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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얹어 찐 가지를 주욱죽 찢어


BY 최기옥 2004-09-04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갑자기 변한 날씨 때문에 코도 맹맹하고 몸도 찌뿌듯하다. 음식도 찬 것보다는 따뜻한 것이 먹고 싶다. 밥맛도 없고 입이 까칠까칠한데 뭐 입맛 돋우는 거 없을까 부엌을 뒤지는데 며칠 전 얻어온 가지 생각이 났다. 해마다 가지를 심어서 먹는 것보다는 버리는 게 더 많다고 남편이 잔소리를 하기에 올해는 아예 안 심었더니 괜히 먹고 싶은 맘이 더 생기는 것 같다. 가지는 처음에 더디 열리는 듯싶다가도 한 번 열리기 시작하면 거의 날마다 따야 할 정도로 잘 큰다. 요즘 아이들은 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지를 너 댓 그루만 심어도 먹는 것보다는 남는 것 처리하느라 바쁘다. 감자, 고구마도 아니고 너무 부드러워서 씹는 맛도 없는데다가 독특한 향까지 있는 가지가 애들 입에 맞을 리 없다. 하긴 밭에서 따는 가지를 한 번도 본일이 없는 애들이 가지 맛을 어떻게 알까? 애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요즘엔 진짜 야채 맛을 모른다. 대형마트나 야채가게에 일정한 크기에 반듯하고 윤기가 번지르한 것만 보고자란 아이들이다. 야채의 가치를 겉모양만으로 평가하며 일반상품의 가치와 똑같이 취급하는 세상에서, 어린 가지에서 좀 쇤 것 구부러지고 흠집 난 것까지 다양한 모양이 있고, 모양마다 독특한 맛이 있는 야채의 참맛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렇게 번듯한 것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다양함을 안정하는 자연의 섭리를 영영 알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가지는 정말 많이 먹을수록 좋은 식품이다. 항암성분이 가격대비, 식품 중에 으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좋다는, 모양도 이상하고 구하기도 어려운 물 건너 온 채소만 사먹기에 열을 올리지 말고 가지를 먹자. 참, 그리고 무좀이 심하셨던 우리 아버지는 가지대 삶은 물로 무좀도 치료 하셨다. 아버지는 그 후로 가지 예찬론자가 되셔서 누가 무좀 때문에 고생한다면 가지대 삶은 물이 제일이라며 권하셨다. 밥 위에 얹어서 찐 가지를 젓가락으로 주욱죽 찢어서 파, 마늘, 조선장에 고추 가루, 참기름 한 방울 넣고 조물조물 무친 가지나물이 먹고 싶다. 어릴 때는 가지나물보다는 가지볶음을 좋아했다. 가지나물은 어쩐지 축축 처지고 특히 제법 씨가 여문 가지를 쪄서 찢어 놓으면 모양도 안 좋았다. 난 얄팍하게 어슷어슷 썰어서 양파랑 같이 넣고 간장에 볶는 것을 좋아 했는데 외할머니가 오시면 꼭 엄마는 볶음보다는 나물을 했다. 우리 할머니는 가지나물을 숟가락으로 뚝뚝 떠서 얼마나 맛나게 잡수셨는지 모른다. 그 때는 ‘할머니가 이가 없으셔서 그러신 모양이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나이가 들수록 볶음보다는 가지의 맛과 향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가지나물이 좋다. 내 입맛이 이제야 도시에서 잃어버렸던 고향 맛을 찾아가는 걸까? 글 오진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