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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끝나지 않는 비극…”


BY 아줌마닷컴 2020-05-13

“병자호란, 끝나지 않..
1647년  - 인조,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귀양 보냄
최근 S본부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더킹’이 소현세자 죽음을 기점으로 우주가 두 개로 나뉘었다는 설정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오히려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 실제 스토리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비극적입니다.

소현세자는 일찌감치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자호란에서 패한 후 동생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8년만에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인조는 여전히 명나라를 사대하는 입장에서 아들이 오랑캐 청나라의 문물을 익히고 와서 추종하는 것이 못 마땅했고, 나아가 청나라의 지지를 받는 아들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소현세자가 귀국 후 2달만에 학질로 급사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인조가 독살했다는 주장은 오늘날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사망 이후 부인 강빈 또한 시아버지인 인조의 누명으로 사약을 받았고, 아들 세명(12세, 8세, 4세)도 제주도로 유배당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라 정통성이 취약했던 인조가 병자호란 패배로 무능함마저 드러내자 벌인 비극적인 역사,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너무나도 비극적이서 허구의 드라마로 각색되고 변주되는가 봅니다.  
 
1762년 - 영조, 사도세자 뒤주에 감금
소현세자의 비극 이후 약 100년이 지난 즈음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 아버지인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갈등이 외부로부터 촉발된 것이라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다분히 내부로부터 점화된 사건이었습니다.

선조는 당시의 나이로는 상당히 늦은 41세에 사도세자를 얻고 천하를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당연히 아들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던 세자는 칼을 더 좋아했고, 영조를 옹위했던 노론보다 소론과 더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에 영조의 세자에 대한 압박은 날로 거세졌고, 결국 세자는 정신병적인 기행과 추행을 일삼으며 반항하다가 뒤주에 갇혀 9일만에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 사도세자와 소현세자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몇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 권위를 얻고 지킨다는 것의 의미, 권위 앞에서 초라해지는 인간,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도 떠오릅니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역할을 하던 그레고르가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