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초등학교 1학년 반 모임.
부자 동네는 아닌데, 그렇다고 교육열이 시들하지도 않은 어느 동네의 초등학교. 아이는 입학했고, 학부모라는 호칭 하나가 추가됐다. 드디어 나도 반 모임이라는 곳에 가게 되는구나.(근무하던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데리고 다니느라 유치원 반 모임에 끼질 못했기에 진심으로 설렜다)
초기 반 모임 단계에서 자리 선정이 매우 중요한데, 운이 좋으면 옆자리의 그 엄마와 꽤 오랜 시간 단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색한 사이의 엄마들끼리는 학교 얘기만 한 게 없다.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우리 선생님’. 선생님 뒷담화를 하기 위해 모인 모임인가 싶을 만큼 적당히 어색한 엄마들끼리는 그만한 소재가 없다. 담임 칭찬이 오가기도 하지만 드물다. 사람끼리 친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함께 헐뜯는 시간의 양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담임 선생님은 엄마들끼리 친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이해해주시길. 그렇게 상대 엄마의 성격, 대략의 성향, 상황이 파악되면 슬슬 시동이 걸린다. 시월드 배틀이 시작된다. 시댁에서 빌려 간 1억을 안 갚으면서 애들 내복 한 벌 안 사주시고 어버이날마다 내려와서 마늘을 심으라고 하셔서 온몸이 쑤셔서 죽을 지경 정도면 상위권 가능성 있다. 그러면서 자식에게 빌린 돈으로 벤츠를 뽑아 타고 다니시기까지 한다면 사뿐히 1위 등극이다. 서로 얼마나 지독한 시월드에 시집갔는지를 얘기하다 보면 맥주잔이 정신없이 비워진다. 아직 어색한 사이에, 흠 잡히면 안되는 사이기에 격렬한 리액션은 필수다. 쌍욕이라도 같이 해줄 것처럼 시월드로 하나가 되는 밤이다. 애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엄마들이 친해지느라 정신이 없다. 교실이 아닌 곳에서 반 친구들을 만나 잔뜩 흥분한 아이들은 부상자가 속출한다. 우는 놈, 싸우는 놈, 욕하는 놈, 때리는 놈, 맞는 놈, 아픈 놈, 졸린 놈들이 각자의 엄마를 부르며 징징거린다. 아주 가끔은 자는 놈도 있다. 다른 엄마들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 아이 단속시키고, 싸운 거 해결해주고, 아이들 끼니도 그럭저럭 해결시키고, 화장실에도 함께 다녀온다. 궁둥이 잠시 붙이고 커피 한 잔 마실 정신도 없는 시간. 그 와중에 계속되는 시월드 얘기에는 잊지 않고 과장된 리액션을 날려야 하고, 다른 집 아이의 큰 키와 똑 부러진 말투를 보며 영혼 없는 칭찬도 계속해야 한다. 헤어질 땐 더 놀고 싶다며 나라 잃은 표정으로 울고불고하는 아이들을 잘 달래 집까지 끌고 들어오는 미션도 남아 있다.
그저 두 시간짜리 반 모임에 다녀왔을 뿐인데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다. 진이 다 빠졌다. 출근하는 게 더 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영혼을 수십 번쯤 털리고 나면 함께 하고 싶은, 오래도록 의지하고 싶은 몇이 남는다. 모임 때마다 거르고 거르고 걸러 결국 맞는 짝을 찾는다. 연애는 아닌데, 연애만큼 힘든 건 분명하다. 나 역시 그렇게 엄마의 의무를 다한 선물로 4년간의 반 모임에서 건져낸 보석 같은 아이 친구 엄마가 두 명 있고, 그들과는 가끔씩 주말 밤 모임으로 회포를 푼다.
남자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반 모임의 징글징글한 추억이여.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