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명의 여성이 처음으로 자위하던 순간에 대해 말하다!
by Kelsey Borresen
내가 처음으로 자위했던 게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중학교 때 MTV에서 ‘언드레스드’를 보고 나서 해보지 않았나 싶다.
그 무렵 가운데 손가락을 성기 안에 넣었다 뺐다 해보고,
주위를 만져보며 왜 이걸 가지고 다들 난리일까,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제대로 오르가즘을 느꼈던 진짜 첫 자위는 훨씬 더 생생하다.
친구들이 열여덟 번째 생일 선물로 ‘언제나 준비된 프레디’(Ever-Ready Freddy)라는 바이브레이터를 사주었다.
장난으로. 프레디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누르면 “젠장, 넌 진짜 남자는 못 구해?” 등 유명한 대사가 나왔다.
친구들이 내가 그걸 실제로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걸 많이 썼다.
프레디 덕택에 오르가즘을 해방하는 클리토리스의 마법 같은 힘을 알게 되었고,
프레디가 고장날 때까지 일주일에도 몇 번씩 프레디의 도움을 받았다.
다른 여성들의 첫 자위는 어땠을까? 우리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첫 자위 경험을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감각적이고, 우스꽝스럽고, 다양하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갖기 쉬운 수치심 가득한 경험담도 있다.
* 분량과 의미 전달을 위해 일부 편집을 거쳤습니다.
입학 전 놀이 시간
“처음 자위했을 때 나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던 나이였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카펫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을 때, 나는 내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정말 위안이 되었고 계속하고 싶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아마 선생님이 그만두게 했던 것 같다.”
- 헤일리 제이드, 성 노동자
즐거운 샤워
“다른 여자애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샤워 중 샤워기를 통해 자위를 알게 되었다.
내 클리토리스(음핵)를 향해 계속 물줄기를 쏘면 허벅지가 떨린다는 걸 알게 되자,
나는 욕조에 누워 파도처럼 연달아 찾아오는 오르가즘을 느꼈다. 7~8세 정도였다.
당시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자위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즐거움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 크리스 맥스웰 로즈, 성교육 전문가, 팟캐스트 ‘Speaking of Sex’ 진행자
정글짐
“초등학교 때 나는 정글짐에 (몸을 비비며) 기어오르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당시에는 내가 뭘 하는 건지 몰랐지만 말이다.
그 후 나는 섹스 세라피스트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으면서,
여성이 물체에 몸을 비비며 자위하는 게 흔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여성은 그게 ‘괴상한’, ‘특이한’ 자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천 명의 여성에게 오르가즘 느끼는 법을 가르쳐 온 내 경험으로는 가장 흔한 테크닉 세 가지 중 하나다.”
- 바네사 마린, 섹스 세라피스트, ‘Finishing School: Learn How To Orgasm’ 제작자
수치심에 휩싸여
“내 기억에 처음 자위했던 것은 여섯 살 무렵이었다. 요령을 제법 빨리 터득했다.
열 살 정도까지는 참 괜찮았는데, 그 무렵 나는 섹슈얼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성을 대상화 하는 게 수치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은 꽤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정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여성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나의 사적인 생각과 느낌을 알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도 먼저 커밍아웃 한 사촌들의 도움을 받은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열네 살 때 용기를 얻어 커밍아웃 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나는 섹스를 긍정하며, 내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작업은 LGBTQ에 관한 것이 많다.
그리고...내 인생의 사랑과 약혼했다!”
- 테비 코우, 일러스트레이터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여름
“열다섯 살이었다. 침실에 있었다. 여름이었고, 다들 호숫가에 나가 있어 집엔 나 혼자 뿐이었다.
매트리스 틈에 숨겨두었던 퍼스널 트레이너가 되는 법에 대한 전단지를 읽고 있었다.
침대 끝에 매달려 전단지를 다시 숨겨 놓은 뒤 균형을 잡다가 우연히도 손이 성기 아래 부위에 닿았다.
놀랍게도 기분이 꽤 좋아서, 전단지를 숨겨 놓은 다음에 다시 침대에 들어갔다.
엎드린 다음 두 손을 아랫도리에 넣었다.
손이 젖는 게 싫어서 속옷 위로 만졌던 게 기억난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한다.
조용히 하고 싶어서 엎드린 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얼굴을 매트리스에 묻었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질식 플레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르가즘은 느끼지 못했다.
느꼈다고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내가 숨을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시간 만큼만 지속되었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낮잠을 잤다!”
- 마라 마렉, 코미디언, ‘The Happy Never After Podcast’ 진행자
병원 놀이
“처음 자위했을 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나는 혼자 하지 않았다. 열 살,열한 살 무렵이었다.
같이 노는 여자아이들이 세 명 있었는데, 우리는 ‘의사’ 놀이를 했다.
한 명씩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리고 베개를 다리 사이에 낀 다음 침대에 엎드렸다.
한 명은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엉덩이 사이에 대고 ‘체온을 쟀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엉덩이를 움직였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걸 브라잉(bra-ing)이라고 불렀다.
‘OK, 브라잉 할 시간이다.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고 서로 말했다.
우린 아주 꼼꼼했고, 다 하고 나면 엄청나게 키득거렸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았다.
왜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에 가고 나서야 우리의 병원 놀이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고 학년 때 혼자 침대에서 베개에 몸을 비볐던 것이 갑자기 이해되었다!”
- 제니 블록, ‘The Ultimate Guide to Solo Sex’의 저자
간달프, 희열, 죄책감
“내가 처음 자위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열 넷,열 다섯 살 무렵이었다.
거실에 앉아 ‘반지의 제왕’을 보고 있었다. 생물학 숙제를 마친 뒤였고, 자기 전에 TV를 좀 보기로 했다.
간달프의 목소리에 홀딱 반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나중에야 내가 오럴리스트[auralist 목소리에 흥분하는 사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기가 얼얼한 느낌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내 몸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몸속이 기대감으로 끓어올랐다. 몸이 아파졌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온갖 낯선 느낌들에 사로잡혔다.
아주 어렸을 때 젊은 여성은 자위를 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쾌감은 결혼의 특권이었다.
결혼한 여성만이 남편과 함께 자신의 몸을 즐길 수 있었다. 영화를 볼수록 내 가랑이가 더 끈끈해졌다.
계속 볼수록 수치감이 커졌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TV를 끄고 방으로 가서 잠들 때까지 기도했다.
세 시간 뒤 내 몸은 나를 다시 깨웠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격렬함이었다.
나는 불편함을 달래보려고 엎드린 다음 양손을 가랑이에 얹었다. 평생 처음으로 발가락에서 쾌감이 느껴졌다.
공포와 욕구로 어지러웠던 나는 이 아픔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몸을 떨며 오르가즘을 느낄 때까지 내 존재의 전부를 훑었다.
즉시 오르가즘이 찾아왔고, 곧 기분이 추락했다.
나는 미래의 남편에게서 쾌감을 빼앗았다고 생각해 뉘우치기 시작했다.
자위를 했다는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 죄책감으로 순결 서약을 했다.
그 뒤로 19세 때 남성과 첫 섹스를 한 날 밤까지 자위를 하지 않았다.”
- 브리태니 G.
* 허프포스트 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affe6be4b098b9a2d15f10?utm_hp_ref=kr-sex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어른들의 포르노 사진을 우연히 보고 밤이면 자지를 어루만지며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몹쓸 것을 보기라도 한 양 화들짝 놀랐고,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매일 그것을 훔쳐 보며 야릇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고,혼자만의 시간이면 자지를 만지며 야릇한 기쁨을 누렸다.
점차 포피를 벗기면서 즐기게 됐고 그 안의 허연 이물질과 그 냄새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옆 집 여자 친구를 떠올리며 했고,그 친구를 만나면 얼굴이 붉어지곤 했지만 늘 그녀 곁을 어슬렁거렸다.
이후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떠올리며 자위를 했고,
그렇게 떠올린 사람과 마주치면 무슨 죄라도 지은 양 피하곤 했다.
중학교,고등학교 땐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하기도 하고 기운이 없어서 멍해지거나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벗은 여친과 섹스를 하려는데,상상과는 달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해서 미처 하지도 못했던 경험까지...
사회에서 만난 형으로부터 "늦바람이 무섭다더라,결혼하기 전에 충분히 즐기고,결혼하면 한 사람에게만 충실하는 게 좋을 거야!"라는 조언을 듣고,
참으로 열심히 원나잇 스탠드를 하기 시작했고,더러는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자위하는 기분 이상을 느끼지 못했더랬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여덟 살 연상의 돌싱녀와 섹파 관계를 2년 여 유지하면서 섹스의 기쁨과 의미를 파악하게 됐고,
이후로 30여 년 간 많은 연애,결혼,이혼 등을 겪으며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해왔고,
지금은 이것들을 블로그 등을 통해 나누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가정 환경,학업,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절망을 겪었지만 ,
섹스 라이프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인데...
그러다 보니 한 때는 섹스지상주의를 외치기도 할 정도로 심취하기도 했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고 있고,점차 겸손해지면서 앞날을 대비하며 배우는 자세로 나누며 배우고 즐기게 됐다.
거기에만 빠졌더라면 친척 동생처럼 인생 실패자가 돼서 비참하게 살고 있겠지만,
다행히도 '낙이불음(樂而不淫)'이란 공자님의 연애 철학을 살짝 비튼 행동 철학을 견지한 덕분에 그럭저럭 노후 대비까지 하고 유유자적 중!
어려선 우연한 기회에,성인이 돼선 스스로 찾아서 자신의 성감대를 찾아 개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야,공부야 지금 못 취하면 나중에 취할 수도 있지만,
성감대 개발은 제 때 찾아서 개발하지 못하면 뒤늦게 하기가 힘들 것이다.
스펙 쌓고 나서,돈 벌고 나서...라며 미루는 건 정말 바보짓이라고 감히 외치고 싶다!
스펙도 쌓아야 하고,빚도 갚아야 하는 숨 막히는 삶을 영위하며 따로 배우고 익힌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유를 찾아 개발하려 하니 헉!하드웨어가 시원찮아서 소프트웨어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 때 찾아서 느끼고 개발한 사람들은 하드웨어의 기능 쇠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찾아가며 적응을 하기가 수월하다.
수많은 선현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삶에서 사랑을 빼면 껍데기만 남지 않는가?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가로막지 말고,도와줘야 한다.
'나도 못 즐기고 살았으니 너희도 즐기지 말고 살아라!'는 건 억압이고 폭력이다.
어른들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도입해서 즐기는 법을 익혀라!
스스로 그 좋은 걸 알아야 후손들에게도 권할 수 있을 것이니...
아직 어린 사람들은 사회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몸의 요구에 충실하라!
열심히 보고 배우고 익히며 느끼는 삶을 살아라.
인생,별 거 없다.행복,그것 역시 별 것 아니다.
장담컨대,섹스 만큼 재미있는 놀이도 없고,훌륭한 운동은 없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되지 않으니 어른들의 그런 사기에 휘둘리지 말고 당당하게 찾아서 즐기라!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그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사기 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섹스 공부는 평생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몸은 계속 변하고 있고 상대방도 쉬지 않고 변하는 육체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상대의 하드웨어를 꾸준히 관찰하고 거기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길 쉬지 않는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따분하게 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기본을 충실하게 갖추면 이후의 개발이나 적응은 그닥 힘들이지 않을 수 있으니 기본에 충실하길...
위의 사례들에서도 보이지만 자위를 죄악 시 하는 분위기는 아직도 팽배하다.
하지만 자위는 성감 개발의 최고의 수단이며,죄도 아니다.오히려 그것의 효과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자위법도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해서 사정 컨트롤이나 오르가즘 컨트롤도 익힌다면 평생 짜릿한 쾌감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즐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