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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편리한 제품


BY 사교계여우 2021-08-20

사 모으던 때도 있었는데 사회생활 초기에 이사를 다니면서 그게 다 짐처럼 느껴져서 다 버렸다. 읽고 싶은 책은 꼭 사서 봤기 때문에 책이 좀 많았는데 그 중에서 기술서적이나 자기계발서들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모두 중고서점에 가져가 처분했다. 레고를 몇 개 가지고 있고 여전히 프로그래밍이나 신기술에 관한 책들을 사서 모으고 있지만 이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처분할 게 분명하다. 짐 된다. 자리만 차지한다. 다시 보지 않는다. 다양한 이유들로 물건을 오래 쌓아두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으로 대신한다. 음악은 스포티파이 구글뮤직 유투브를 돌아가면서 좋은 딜이 뜰 때 가입해 듣는다. 전자제품에 욕심이 없지만 최신 픽셀폰을 연달아 사서 쓰고 있고 좋은 헤드폰이 하나 있고 운동할 때 쓰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번들로 받은 이어폰들이 몇 개 있다. 게임 개발도 했지만 게임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게임기도 없고 관련해 아는 것도 거의 없다. 굉장히 단조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참 편리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카드만 등록하고 버튼 몇 번 누르면 끝이다. 물건을 받는 것도 아파트 프론트데스크에서 다 받아주고 서비스들이라면 가만히 앉아 몇 번의 클릭으로 누릴 수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무척 아쉬울 때가 있다. 내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 내 주변에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나와 물건과의 관계 물건에서 시작되거나 물건이 이어주는 이야기들이 새로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마치 빌려 사는 인생 같다고 할까.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도 아니고 소속됐다는 느낌도 아니다. 나와 나를 둘러 싼 것들 사이에 느슨한 관계가 있는데 이게 편리하지만 편안한 관계는 아니랄까. 충분히 만족하는데 얕은 소속감 일회적인 관계성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이. 한참 세월이 지난 뒤 주변을 둘러 볼 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설명해줄 것들이 과연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