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생, 90학번인 필자는 이제껏 ‘데모’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386세대를 막 벗어나 시대를 잘타고 난것인지 아~~~주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학창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권력과 조우한 일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얼마 지 않아 등교 길에서 전경들이 학생들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가방을 뒤지고 있는게 아닌가. 아마 시위학생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듯 했다.
‘아, 드디어 나도 대학생이 되어 신분증 검사를 받는 구나’
막 떨리면서 설레는,... 뭔가 통과의례를 거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를 흘긋 본 전경은 신분증도 보지 않고 그냥 가라고 했다. 갑자기 풍선에 바람 빠지듯 허탈해진 기분. 무시당한 것 같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엔 내가 너무 평범해보였나 보다.
그때만 해도 데모, 시위, 집회는 대학생들의 전유물이었고 뭔가 대단한 사상가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구호를 외치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로선 차마 나서지 못하는 일을 하는 그들이 걱정도 되면서 왠지 어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전경의 신분증 검사가 금단의 영역에 잠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면 과장이었을까.
그들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 솔직히 말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옳은 주장을 했던 것 같은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앉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 왠지 '불온'해 보였다. 정말 '불온'해 보였다!
체제수호가 지상목표이던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표어가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싸우지 말고 서로 힘을 모아 잘살자는 말에는 백배 공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흩어지면 죽는다’에 심한 강박증이 있어 보인다.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로 나름의 논리로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절충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합리’가 요구되고 ‘이성’이 필요한데 그것이 안 되는 사람들은 '배후'를 찾기 시작하고 '공멸'을 주장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집회가 20여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정치집회도 아니며 님비 현상도 아니다. 자기네 국민들도 먹지 않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그저 절체절명의 주장일 따름이다.
필자와 나이가 비슷한 주부들의 실제대화 내용이다.
주부1 “어제 우리 남편이 촛불 집회 나갔는데 거기서 대학 친구를 만났대요.”
주부2 “......”
주부3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싫다는데 정부가 왜 그럴까? 미국하고 협상이 그렇게 중요한가?”
주부1 “다른 나라와의 협상도 중요하지만 국민 절대 다수가 반대하면 다시 해야죠. 경제효과가 아무리 커도 국민 건강이 우선이지”
주부3 “대통령이 독불장군이야. 도대체 국민 말을 안 들어.”
주부2 “그래서 야당이 요새 신났대.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니까 야당만 좋지.”
주부1 “잉? 무슨 야당... 야당이 뭔 상관이래요? 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는 국민의 뜻이지.”
주부3 “정말 TV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요. 애들도 부모따라 많이 오고.”
주부2 “참 잘한다. 북한만 좋아하겠네.”
띠용~~~~~
좀 충격을 받았다. 사실 매우 많이 받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하면 북한이 좋아하겠다고 하니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주부3은 필자와 나이와 거주지가 같으며 아이의 학년도 같아 평소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촛불집회를 보는 시각이 이렇게 극과 극일지는 몰랐다. 그녀도 물론 미국산 쇠고기수입은 반대지만 대통령의 잘못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형님께서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해 “실직하고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과 서민, 어려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참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집회의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아니면 이미 알고 있지만 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인지 문제의 본질을 잊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꼴이다. 설사 집회 참여자들이 정말 실직자이고 할일없는 사람들이라 치더라도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겠다는데 그들의 신분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촛불집회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자의에 의해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모인 자리다!!!
경제대통령. 모두가 너무나 원하고 기다렸다. 이태백, 사오정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정치, 이념은 이제 배부른 말장난이 아닌가 싶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그저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범 100일 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것 투성이다. 포퓰리즘도 경계지만 어찌됐든 국민의견 수렴은 국가수반의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다.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닌,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살기 좋은 이유가 5년에 한번씩은 '혹시나 이제는 살기 좋아지려나'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란다. 정말 앞으로 4년 9개월이 우리 모두에게 행복의 시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아니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의와 진실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곳이 되길 하나님, 부처님, 마호메트에게 두손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