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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쓴 글보기


BY 2008-03-06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써요?"

흐흐...이렇게 물으면 난 대답을 한다.간단하게...

 

" 고생 좀 많이 하구유..그냥 수다를 떨어유..."

 

고생을 하라고 했더니 무슨 고생을 해야 하냐고 도로 묻는데.

그 고생이 난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되 버렸다.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닌데 내 맘데로 글을 슨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연습을 할 수도 있지만 무엇이 되기우한 뜻은 별로 없다.

블로그도 있는 데. 사실은 글을 쓴 게 아니라 수다를 무진장 떨어서

오만가지 잡스런 애기들이 엄청 쌓였다. 나이 먹는 것이 숫자가 늘어가는 순서처럼  매일매일

변화하는 계절부터 내 주위에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어느 기자가 일일히 취재해 달라고 해도 올지 말지한 시시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누가 이걸 읽어 삶의 지표가 바뀌었다느니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진로가 결정 되었다는 계기등 뭐 그런 상투적인 말을 듣고 싶어 기대한 적은 없다.

돈을 이렇게 쓰면 낭비해서 엄청 빚을 졌을텐데.

글로 수다를 떨었으니 아직 다행이 빚은 없다.

 

대신 그 덕에 글 쓰는 규칙은 나름으로 조금 알았는데

그 원칙이 너무 별 게 아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오랫동안 많이 들은 덕에 난 누굴 가르치는 투로 글을 쓰는 게 체질상 싫다.

학교에서도 뭐 해라 이거해라 시키면 더욱 청개구리처럼 더 안하는 성격인데다

많은 책까지 읽었다고 도덕군자같은 말씀들은 절대 사양하고 싶은데. 책읽는 것도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내가 그 책을 읽지 않고 대충 요약된 서평만 보고 결정하는 버릇은 절대 하지 않기. 타인에겐 아직 그 책 안읽었니? 등등 넌 책을 왜 못읽니? 그런 예가 많다. 이런 상황에 나까지 수다를 떠는 데 그런 수다를 누가 들어 줄까 싶다.

 

지 잘난 맛에 산다는 세상인데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뭐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면 구원을 얻네 뭐네 일단은 그런 거는 다 제쳐두고 그렇게 골치 아픈거는 학문을 하시는

분들이 탐구하여 책하나 내면 사도 안 사도 죄 안되는 세상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다가 글이 되어서 글 잘쓰는 거랑 수다 잘 떠는 거랑 별 차이가 없어지더니

곧 바로 삶의 경쟁력이 되어 버렸다. 수다영역은 특히 여자들의 특혜인데. 요즘은 대학 수능에도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잘쓰냐 못쓰냐에 따라 합격의 유무가 판가름 난다.논술과외비를 대느라 어느 부모들 허리 무척 힘들게 하니 참 난감하다.

 

글 잘써서 명예이니 권위이니 곧 돈으로 곧장 연결 되어서 기술을 연마하듯이

글을 잘써야 잘 사는 시대가 되엇으니. 나도 이런 걸 감히 상상도 못 한 상황이다.

명예와 부와 모든 것을 책임져 준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냥 먹고 살기 바쁜 우리 서민들은 글을 언제 쓰냐?

특권이란게 있다면 맨 밑바닥에서 묵묵히 일편단심 자리 지키며 사시는 분들의 삶의 단편들을 어떻게 요약이 안된다고 또 무시할까 겁나는 것이다. 나름의 사는 방식이 어떻게 일률적으로 똑같지 않은 이상  지구상 곳곳의 기후 틀리듯이 사람사는 형태가  각각 다름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반은 아파트에 살고 반은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의 상황을 전혀 짐작도 못할 만큼 우리는 무관심의 시대가 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잘 싸우는 무사가 휘두르는 칼보다도 더 무서운 게 글이라고 했다. 글의 권력은 무시무시한 호랑이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한 귀신보다 더 오래  유지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문단들이나 문학모임이나 그런 부류는 너무 이상향으로 빠져 별 상관없는 딴 나라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상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니 사실 나하고는 아무관계가 없다. 

 

애기가 다른 데로 빠졌지만 집고 넘어 갈 부분이기에 한 마디 했다.

 

그 별 게 아닌 원칙이 글쓰기엔 달리 왕도가 없다.

요즘엔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난리법석이 된 세상인데.

내 보긴 영어 아무리 잘해도 여기선 영어로 말해도 통 알아 들을 수 없으니 해괴한 일이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가요도 뜻이 통해야 유행한다. 공감과 감동이 없이 억지로 외우라고 해도 그 때 한번 시험치루면 몽땅 다 까먹는다. 주입식은 그만큼 단명한다.이건 내가 그동안 지겹게  세뇌당한 것이다. 이 중세을 벗어 날려면 관찰을 해야 한다. 잠시 숨고르듯이 나에 대한 관찰부터 한 걸음씩 지켜보면 어둠속에서 부터 비쳐지는 빛줄기처럼 서서히 찾을 수 있다. 관찰 하기 전 우선 멈춤부터 할 줄 알아야 한다. 잠시 멈추고 내가 걷는 길 주위를 천천히 더듬어 보라. 내가 걷는 발을 한 번 지구 위를 두둘겨 보는 거다. 나와 일대일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 바로 멈춤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좀 거꾸로 말하자면 남들 영어공부 한다고 비싼 교재 살 때 학원가고 난리법석 떨 때  난 시리즈로 박경리의 토지를 전부 산다. 학원가서 뜻도 모를 그 시간에 나는 일년 열 두달 밑줄 그어서 두고 두고 성경처럼 읽는 게 훨씬 나을 듯 싶다. 왜냐하면 난 한국어를 잘해요. 남들은 토지를 드라마로 다 봤으면 난 책으로 지금도 즐겨 읽어요. 우리말을 난 제일 잘해요. 잘 알아 들어요.

 

지금은 다름이 경쟁력이 충분히 될 수 있다. 꼭 같은 것을 외워도 나만의 방식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수 십 년 동안 맨날 전업주부로 살림만 하다가 느닷없이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하니 쓸 경력이 없어 그냥 칸칸히 난 언제 결혼 했어요. 언제 큰 애 낳았어요.  언제 울 애가 중학교를 입학시켰어요. 이렇게 써서  보낸 이력서 그 한 장 때문에 호텔에서  제일 잘나가는 매니저 된 그 사연 들었을 때 그가 만일 영어로 쓴 이력서라면 취업이 되었을까 싶다. 영어는 급할 때  당장 궁 할 때 젤 잘 배운다. 경영자들이 요즘 제발 일은 우리가 가르쳐서 시키면 되지만 인성을 어디서 가르치나요? 좀 일을 잘한다 하면 철새처럼 단 몇 만원 더 준다고 하면  인사도 없이 내 뺀단다. 휴대폰 하루만 꺼놓으면 사표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이 한국사람들 채용시 면접 볼 때 일류 호텔에서 열흘동안 합숙면접을 본 단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나가 아니고 남에게 얼만큼 에티켓을 지켜 주는지, 매너등 배려의 모습등을 체크하는데. 그 사람과 하루만 밥을 같이먹어도 같이 자도 금방 성격파악하는 거 우리도 할 줄 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할까 싶다.

 

 

대한민국에서 살면 우선은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수다쟁이를 만들던지, 아니면 잘 읽던지 둘 중의 하나만 잘해도 사는데는 별로 지장 없다는 거다. 거기에 다른 타의 모범은 그만두고라도 나 뭐 잘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싹 무시하는 거는 절대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데. 전문가 바보만 수두룩하고 제대로 된 사람하나 찾을려니 그것도 또 큰 일인 것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부터 먼저 난다는 옛말이 괜히 생긴건가?

 

야하튼 돈은 자꾸 규모없이 쓰면 빚지고 패가망신하지만 그러니까 잘 써야 되고.

글은 안 쓰면 또 신세가 한탄스러워진다. 이제부턴 일기라도 하다못해 가계부 구석이라도 낙서라도 해야  나중에 후회는 안한다. 희미한 기억보다 메모지 한 장에 내 운명이 바뀔 수 있다.달리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글 잘쓰는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