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냉소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질 때면 자연히 포기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어린이가 떠안겠지.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좋은 것이라도 꼼꼼하게 챙겨서 어린이에게 줄 것이다. 거기까지가 내 일이다. 그러면 어린이가 자라면서 모양이 잘못 잡힌 부분을 고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큰소리치는 것도 다 어린이 때문이다.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한다.
경향,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