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지나치게 여유를 부린 탓에 늦잠을 자서 조조상영은 못 보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더 꾸물거리게 돼 두 번째도 놓치고 말았고,두 시간쯤 여유를 두고 세 번째 상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매연과 미세먼지,소음으로 가득한 대로를 가급적 벗어나 ,중간엔 눈이 잔뜩 쌓여 미끄러운 산길도 포함된 뒤안길로 뚜벅뚜벅...
양지바른 곳에선 눈이 살짝 녹아 물기가 생겨 중심을 잃고 서너 번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지만
워낙 소복한 눈이 쌓여있어서 폭신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아무도 다니지 않은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양지바른 곳에 흔적이 남아있는 풀들을 토끼 양식으로 뜯어 담기도 하면서
두 시간 반 이상을 걸어서 극장에 도착했는데,아뿔싸!매진이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어서 떼라도 써볼 생각으로 번호표 뽑아들고 있다가 한 자리만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제일 뒤의 구석자리 하나가 있다며 준다.
헌혈하고나서 받아둔 영화표로의 입장!^*^
아직 현금을 주고 본 일이 없어서 관람료가 얼마인지 솔직히 나는 모른다.
늘 힘겨울만치 일을 만들어가는 성격 탓에 어슬렁 거리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할 뿐이지만,
얼마간의 문화생활에의 욕심은 있는지라 헌혈을 하고 나면 선물로 영화표를 받아두곤 했는데,
올해가 지나가면 못쓰는 것이어서 숨차게 쓰려고 큰 마음 먹고 나왔던 것이다.
'변호인'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봐야할 것처럼 트위터 등에서 운동처럼 보자고 권하는 영화인지라,
평소엔 외국의 로맨스를 주로 즐기는 나로선 드물게도 망설임없이 '변호인'을 보게 된다.
120석 규모의 작은 관하나에서의 상영이었지만 꽉 찼다.
유신독재로의 회귀를 꿈꾸는 정부로부터 상영금지를 당할 것을 염려하며 의무적으로라도 봐야 할 것처럼 말들을 하는데 기우가 아닐까?
개봉일도 일부러 지난 대선일인 12월19일!
전 두환이 정권을 잡은 1981년 전후한 시대적 배경...
상고를 나와 어렵게 사시를 통과한 주인공이 판사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그만 두곤 ,사법서사들의 영역이었다 때마침 변호사들에게도 개방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 겨우 자리를 잡아가게 되고,자신이 사시를 통과하기 전에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중노동을 할 때 지었던 ,
그리고 거기에 흔적을 남겨뒀던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까지 되고,
점차 번성을 해가던 중...
부산지역에서의 제2의 광주사태를 염려한 군사정권에 의해 부산지역의 의식있는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 잡아들이게 되는데,
어려웠던 시절 도둑식사를 했던 식당의 아들이 그 희생양이 된 것을 보곤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된다.
마악 돈벌이에 재미를 붙이던 때엔 데모나 하는 학생들을 철딱서니없는 몹쓸 것들로 비아냥대던 그였지만,
그리고 그 식당에서 친구와 그 식당 아들로부터 속물로 비난을 받게 되고 ,
그러면서도 내가 잘못사는 건 아니라며,이런 나를 비난하는 즤들이 잘못 사는 거라고 말하던 그였지만,
불의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세상에 눈뜨게 되면서 인권변호사로,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의 안위를 희생해가며 군사정권을 비난하기까지 하는,
당시 사법기관에선 미친놈 취급을 할 정도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듯한 변호를 해가는데...
계란으로 바위를 쳐본들 끄떡도 않을 짓을 왜 하느냐던 그였지만 ,그 바위에 쳐서 깨트려 병아리를 나오게 만들어 그 바위를 넘어서보자고 대들게 된다.
결국은 절벽과도 같았던 독재자의 만행과 그들의 주구세력으로 만행을 비호하던 검,경,사법기관을 쳐대고 깨지면서 넘어서고 만다.
훌쩍~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꼴같잖게...
물론 나는 변호사는 꿈도 꿔보지 않았다.어려선 서울대 법대를 가라는 동네 어르신들의 부추김을 듣기도 했었지만,
철들고 나서 할아버지로부터 사람을 심판하는 짓은 해선 안 된다는 말씀을 듣게 되고 ,이후론 꿈도 꿔보지 않았다.
꿔봤다해도 이루지도 못했을테지만,아니 대학진학도 못한 주제인데...
8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80년에 전 두환이 정권을 잡는 걸 보곤 나도 육사에 가서 나중에 대통령이 돼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다행히도(?) 육사시험에 낙방하고 ,카튜사 시험에서도 떨어져 방위병으로 14개월 복무를 했다.시력이 안 좋아서...
고3 겨울방학 때부터 공돌이 생활을 하며 삶의 고달픔을 맛보기 시작했고,처음으로 월급을 받아본 나는
80년대의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을 바라보며 철없는 아이들의 ,부모의 가슴을 난도질하는 행위로 비난했었다.
83학번인 여동생이 서울대에 진학하여 과대표를 맡으면서 저항의 방편으로 시험거부를 하게 되고 0점 처리를 당하며 휴학을 하게 된다.
그런 동생을 마구 야단이나 쳐대던 그런 오빠였던 나.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며 술이나 마시며 혼란한 사회에의 고민으로 괴로워할 때,난 그래도 늬들보단 철이 있어서 늬들보단 낫다며 우쭐댔었다.
더런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도 없진 않았다.
그러다 점차 철이 들어가면서 아주 뒤늦게 절벽을 계란으로 치고 있다.
친일매국노집단이란 어마어마하고 굳센 절벽을 계란으로 쳐대고 있는 것이다.
불가능한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리고 누구 하나 신경도 안 쓸만치 존재감도 없는 내가 그 절벽을 쳐대며 깨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속의 송 변호사처럼 치열하지도 않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근성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의 이야기를 과장시켜 놓은 것만 같아서 상영 내내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고 웃으며 봤다.
재판과정에 검,경,재판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송변호사를 보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절망할 땐 훌쩍훌쩍 울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옆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서둘러 뛰어 나오고 말았다.
저만치 벗어나선 줄담배를 ,노 전 대통령의 영전에 향을 피우듯 태우면서 가슴을 진정시키며 또 마냥 걸었다.
올 면말이 참 훈훈하다.
좋은 영화 두 편으로 뜨끈뜨끈해졌다.
'변 호 인'
강추하고 싶은 영화다.
화려하지도,짜릿하지도 않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본다면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우리의 상처를 헤집는 영화일 수 있다.
펑펑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체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