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학원 보내라고 아무리 강요해도 어느 부모가 학원을 보낼까?
매달 세금 고지서가 밀려 전기끊겨 물 안나와 이런 생계곤란에 어느 부모가 학원을 보낼까?
매월 카드값에 휘둘려 돌려막기를 하느라 바쁜데 어느 부모가 학원을 보낼까?
재미있는 애길 하나 들었다.
임진왜란 때 어느 지체 높은 양반이 꿋꿋이 집을 지키고 족보를 지키고 가문을 지킨다고 버티다 굶어 아사했다.
집안에 쌀은 있긴 있는데 밥을 해다 줄 종들이 모두 피난을 간 것이다.
양반체면에 밥은 못하고 그렇다고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양반체면을 깎는 일이다.
텃밭에 오이고 가지고 그 많은 채소들을 어떻게 해 먹을 줄 몰랐단다.
이런 일이 무지하게 많았단다. 비록 기록에 남지 않았다 해도 유심하게 들었다.
요즘 사교육이 공교육울 앞 질러 정부가 대책을 세웠다는 정책을 보면 그야말로 하품이 나온다.
매양 똑같은 말만 서둘러 긴급대책이네 하는데 우린 하도 들어 식상한지 오래다. 어린 양치기는 두 번만 거짓말을 해서 진짜 나타난 늑대에게 당했다. 그러나 거짓말과 정책은 별개다. 되지도 않고 처음부터 방향이 뒤틀린
문제는 사교육의 대책보다 공교육의 대책이 더 절실하다.
학원수강금지며 괴외금지며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한 동안 군인이 정치 할 때 전면 괴외금지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몰래과외가 생겼지만 그 덕을 본 것은 우리들 세대다. 과외 받지 않는 시간은 공식적으로 전부 내가 쓰기 나름으로 나름의 자발적인 시간쓰기가 가능한 세대였다. 혼자서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비록 몇 년후에 전면적인 금지를 풀었지만 그 당시 학생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취미도 적성도 생활도 가꿀 수 있었다.
문제는 공교육의 허실을 더욱 부추긴다는데 있다.
공교욱에도 상중하를 만들어 놓고
상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뭘 못 하겠느냐식의 학부모 치맛바람을 조성한 것이 어디 사교욱인가? 아니다.
사실 공교육에서 비롯 된 것이다.
모두 일렬로 앞으로 나란히 대입수능고시로 올인한 결과이다. 수 십년동안 수 십번 교육방침을 수정해도 소용없었다.
밥 잘하고 청소 잘하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학생은 요즘은 거의 없다. 차려다 주는 밥상만 받은 학생과 자신이 직접 생산과정을 경험한 학생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모두 강제적으로 잠까지 재우지 않고 감시당한 채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검열한다. 엉덩이에 굳은 살 배길 정도로 학생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주입되는 것은 이제부터다. 시키지 않으면 절대 못하는 것과 누르지 않으면 못키는 텔리비젼과 같은 먹통이 된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인재등용하는데 너무 수동적이고 성적만 좋은 사람들 구별하기 위해 고심한다. 또 다른 부처를 만든다고 한다. 사람구별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무슨 교육인가?
야유회를 가도 라면하나 못 끓이는 것이 벼슬하는 것처럼 여기는 학생들 무지 많다. 남학생이야 여학생이냐 ?
후후..사람이면 자기가 먹는 쌀만큼 염치도 있어야 한다. 평생 자기 손으로 밥 한 번 못해서 굶어 죽는 양반들 안봐서 모르지 아마 어딘가에 계실거다.꼭 방송타야 그런 일도 있구나는 전부가 아니다.
나중에 취업만 잘되면 , 나중에 돈만 잘 벌면 만사가 오케인데. 근디 농사는 누가 짓고 노가다라는 막일은 아무나 안 할려고 하고 눈에 하찮고 허투루 보이는 것은 인기가 없으니 공장이나 중소기업은 일 할 사람 없어 절절맨다. 그래도 취업이 안되고 실직이 늘고 실업수당이 고갈된다고 난리다.
옜날 쌀이 많은 부엌 옆애서 체면때문에 굶어죽은 양반이 조상이었는지 당연 하듯이 많아 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사교육은 절대 줄어 들거나 기는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 앞으로 대학진학률은 80%를 넘어 너도 나도 모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깡그리 무시하게 가르친다. 돈우선 사람차선으로 버무린 교육의 밑바탕의 개념부터 싸구려로 바뀌었는데, 겉으로 멋지게 번드름한 것이 먼저 눈길을 받고 인기가 높게 만든 가치가 대접을 받게 한 것이다.
앞으로는 졸업이 좀 어려울 듯 싶다. 요즘은 공부를 못해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은 드물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퇴학을 당하든 휴학을 하든 빚만 지고 중퇴생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 날 것이다.
대학대문에 신용불량자가 급등할 것이고, 대학 못 갈까 봐 자살하는 십대 청소년들도 급등할 것이다.
그러나 돈때문에 또 당하는 줄 모른다.
재벌이나 돈 많은 학부모에겐 해당사항 없다. 그러나 이젠 전체적으로 살펴보자. 대를 이어서 치맛바람을 일으킨다면
백년을 내다보고 한 번은 숨고르기를 해야 한다. 과연 내 자식의 앞날이 정말 소중하다면 지금이라도 너 나중에 뭐하고 싶니? 한 번이라도 눈높이 대화를 나눠 볼 일이다. 중국에 콱탄타의 "나무 심는 법" 이라는 책에 나무을 심으면 비가 오든 안오든 절대 가보지 않는단다. 오히려 자주 가서 물주고 뜨겁다고 그늘 준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무는 멋있는 나무가 되었다고한다. "스스로 알아서 잘 살아 가게 하기" 이것이 바로 교육의 궁극적 목표다. 자신의 인생에 무수한 선택을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무차별하게 선택의 권리를 착취하고 유린하고 있다. 함부로 간섭을 하는데,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시달리고 있는가?
교육의 주체는 가르치는 것보다 정성껏 배우는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 없이 일방적으로 시킨다고 하는것은 어느 동물원에 갇힌 채 주는 것만 먹고 길들이는 사육을 하는 것과 똑같다. 사회가 서커스단체가 된다. 훈련 받은대로 쇼를 하게 한다. 누구의 지시없이 가만히 기다리는 피동적인 사고들이 뭉치고 정체한다. 내 보긴 지금의 조중동이나 배후에서 이런 것을 오랫동안 기도하고 획책한 은밀한 음모라고 본다. 거기에 알맞춰 움직이는 짝이 바로 기득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영생불멸하는 것을 가질려면 교육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튼 자신들의 말을 잘듣고 잘 따르기만 하는 후예들이 많으면 얼마나 기고만장 할 것인가? 어떤 위대한 유행이라고 할 지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불안하고 초조한 인간의 심리는 학부모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우는 학생에게도 부모보다 더 많다.
그럼에도 그런 것을 표현하면 아주 불경하게 대한다. 솔직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길들인다.
사교육을 선택하는 기준도 공교욱의 기준도 아주 애매모호하게 감춰놓고 뭐든지 규제만 하려니 우왕좌왕 한 세월 다 보냈다.기득권력의 전략과 전술은 교묘하게 판을 잡아 교과서 수정도 서슴치 않고 역사도 날조를 한다. 그러나 이런다고 있었던 일이 그게 아니었네 희미하게 가물가물 사라졌다는 역사는 다행이도 없었다. 사실과 진실에게 흠이 있다면 좀 굼뜨다는 것이다. 좀 느리고 미련하게 보일 지 모르지만 그게 결국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다. 사람의 힘으로 권력으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언젠가는 둑터진 물살처럼 몽땅 발각된다.
사람을 가르치는 기준을 점검해야 한다. 뭐든지 밑바탕에 무슨 교육이념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지 먼저 학부모 자신부터 점검해야 한다. 가치기준에 내 자식 인생 대신 평생 잘 살아주는 부모 아직 없다. 스스로 알아서 자발적으로 앞가림 잘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선 부모인 가치 기준을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