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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절약.


BY 사교계여우 2021-07-06

1.
나는 돈을 안 쓰지만, 절약하지는 않는다. 절약하기 위해 막 마일리지를 모으고 할인할 때 사고 샘플을 받고 가계부를 정확히 계산하고 가성비 좋은 걸 더 검색하고... 이러지는 않는다. 그냥 필요하면 적당한 걸 고른 다음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재정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면 산다. 할인 안 해도 할인 시기를 굳이 기다리거나 기억하지도 않고, 가성비도 딱히 따지지 않는다. 제품이 기능이 좋고 튼튼하면 그걸로 된다. 그래서 알뜰하게 쓰는 이가 내 소비 패턴을 짧게 보고 '그런 식으로 쓰다간 돈 못 모은다' 고 조언하는 일도 아주 가끔 있다.

돈 모으는 데 딱히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안 쓰기 때문이다. 김생민의 영수증 보면서 나는 김생민의 마음이 곧 내마음과 같이 편안했다 ㅋㅋㅋㅋ 왜냐면 내가 물건을 안 사고, 돈을 안 쓰기 때문이다. 할인이라고 물건 사는 걸 나도 아즈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필요하면 사고, 아니면 안 사는 거지, 할인이라고 해서 사야한다는 욕구는 둘 다 없다. 우연히 살 생각이었던 물건을 아직 안 샀고 마침 할인시즌이 되면 좋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중에 쓸 거니까' 라는 생각으로 할인할 때 '미리 사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러니 굳이 절약하는 습관이 없어도, 애초에 소비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돈이 딱히 나가지 않는다.

2.
제일 스트레스 받는 경우는, 1) 절약하는 습관이 없고 2) 소비하려는 욕구가 큰데 3) 예산 제한이 넉넉치 않고 4) 목표로 하는 목돈지출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제일 스트레스 없이 돈 잘 모을 사람은 1) 절약하는 습관이 배어있고 2) 소비욕이 별로 없으며 3) 예산 제한이 넉넉하고 4) 딱히 목돈 지출 예정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3.
남이 사고 돈 쓰는 거야 사고 싶으니 샀고 쓰고 싶으니 썼겠지 싶어 별 감상은 없다. 있는 돈 어찌 쓰든 그 사람 맘이지. 그렇지만 돈을 모으고 싶고 집을 사고 싶고 이사를 하고 싶고 ....이런 본인에게 절실하고도 중요한 저축 목표를 가진 사람이, 그것보다 우선순위가 높아보이지 않는 온갖 잡다한 항목에다가 돈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약간 괴이하다.

돈을 모을 거라면 우선순위 지정이 필수이지 않나. 돈을 안 모을 거면 상관없다. 이미 목표한 돈을 모으고 있고 지장이 없으면 나머지 돈은 팡팡 소비해도 되지! 그런데 자기 목표가 있고 그 저축을 못 하고 있으면서 팡팡 쓰고 있는 광경을 보면... 소비욕이 너무 커서 줄이기가 힘든 건가?

모을 목표가 있고 그게 중요하다면, 저축할 금액을 먼저 확보하고 나머지를 쓰면 된다. 그런데 일단 쓸 것 쓰고, 남은 것 중에서 저축하려 하고, 남는 돈이 별로 없어서 저축액이 적다고 고민하고, 무슨 소비를 줄여야 할까.... 이런 순서로 많이들 고민한다. 하긴 그런 순서로 가는 사람이어야 고민을 하게 되겠지...

4.
저축을 더 해야 하고 목돈을 모으고픈 마음이 있는데, 도저히 소비를 줄일 데가 없다는 사람들의 지출내역을 보면, 내 눈에는 왜 썼는지 잘 모르겠는 항목 천지다. 그러니까 내게는 대개 대부분 매력적이지 않는 제품/서비스 구매 목록인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매력적이었겠지. 그렇지만 물어보면 당사자도 '기분 전환'을 위해서 '그 정도'는 자신에게 해줘야 숨통 트고 살지 않겠냐고 서술하지, 그것의 효용에 어떤 큰 의미를 두는 건 아니었다. 주로 먹는 거랑 마시는 거, 혹은 아주 꼭 좋아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적당히 노느라 들어가는 돈들. 그래 아주 꼭 좋아하는 활동이 아니라도 사람은 대충 노는 것도 필요하고 거기엔 돈이 든다. 지출을 하고 싶고 그로부터 약간이라도 효용을 얻는다면 지출은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정당화 하다보면 줄일 항목은 하나도 없고 돈은 못 모으는 거다.

5.
온오프 주변에 돈 없고 모으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말들을 듣다보면, 드립인지 진심인지 잘 파악하기가 어렵다. 진짜 빠듯한 사람들 말고, 뻔히 덕질과 취미에 수십만원씩 들이고 있는 걸 서로 아는 사이일 때 말이다.

진심이라면 자기 덕질과 취미에 쓰는 그 엄청난 돈을 반만 줄여도 상당한 저축액이 나올 걸 아니까. 드립이라면 그냥 하는 말이겠지. 내가 만약 지금 월세집에 살고 빨리 전세나 자가로 가야 한단 목표가 있어 돈을 모으는 상황이라면 엑소콘서트 안간다. 오버워치 전리품 상자도 안 사고 부계정도 안 사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하거나. 즐길 거 즐기고 원하는 거 하면서 돈을 모으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현재 40대부터 그 이하에는, 즐길 걸 일부 포기해야 돈이 모인다는 말을 극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가서 그런 말 꺼내면 안된다.

진짜 절실하면 본인이 어차피 알아서 한다. 당장 월세낼 돈 없어 쫓겨날 사람이 덕질에 수십만원 쓰지 않으니까. 쓰는 사람은 당장의 의식주에 불편이 없고 장래의 목표도 아주 급박한 정도가 아니니까 여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돈이 잘 안 모인다고 하소연하면, 그냥 끄덕끄덕 하는 것 외엔 마땅한 반응이 없다. 진짜 빠듯하면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소비가 큰 경우에도 그걸 지적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심지어 자기가 뭘 줄여야 할까를 물어오는 경우에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 ^^; 이걸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하고 묻는 순간 그걸 왜 지출해야하는지 설명이 뒤따라온다!

그래서 김생민의 영수증같은 코너가 필요한 것 같다. 개그맨이, 과장과 농담을 섞어서, 절약할 부분들을 알려주는 것. 진지하게 새마을운동세대의 꼰대가 요즘 젊은 것들은 소비지향적이라면서 야단치는 포맷이 아니라, 사람 좋고 성실하고 재미있는 개그맨이, 상대를 존중하고 격려해가면서, 웃긴 방식으로 '줄일 소비 항목' 을 체크해주는 포맷. 그 팟캐를 보고 자기 지출에 대해서도 점검할 수 있었다며 좋았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많다. 그 점검이 필요하고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생민이라는 캐릭터와 그 포맷을 빌리지 않으면 점검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절약이나 소비억제도 개인의 성향이나 목표 따라 분명 필요한 기술인데, 억압의 세월이 있다보니 이에 대해 말하면 욕 먹는 분위기가 너무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