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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부부의 날


BY 사교계여우 2022-05-21

이사


                           김나영


 이 남자다 싶어서
 나 이 남자 안에 깃들어 살
 방 한 칸만 있으면 됐지 싶어서
 당신 안에 아내 되어 살았는데
 이십 년 전 나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나 당신 밖에 있네
 옛 맹세는 헌 런닝구처럼 바래어져 가고
 사랑도 맹세도 뱀허물처럼 쏙 빠져나간 자리
 25평도 아니야
 32평도 아니야
 사네
 못사네
 내 마음의 공허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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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 문정희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앵 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 보는 사이이다  
 
서로를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죄 없는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 시집 <다산의 처녀>(민음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