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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하고 불안한 엄마한테 드립니다.


BY 2009-07-31

[오마이뉴스 신여명 기자]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승합차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영어학원이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한 번쯤은 들어본 영어 학원부터 헷갈리는 영어 약자 이름이 붙은 학원 그리고 정말 생긴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반짝반짝한 새 학원 셔틀버스들이 단지 안으로 들어오면 아장아장 걷는 4살 남짓한 유아부터 이어폰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은 고등학생까지 버스 위로 오른다.

학교 앞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문 앞에 셔틀버스 한두 대쯤은 늘 서서 기다리는데 심지어 아이에게 전화하는 것도 모자라 버스 운전하는 아저씨가 직접 학교에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조기교육 엄마들, 극성 맞다 할 수 있을까





원어민 영어교육


ⓒ 김영민


영어교육에 있어 사교육 열풍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적당한 나이가 언제인지에 관해 한때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찍 접하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다는 설이 거의 대세다.

영어 조기교육이 일반화되면서 불과 4~5년 전만 해도 7세쯤 영어유치원을 보내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반해 지금은 그 연령대가 4~5세로 확 낮아졌다. 영어유치원에서 2~3년 영어를 익히고 난 뒤, 학교 들어가기 한 해 전인 7살이 되면 아이들은 초등학교 공부를 위해 한글을 집중 가르치는 유치원으로 옮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영어공부를 쉴 리 없다. 방과 후 수업을 하는 영어학원은 유치원 끝나고 나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최소 1~2년, 최대 4~5년 동안 아이들은 영어공부를 하게 되는 셈이다.

강남에서 활동하는 어느 원어민 학원 강사의 경험담. 9살 아이들에게 영어를 몇 년간 공부했냐고 물으니, 4년, 5년, 6년! 제각각 대답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눈치를 살피며 말을 못하기에, 농담처럼 "넌 9년?" 하고 물으니 그제야 고개만 끄덕이더란다. 알고 보니 아이 엄마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로 태교를 하고, 태어나면서 바로 영어 노래를 들려주는 등 극성을 떨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런 엄마들을 극성맞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4학년부터 슬슬 수학과 다른 과목도 신경 써야 하니,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영어에 집중공략해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아 놓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공식처럼 되어 있는 걸 보면 영어에 관해선 '조기투자'가 정석이다.

뛰어난 학원, 영어 강사 찾아다녀도 불안한 엄마들





대치동 한 상가 건물안에 모여 있는 학원들


ⓒ 성하훈


이렇게 미취학 아동기를 영어와 함께 보낸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면 좋은 영어 학원, 뛰어난 영어 강사를 찾아서 먼 길을 마다 않고 다닌다. 방학이 되면 대치동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는 엄마들을 주변에서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일산으로 목동으로 강남으로. 일 년에 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유치원 등록금에, 정확한 레벨 테스트를 받고난 뒤 들어가는 원어민 영어 학원에, 학원에서 모자라다 싶은 부분은 따로 고액 개인 과외까지.

그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였음에도 엄마들은 늘 불안하다. 내 아이 영어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는 옆집 아이, 학급 친구 그리고 학원 선생님이 샘플처럼 들고 다니는 강남 아이의 영작문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의 대한민국에선 절대적인 아이의 실력보다 상대적인 평가가 더 중요한 법. 초등학교 3학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실시하는 학교 영어수업과 평가는 엄마들에게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초등영어 공교육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유명 어학원 몇몇은 엄마들의 입소문과 계속적인 자체 시스템 개발에 힘입어 계속 덩치를 키워가는 중이다. 그 가운데 최근 텔레비전 광고까지 하는 C어학원의 레벨테스트는 엄마들 사이에 꽤 공신력을 얻고 있는데, 저학년 아이가 그 학원에서 높은 레벨을 받기라도 하면 바로 학교에 소문에 쫙 퍼진다.

그러고 나면 집집마다 불 보듯 뻔한 시트콤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누구누구는 무슨 레벨을 받았다는데, 영어를 몇 년씩이나 공부한 너는(이게 뭐냐)?"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나쁜 엄마의 탄생. 그리고 엄친아 콤플렉스의 시작.

한국에서 하다하다 안 되면, 아이 혼자서, 마음이 안 놓이면 엄마와 같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방학을 앞두고 왠지 교실이 허전해 보인다 싶어서 담임선생님께 물으면 1, 2년 머물 계획을 하고 외국으로 전학 간 아이들의 자리가 비어서 그렇다고 대답이 돌아온다.

실은 방학마다 들락날락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바람에 수업일수를 따져야 하는 학교는 행정처리 문제로 고민이 많다. 기말고사도 안 치르고 방학하기 한 달 전에 나가서 개학하고도 한참 뒤에 돌아오는 아이들 때문이다. 수업일수를 채울 것을 알리는 행정지침 공문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해도 학부모들은 융통성 없는 학교행정을 뒤에서 헐뜯으며 초등공교육 몇 달쯤은 빠져도 문제없다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국제중 입시가 부각되면서 초등학생 영어교육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보다 중요해졌다. 말하기 대회, 글쓰기 대회 등 가공 대회 수상 경력이라든지, 공인시험 성적 같은 것이 그것이다. 더불어 듣고 읽는 영어 실력과 함께 말하고 쓰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다.

국제중에서 심층 면접과 토론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때문인데, 바람직한 영어능력 평가 방법이긴 하지만 그만큼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선 영어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원에서 운영하는 국제중 대비반에 늦어도 5학년 정도에는 들어가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가망이 있다는, 어느 중학생 선배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초등 영어도 분명한 목표와 정보 그리고 전략 없이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조기교육 아이들에게 부족한 98%는?





2009학년도 대원국제중학교 일반전형 3단계 추첨일인 26일 서울 중곡동 대원국제중 강당에서 수험생들이 차례로 나와 추첨공을 뽑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그런데 영어교육의 고충과 여러 정보들을 엄마들로부터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영어를 얼마나 잘하길 바라는 것일까. 영어책을 사전 없이 줄줄 읽기를 원한다는 엄마. 원어민처럼은 아니더라도 외국인과 의사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을 원하는 엄마. 말하는 것은 물론 세련된 문장력을 갖춰 훌륭한 에세이를 쓸 수 있을 정도까지를 기대하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고등학교 영어수업에 뒤처지지 않고, 수능시험 칠 정도의 실력이 목표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국제중과 특목고와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영어교육의 지상과제라는 엄마 역시 다수다. 학교 시험과 학력고사만을 대비하면 그만이었던 우리 때와 비교하면 신경 써야 할 것도, 할 것도 많아졌는데, 쏟는 노력만큼 아이들의 실력도 쑥쑥 자라는가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인 듯하다.

대치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원어민 강사의 이야기는 과다한 영어 사교육의 일면을 보여준다. 강사의 말이, 강남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을 받아 영어를 유창하게 말 할 것 같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소극적인 아이들 때문에 당황하게 된단다. 알고 보니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신감 부족으로 말을 잘 못한다고 했다.

잘하는 아이들과 비교 당하는 아이들은 실제론 잘 할 수 있으면서도 괜스레 주눅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말을 제대로 배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감을 갖는 것일 텐데, 과중한 학습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로 인해 자신감 결여로 이어진다면 자칫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집값보다 무서운 사교육비, 헛돈 되지 않으려면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실컷 책을 읽고 맘껏 뛰놀던 우리네 어린 시절 여름방학과 달리 지금은 학원 특강이다 뭐다 해서 아이들에겐 여름방학이 오히려 더 바쁘다. 책도 스스로 읽고 싶은 걸 고르는 게 아니라, 논술수업에서, 영어학원에서 골라주는 권장도서를 읽어야 한다. 아이가 배우는 모든 것이 곧바로 사교육으로 통하는 세상.

하다못해 아이가 줄넘기를 못하면 줄넘기 강사를 붙이고, 리코더를 못 분다 싶으면 피아노 선생님께 특별 강습을 부탁하는 엄마들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라면 커서 못하는 거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 되어야 할 듯한데 그건 또 아니란 말씀.

서울대 신입생들의 TEPS 성적이 갈수록 전만 못하고, 기초과학실력이 모자라 우열반을 나누어 수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수한 사교육의 효용성이 의심스럽기만 하고, 회사 내에 토익 고득점자들이 많아도 제대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지인의 말은 영어 사교육 또한 헛돈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유학하는 아빠를 따라 미국에 가서 그곳에서 유치원 시절을 보낸 나의 아들은 지금 4학년이다. 아들에게 아직까지 영어는 좋아하는 만화 영화고, 재미있는 동화책이고, 신나는 음악이다. 아는 단어의 개수가 늘어나기보다 그저 아이가 영어를 앞으로도 쭉 좋아해주길 바라는 나는 영어가 아들에게 버거운 숙제와 지겨운 학원 수업 혹은 지루한 승합차 타기나 긴장되는 테스트가 되게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밤마다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며 영어가 부디 내 아이의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면, 너무 소박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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