 찾아 뵙고 화를 풀어드리면서 묵지근하게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어리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이후,파경을 맞고 나서도 힘들 때면 찾아 뵙는데,그때 마다 큰 힘이 돼 주시곤 한다.
나이 여든이 되신 분께서 쉰 살이 넘은 자식의 먹거리를 걱정해 주시고,안쓰러워 해주시는 걸 느낄 때면 얼었던 가슴이 푸근히 녹아내린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을 하시는 걸 보면 고마운 마음에 울컥하곤 한다.
꼬옥 안아 드리고 고맙다고,사랑한다고 말씀드리면서 울컥해선 돌아서서 오곤 하는데,
그럼 한동안 정말 힘도 나고 ,바보처럼 실실 웃기도 하게 된다.
이게 사람사는 재미가 아닐까?
요즘은 자녀 양육마저 선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은데,
이제 물신의 노예 노릇 좀 그만 하고 인간으로 돌아 와서 사람답게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