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는 왠만해선 쓰지 않는 마스크를 나보다는 학원 오는 애들 생각해서 쓴다. 애들이 안쓰고 있어도 일단은 나에게서 나가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안심이 되니까. 그런데 의외의 장점이 있다. 얼굴을 대면하기 껄끄러운 사람과의 대화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세상에, 나만 그래? 가면쓰고 일하면 아주 쿨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가면무도회 주관하는 행사장 직원이라면 또 모를까. 단점이 더 많기는 하다. 답답한 건 둘째치고 빨리 말하다보면 숨이 차다. 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걸치적 거리고 숨 잘못 쉬면 안경에 습기도 찬다. 물 마시려면 그 마스크 한쪽으로 살짝 벗고 얼른 마셔야하고 눈의 표정만으로 내 감정상태를 애들한테 전달하기 힘들다. (화내고 있는데 잘 모르는 거 걔네들한테 좋은건가?) 그러니까 결국 많은 단점들 중에 작은 장점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만큼 내가 그와 말하기 엄청 싫다는 증거일 뿐.
누군가 나에게 이성적으로 깐깐하게 굴지말고 연민을 가져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연민을 가지라고? 아니 왜? 솔직히 지금도 연민의 감정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그게 그저 "인생불쌍하다 그냥 그렇게 살다 죽어라."의 심정은 아닌 것 같다. 그건 나와는 볼짱 다봤으니 떨어지고 그냥 너대로 그렇게 살던지 말던지 하라는 포기같은데 연민은 그보다는 성숙한 감정이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이해하지 못한 채 퇴근하는 어느 날, 그 날 아침에 주말내내 머리를 꽉 채운 근심과 울화통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원장님의 솔직한 한탄을 듣고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하기 싫음을 온 몸으로 발산하며 모니터를 노려보는 모습에서 연민이라면 연민일 것 같은 감정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사느라 애쓴다." 둘 사이의 차이가 없는 것도 같고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런 표현을 하는 내 마음에 증오나 미움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면 분명히 있었다.
마스크를 언제 벗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달 동안은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3월엔 껄끄러운 그가 더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눈에 촛점을 흐리면 서로 적당히 감정을 숨기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노력까지 기울여야 하느냐를 생각하면 피곤하지만 어차피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상이다. 집에 와서 마스크를 벗고 애정하는 [생활의 달인]을 보다가 동네에 숨은 맛집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식탐은 없는데 많이 먹고, 맛집투어는 안하면서 접근성이 좋으면 의외의 집념을 보이는 남편이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에 맞춰 예약을 하자길래 일단 저기 나온이상 올해는 텄다,고 봤다. 그런데 먹을 복이 있었는지 오늘 아침에 계속되는 통화중연결음에 거봐라 내년에나 가자, 고 톡을 보냈더니 장난하냐며 지금 바로 연결되서 예약했다며 의기양양. 올해 복을 다 쓴건 아니니? 그런데다 몰빵하면 안될텐데..... 어쨌든 작은 호사를 기대하며 또 견뎌보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