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지 않아도 별로 당장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 무진 많다.
비록 당장 생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없어도 나중에 보면 엄청난 지지대를 형성하는 것들이 더욱 많다.
우선 당장 하지 않아도 나중엔 엄청 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우선 이것은 당장 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라도 당장 할 이유가 없는 것을 목록으로 작성했다.
1. 아이에게 직접 책을 골라 주지 말자.
어느 도서관에서 직접 목격한 일이다.
한 엄마가 책가방을 열고 이건 아직 아이가 책을 다 못 읽고요 이건 애가 관심이 없어 하는 것 같아서 반납하고요
이 건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 읽은 것이니까 대출 연장 해 주구요. 등등 구구절절인데 듣다보니 아이가 이건 참 재밌다거나 관심이 많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가족회원으로 한 번에 몇 십권을 빌려 갈 수 있는데 모두 엄마가 임의적으로 고른 책이었던 것이다.
내 경험엔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녀에게 이런 책이 저런 책이 좋아서 권장 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권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천만의 말씀이었다. 내가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내가 받은 감동이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고르는 책을 일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선택할 자유를 주었는지 아이에게 물어 본다면?
2 내키지 않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 하지 말자.
나의 경험에 의하면 이것 만큼 지겹고 식상하고 지루한 일은 없었다. 일을 하라면 하는 일인데 책읽는 것을 일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잘못 된 것이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어떤 계기를 통하여 얻은 기쁨은 일로 통해서 얻는 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사실이다. 놀이는 논다고 힘들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어른들은 일 하는 만큼 더욱 힘든 것이 바로 이 책 읽기이다. 책 읽는 방법을 우린 전혀 배워 보지 못해서 그런거다. 아무리 대학을 여러 개 나와도 늘상 생활 속에서 즐기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책읽기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쉬는 오후에 뭘 할지 모르는 멍한 상태와 여유를 분배하거나 쉼의 즐김을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익힘이 없는 설은 지식덕분에 늘 초조하고 두렵기만 한 미래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가 희망이 되었고, 우울증 걸린 대입 논술 덕분에 권장 도서가 더 많이 추천이 되고 있는데, 이상하게 뭐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처럼 읽으면 숙제하듯이 달달 외우는 제목도 나중에 기억하기 힘들다. 건망증이 걸린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주역이 된지 오래다. 왜 그럴까?
3 책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지 말자.
초등학교 때 제일 하기 싫은 숙제가 뭐냐고 하는 설문조사서에 일등은 일기란다.
그것도 그 일기를 숙제로 내서 해온 과제물에 선생님이 읽어보고 참 잘 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면 검사가 끝나는 숙제를 해 온 아이는 안심하고 하지 않은 아이는 늘 불안하게 했던 그 글쓰기의 첫번째 관문이며 일기쓰기가 제일 싫었다는 대답이다. 왜 나의 사생활을 일일히 검열하냐는 것이다. 비록 초등학생도 그러는데. 글쓰기의 시발점이 처음부터 숙제라고 해오는 일기부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독후감은 제일 싫은 숙제 중에 두 번째다. 중요한 것은 성인이 되도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 일기쓰기가 계속 쓸 수 있냐는 것인데 많은 어른들은 가계부조차 쓰는 것을 버거워 한다. 메모지에 뭘 쓰는 것도 귀찮아 하는 것은 숙제로 일기를 쓰게 했던 그 세대들에겐 오히려 교육효과를 전혀 혜택을 못 본 셈이다.자신의 감정을 누구에게 읽혀 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먼저 선두를 잡은 까닭이다. 어느 고등학생은 책을 독후감 쓰기 위해서 읽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엔 별로 즐거운 표정이 없다. 매일 논솔에 시달려서 보는 책과 자신이 정말 관심이 가는 책과 같은 성취감이 나올까? 쥐어 짜는 치약은 용량이 다 비워지면 그만이다. 학생들을 쥐어짜는 치약과 같은 것인가?
4.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을 권리가 당신에게 있다.
그 많은 선거에서 선거하기 위해서 하루를 휴일로 집아 준다고 해도 내가 그 선거에 꼭 참여하라는 의무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돈을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도저히 책이라고 봐 줄수 없다면 다시 서점에 가서 반환요청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을 책을 읽는 법이라고 하고 싶다. 책을 보는 법은 또 틀리다. 사람 보듯이 관상하듯이 이렇게 다른 기술을 모르고 있다. 아니 사실은 누군가 감춘 기술인지 모른다.평생을 책을 많이 읽었다고 누구에게 우월하게 보이는 것도 허세이며, 타인을 멸시하는 것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고 무시 하지 않는다. 난독증이라고 책만 보면 눈이 아프거나 어지럽거나 하는 증후군인데 이런 증후군 환자를 무시하거나 동정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언제가는 그들도 책을 가까이 두고 읽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다만 자신의 취향을 남에게 그대로 강요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상당히무례하며 폭력이다.
5 이 세상에 독서많이 했다고 주는 상은 없어야 한다.
오죽 했으면 다독상을 만들었을까 싶다. 그러나 체벌 보다는 나은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버젓히 책을 많이 읽었다고 주는 상은 상을 받지 못하는 다른 독서인에 대한 모독이며 모욕적이다.상을 받기 위해서 뭔 들 못하겠는가? 오로지 높은 점수와 각종 경시대회에 출전하여 받은 상을 겸비해야만 명문대학을 입학 할 수 있다는 제도하에 얼마나 많은 사교욱이 탄생하고 앞으로도 또 다른 사교육이 탄생 할 것이다.지금의 공교육은 아이들한테 무수한 선택의 권리를 하나 하나 제거하는 듯하다. 일부러 방학 중에도 학교까지 불러 내 학기내 무엇을 못 가르쳤는지 보충으로 가르치는 학습을 한다. 무슨 교육이 학교 안에서만 하라는 법이 따로 있나 보다. 어느 학부모는 우리 애들 학교에서 집으로 늦게 늦게 보내달라고 한단다. 학교에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어쩌다가 우리 요즘 애들이 공부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는지 학생이 아니고 공부 노동자들이 되었다.
쥐어 짜야 치약이 나오는 치약은 끝이 있는 법이다. 이건 공부가 아니고 학대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일방적이며 너무 획일적이다. 여기에서 창의성을 바란다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일 뿐이다. 아무튼 배운 다는 것은 비판 할 능력을 배양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멍청한 지식인은 많은 책을 읽은 것을 자랑한다. 너도 나처럼 요렇게 따라 오라고 한다.아무튼 책을 읽고 안읽고 읽다가 말던 다 읽던 본인의 충분한 선택을 통하여만 꾸준히 이어지는 역량성과 끈기가 함게 성장하게 된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별 거 아니다. 습관이 있냐 없냐 선택의 권리가 먼저 당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