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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것은 비정상?


BY 미개인 2018-12-01

성에 대한 잦은 생각은 문제인가? 
                 by 솜사탕

               https://blog.naver.com/qkdnl098/110082305559

"나는 47세의 기혼 남성으로 늘 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늘'이라고 함은 몇 분마다(식료품점에서,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도,어디에서나,언제나)를 의미합니다.
결혼생활은 행복합니다.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어떤 행동을 할 생각은 없으나,이렇게 빈번하게 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정상일까요?
이 나이에도 이 모양이니 더 강한 성 충동을 갖는 10대 소년들은 얼마나 성에 대해 생각할까요?"

이 문제에 대한 소수의 남성을 조사한 두세 편의 연구가 있다.
그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거의는 놀라우리 만큼 규칙적인 빈도로 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감퇴하는 듯하다.

방금 5분 동안에 성의 문제가 머릿속을 스쳐간 적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의 대상이 된,
16세와 17세 남성의 51퍼센트가 "예"라고 응답하였고,
40~50세 남성의 20퍼센트가 "예"라고 응답하고 있다.
다시 16세와 17세 남성의 4퍼센트에 있어서는 그 5분 간의 관심의 중심은 성이었다.

다른 또 하나의 조사에서는 12~19세의 남성들은 5분 마다 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추정되었고,
40~49세의 남성은 30분마다 성에 대해서 생각하였다고 응답하였다.

          --J.M.라이니쉬/R.비즐리 공저   '최신 킨제이 리포트'에서--

~남자의 뇌의 거의 대부분은 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도 있고,
프로이트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성욕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을 함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섹스를 하면서도 마음껏 구사를 하지도 못하니,
남자로 사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닐 줄 안다.^*^
더군다나 몹쓸 수컷들에 의해 조성된 '미투 열풍'과,남녀 평등의 한 과정인 페미니즘 분위기에 의해 ,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움츠러든 남자들도 많을 줄 안다.
정상적인 사랑을 하다가 헤어졌음에도 그 처리가 말끔하지 않으면 성폭력범으로 몰릴 수 있다.후덜덜~

어떻게 될지 모를 앞날을 대비해 알리바이도 챙겨 둬야 하고,증거도 꾸준히 확보를 해가야 한다.휴우~
40여 년 전의 나의 청년기에 비하면 현재의 한국 청년들의 처지가 딱하기까지 하다.
성이 많이 개방됐다고 하지만,글쎄~뭐가 개방이 됐다는 것인지,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과거의 남자 중심적 세태가 옳았다는 것도 아니고,지금이 그르다는 것도 아니다.

과도기적 혼란일 수 있고,얼마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바람직한 길을 찾아가노라면 ,

훨씬 자유롭게 자신들이 원하는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과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잔 생각에서 이 화두를 집어들었다.
열심히 경쟁력을 키우면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언제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스킬과 정력을 확보하고 기다리자.
그런 당신을 알아보고 찾아와 줄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꿈꾸던 이상형의 사람이,당신 같은 사람을 꿈꿔 왔노라며 자신의 사랑을 받아 달라면서...^*^

과거엔 상상하는 바를 실현 시키기 위해선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됐었다.
키스만 해도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이 적지 않았고,
얼마간의 허풍으로 그런 여자를 사로잡아 나의 사람으로 만드는 건 손쉬웠다.
물론 뒷골목 양아치 수준에서의 연애 행각을 말하는 것이니 시비는 참아주시길...
그런 잘못된 연애 행각이 공공연하게 벌어진 결과,현재의 혼란스러운 성 문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를 향수하며,그것이 다라고 생각하며,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인간성이 아닌 조건 등을 보고 하는 거래 성 결혼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혼이 쉬워지고,사랑 무용론이 펼쳐지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에 와 있다.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의 책임일까?
바로 우리들의 잘못이고,우리들의 책임이다.

정치꾼들이,제도권에서 물질만능주의를 따르라고,물신을 숭배하라고 하는데 
거기 따르기만 한 우리들이 무슨 죄이며,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따지고 싶은 사람들 있을 것이다.
그 정치꾼들을 만들고,그들로 하여금 현 제도를 만들게 만든 주역이 누구인가?
우리 부모이며,우리 이웃이고,우리들 자신이다.
선택까지는 자신의 멋대로 하고 싶어 하면서도,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지길 거부하는 게 과연 주인의 자세일까?
민주주의(民主主義)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민(民)인 '나'이다.
내가 모든 걸 다할 수 없기에 생수 한 병,기름 한 방울을 소비하면서도 우린 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
그 돈으로 심부름을 할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선거를 한다.

최고의 심부름꾼인 대통령도 결국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행복을 추구할 임무를 수행해야 할 심부름꾼일 뿐이다.
그런데 주인들이 심부름꾼들한테 물질만능주의를 ,물신숭배사조를 조성하라고 강요해 왔다.
이런 비인간적 작태에 이골이 난 친일매국노 등으로선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운 일이었고,
우리들의 혈세로 자신들의 ,조상들의 범죄 수익을 불리는 짓을 하며 인정을 받게 되었다.
70여 년을 그래 온 결과,친일매국노들은 거부가 됐고,주인들인 국민들은 알거지가 됐다.
빚을 지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그것들의 돈을 빌려 쓰면서 그것들의 종이 되었다.
주인이 심부름꾼을 제 돈으로 키워 놓고,주객이 전도됐으며,그것들의 종으로까지 전락이 돼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텐가?

그러나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대오각성을 하고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찾아가면 된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빚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심부름꾼들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능하냐고?가능하다! 분수껏 살면 된다.
그럼 희망이 보이고,향상하고 싶어지며,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
분에 넘치는 삶을 누리며 불안에 떨고 두려워하며 사는 신기루 같은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온전히 꿈을 키우는 데 투자하고,올인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월급날이 돼도 월급을 채 만져보기도 전에 대출 이자로,카드 값으로, 공과금으로 다 빠져나가는 걸 보고 허탈하진 않았는지?
월급을 쪼개고 쪼개서 분수껏 사는 데 쓰고 남는 돈을 모아서 목돈을 만들어 본 기억은 있는지?
그 기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성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경제 토론이라도 벌이는 듯한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째려보고 싶은 사람 있을 줄 안다.
옛말에 "의식(衣食)이 족(足)해야 예절(禮節)을 안다!"는 말이 있다.
경제적 바탕이 있어야 기본적인 인간적 삶을 구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 사회에 나오기도 전부터 학자금 빚으로,카드 빚으로 시작을 하게 된다.
시원찮은 일자리라도 얻지 않는 한 그 빚으로부터 벗어나긴 쉽지 않은데,그런 일자리도 없다.
고작해야 하루 벌어서 하루 살기도 벅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빚에 쪼들리고 갑질에 치이며 절망을 거듭하게 된다.
운이 좋아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했다 해도,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며 빚을 지게 만들고,근사한 차를 몰아야 한다며 또 빚을 지게 만들고,
명품 옷을 입어야 한다면서 카드를 긁어 대며 빚인 줄도 모르고 빚을 지고 있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요즘 세상에 빚지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그러니 나도 정상이고 중산층이다!"
얼어 죽을...
당장 1년만 몸져 누워도 온갖 빚 독촉에 시달려 길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이...ㅠㅠ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빚을 지고 빚을 갚아야 하는 삶을 살면서 인간적인 삶의 길을 모색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부모로서,자식으로서의 도리에 충실할 수 있을까?

성생활인들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까?

나는 독거 노인이 돼가고 있고,잘 살지 못하지만,욕심도 없고,빚이 전혀 없다.
풍족하게 살진 못하지만,불안하거나 부족하게도 살지 않으면서 여유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성적 상상력도 마음껏 펼치고,즐기고,보다 신 나는 성생활을 꿈꾸고,그 꿈을 실현 시키며 살고 있다.
위의 사례자처럼, 자연스러운 욕망을 감추거나 하지 않고 분수에 맞게 마음껏 해소하며 살고 있다.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불안하지 않고 두렵지도 않으며 원이 없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고 외치고 돌아다니고 싶지만,참고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아니던가?
주제 파악 냉철하게 하고,그에 맞게 분수껏 살자.
그러면 잠 자리가 편안해지고,성생활이 즐거워지며,삶이 행복해진다.
남들이 뭐라든 하루,24시간 성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도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성욕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데,
47세의 남자가 성욕이 많은 것 같다고 염려를 하다니...뭥미?
대신 그것을 아름답게,바람직하게 풀 수 있도록 올바른 마인드를 가지려 애쓰고,
파트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스킬과 체력 보강에 애쓰면 염려할 시간에 설렐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