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다 사무실에서는 <나, 독립한다> 저자들이 모여 간담회를 가졌다. 21세기 여성들의 화두를 ‘독립’이라고 선언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욕구와 독립 이야기를 엮어낸 책 <나, 독립한다>가 나오기까지 과정과 진솔한 후일담을 나누었다. 특히 40,50대의 저자들은 ‘여성의 독립’이 젊은이들, 또는 독신여성들에 국한된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래 전 ‘선택’의 갈림길에서 포기했던 아이를 극적으로 다시 만났지만, 또다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아이>라는 글을 쓴 윤하님, 10년간의 감옥 같은 결혼으로부터 탈출해 3년간의 법적 분쟁을 거쳐 <이혼, 나를 성장시킨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숙경님, 그리고 황혼의 새 출발을 꿈꾸며 <이사하는 날>을 맞이한 이옥임님이 그 주인공이다.
가슴에 묻어버리려던 기억을 끄집어낸 경험
윤하(<내가 선택한 아이>의 저자): “좋은 주제의 청탁을 받고 고마웠어요. 저는 딸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마침 정리가 필요한 시기였는데, 글 쓰는 일과 묘하게 맞물려서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너무 귀중한 시간이었고, 또 힘들기도 했어요. 마음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진실한 글만이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걸 알잖아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얘기가 있는데, 그걸 꺼내놓지 않으면 뭔가 진실한 내용이 빠진다는 걸 너무 잘 알잖아요. 말할까 말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또 말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성장하는 걸 느꼈어요. 가슴에 묻고 지워버려야지 생각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표현하면서, 훨씬 당당해지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그 과정들이 저한테 너무 소중했고 새로운 힘이 됐던 시간이었어요. 그런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울림이 큰 책이 됐으면 좋겠고요.”
숙경(<이혼, 나를 성장시킨 힘>의 저자): “저는 이혼을 3년 동안 했는데요. 이혼을 하는 동안 진짜 많이 (글을) 썼거든요. (이혼소송에서) 변호사고 전문가고 없이 혼자서 다 했기 때문에. 저는 이 글을 쓰는 것이 3년 동안 써왔던 것의 연장이었어요. 3년 동안 글을 써오면서 ‘이렇게 하면 이혼을 진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정보를 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언젠가 한 번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같이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더구나 결혼한 여성들은 남편의 수입 정도에 따라가기 때문에, 이혼하게 되면 계급이 떨어지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이런 것 좀 진짜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텐데’ 생각했었고 상담도 많이 했어요. 마침 기회가 된 거죠. 물론 다 담아낼 수는 없었지만.”
윤하: “저도 재판 이혼했거든요? 1년 걸렸고, 그런데 변호사 선임도 부모님들이 다 해주셨고,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막 휩쓸려 가는 거죠. 이혼은 내가 하는 거지만, 가족들에게 휩쓸려서 이혼까지 간 느낌인 거예요. 정신이 없다는 느낌. 내가 주체가 되지 않았던. 그런데 숙경님은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필요한 많은 글들을 다 직접 쓰시고 처리한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했는데도 피가 마른다 생각했었는데.”
숙경: “거의 드라마죠. 손에 땀을 쥐는. 제 글의 제목을 <이혼, 나를 성장시킨 힘>으로 정했는데, 사실 저를 성장시켰거든요. 결혼생활 십 년 동안 뛰쳐나오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만약 얼마 안돼서 뛰쳐나왔으면, 그 남자가 당근과 채찍을 줬듯이 제가 흔들렸을 것 같아요. 충분히 곪을 대로 곪아서 갈 길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제 힘을 다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한 번도 (이혼에) 흔들림이 없었어요. 제가 호기심도 많고 20대 때는 방방 뛴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사람인데, 공부도 하다 때려 친 적도 많은데,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갔던 게 이거(이혼)였거든요. (모두 웃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나한테 미안해”
이옥임(<이사하는 날>의 저자>: “우리 세대들은 많이들 나처럼 살았을 거에요. 나의 성격, 나의 본성, 요런 것들은 제쳐두고 우선은 살고 봐야 하니까, 경제적으로. 애들 셋이나 내 손으로 키우면서 뭐,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평생 나를 가둬놨어요. 한 시간 한 시간 하루 하루를 때워야 된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어느 정도 여유를 부릴 때까지는 ‘나는 없어’ 이렇게 살아온 거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니까 그것이 나인 것 같았어요. 그게 전부인 것 같았어요. 이제 거의 나를 잊고 남편 그늘에서, 또 어느 정도는 내가 돈을 벌고 하니까, 그렇게 살았는데. 갑자기 남편이 아프더니 나를 돌아보지도 않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그때서야 ‘이게 아니었구나’ 그때서야 ‘어머,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나더라고요.”
“큰애를 여의었고(결혼했고) 둘째도 독립해서 나갔고, 그러니 시간도 있고. 그런 것이 여유라고 그러나. 하여튼 여유가 찾아 들면서 나도 나를 다시 한 번 찾아야 되지 않나, 이런 상황이었어요. 우발적으로 “이사하는 날” 사건이 일어났는데, 강화도에 놀러 가서 갑자기 언니랑 집을 보다가 방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것이 내면 속에 숨겨져 있던 나였어요. 거기서 남편과 떨어져 하룻밤 이틀 밤 자면서, 이제 나도 글도 좀 써보고 싶고, 글 쓰니까 또 써지고. (웃음) 내가 옛날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게도 되고. 또 나처럼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도 생기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윤하: “20,30대 사람들은 독립이라는 거, 대책 없이 벌이는 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연세가 많이 들어서는 힘들잖아요. 자식도 생각해야 되고, 남편도 생각해야 되고, 여러 가지가 너무 많아서 그런 용기를 내기 힘든데 감동적이에요.”
이옥임: “근데 여기 젊은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아, 잘했다’ 막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반대로 내 친구들이나 나보다 나이 더 많이 먹은 사람들은 너무 놀래요. 남편과 가정이 있는데 따로 집을 얻어가지고 거기서 반, 여기서 반 이렇게 생활하면. 부러워하면서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니? 막 이래. 난 진즉부터 이렇게 할 걸 싶은데. (웃음)”
윤하: “다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그 세대 분들은.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그분들도 그런 자유로움을 굉장히 꿈꿀 것 같아요. 기존 세상의 눈이라든지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많이 신경 쓰면서 살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없는 거겠죠. 그런 상황에서 결단을 내린 것을 보면 무척 용감하신 것 같아요.”
이옥임: “제가 원래는 용감하거든요? (모두 웃음) 사실은 많이 용감한데, 어떻게 그렇게 나를 숨겨놓고 철저하게 그저 남편이 원하는 것, 일반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것, 그 속에 나를 가둬놓고 살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나한테 미안해.”
“100% 피해자는 없다는 거”
숙경: “제가 좀 걱정이 되었던 것은, 모든 일이 100% 가해자나 100% 피해자는 없는데 내 얘기만 했을 때는 그 쪽도 할 얘기가 있을 거라는 거. 내가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좀 드는 거에요. 그래서 관계에 대해 성찰을 많이 했어요. 내가 왜 이 관계까지 왔나, 내가 잘못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기는 했지만, 상대방의 잘못이 또한 명확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를 너무 피해자로 만들지 않고 내 삶에서 거리를 두고 좀 객관화시켜서 보려고 노력했어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윤하: “숙경님이 그런 걸 염두에 두면서 쓰셨다면 그 마음 자체만으로도 글 속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숙경님이 어떤 고민을 하셨을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요. 사실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하고 글 속에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옥임: “내 경우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중에 들리는 소리가 전부 다 ‘애인 하나 두고 사는 거 아니야?’ (웃음) 그리고 궁금해서 와보는 거에요, 나 사는 꼴을. 뭔가 찾을 게 있나 보고, 뭘 발견할까나 막 뒤져 보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일부러 거기다가 신랑하고 나하고 외손녀하고 같이 찍은 돌 사진도 걸어놓고 그랬는데, ‘나 남자 없다’ 하고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모두 웃음)”
윤하: “저는요, 이옥임님이 딱 계획하고 계신 건 아니었지만, 마음에 가지고 있다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조건이 됐을 때 선택하셨듯이, 로맨스와 관련된 것도 꿈꿔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그런 시기가 닥친다면, 상황이 왔을 때 용감하게 손을 내미는 것도 저는 좋다고 봐요.”
이옥임: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해요. 남편과 잠자리를 전혀 안 하고 사니까.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주변에서 보면은 그런 친구들도 더러 있더라고요. 남편이 있는 사람인데도 자기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하고. 아, 남들이 하는 건 다 이해가 가. (모두 웃음)”
숙경: “우리 때는 386세대라고 그러잖아요. 다들 운동한다고 정신 없고, 학생운동 시대운동이 삶의 하나였거든요.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 않은데, 그런데 나도 살아가면서 여성주의를 만났거든요. 아, 개인의 것도 상당히 중요하구나, 개인과 사회가 분리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자기 욕구에 솔직하면서도 같이 만날 수도 있고, 소통할 수도 있을 거에요.”
40,50대 여성이 말하는 독립의 요건
윤하: “저는 너무 경제적인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을 했고, 기를 쓰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유학도 제가 다 벌어서 가고요. 부모님한테 의존하지 않은 건 너무 잘했는데. 내가 진정으로 독립한 존재인가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진정한 독립이란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함께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거잖아요. 자기 인생에 주체가 되어서 자기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 정말 진취적이고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그런 태도들. 이런 것들이 진정한 독립이 아닐까? 요샌 그 쪽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노력하게 되고 그래요.”
이옥임: “사실 독립하려면 경제적인 사정이 되어야 되니까, 나도 만약에 지금 연금을 받지 않고 신랑에게 돈을 타 쓴다면, 어떻게 내 공간을 마련했겠어요. 뭐든지 여성들도 경제적으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주위에서 가사일만 하고 산 사람들을 보면, 내 남편이 이걸 해주니 참 좋아하더라 이렇게 만족하고, 내 자식 이렇게 해서 내보내니까 자랑스럽고 그러더라 이렇게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것까지는 좋은데,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남편이 집에만 있는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고, 자식들도 ‘엄마는 이런 사람’ 하는 고정관념이 생기기 쉽고. 그걸 느낄 때는 우울증도 생기고 이렇게 되는 거지. 그때서나 내 인생에 다른 것이 좀 있어야 되겠구나 하고 느끼더라고요.”
숙경: “이런 건 있어요. 제가 가사노동을 오랫동안 해봤잖아요. 가사노동 자체는 고립된 게 있는데, 주부들이 사회적으로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요. 그러니 고립되어 있다고만 보기는 어려워요. 다만 내가 (가사일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진짜 좋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남편이나 다른 데 기대고 싶어서 자신을 위장하거나 합리화하는 건지, 그걸 한 번 봐야 될 문제죠. 이혼한다고 해서 남편으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 것처럼 같이 산다고 해서 다 의존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는 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도 나는 이게 좋다, 하면은 그 길로 가는 거죠.”
윤하: “우리 어머니의 경우에는 연세가 70이 다가오셨는데 최근까지 일을 하셨어요. 되게 젊게 사세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버님이 공무원에서 해직되면서부터인데,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일을 하신 것이 결과적으로 엄마를 많이 성장시킨 거에요. 경제적인 것, 그리고 자식들 키우는 일 등에서 굉장히 주도적으로 살아가시면서, 가정에서만 머무르셨던 할머님들하고는 다른 마인드와 씩씩함 같은 걸 가진 할머니가 되셨죠.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숙경: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독립을 하고 싶어했어요. 그땐 소녀처럼 환상에 젖어있었어요. 집을 떠나면 동화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살아보면서 느낀 것은, 경제적 독립은 기본이고 정신적 독립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는 독립 아닌 후퇴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두 가지가 적절한 긴장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는 게 독립인 것 같아요. 저도 여전히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진짜 다 이루어졌다고 믿었을 때 그게 허구일 수도 있거든요. 독립을 찾아가는 과정, 그걸 놓치지 않고 간다는 것이 대견한 일이고, 거기에 위안을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