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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혼한 목사님 편지


BY 2007-06-20

손님이 오면

 

 

 무엇보다 저는 우리집에 오는 손님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온 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여기는 오래 되고 아주 오래 된 동네여서

성씨가 몇 개안되고 또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되레 호통을 치고

사는 마을입니다.

 

 그 분들은 이웃에 가실때

손에 뭐라도 한 가지는 들고 가시는 게 습관이신지라

금방 집에서 키우는 암탉이 낳은 달걀 두개를 갖고오시는 박권사님.

부추를 여기선 정구지라고 하는데

이 정구지를 자주 베어서 움나고 또 움나는 게 일인 망골 할아버지는 늘 소쿠리에

담아 오십니다.

 

 낚시를 좋아 하시는 황씨네는 붕어며 잉어며 한 마리씩 꼭 교회에 갖고 오시면

아내는  반가운 얼굴로 냉커피며 요구르트를 내어 주었지요.

 

그렇게 늘 일어나던 일상들이 제가 이혼을 하니

그 오는 손님을 다 맞이 하고 인사드려야 되고 또 마실거리도 냉장고에 있나 없나 확인해야 되고

바뻐 진 겁니다. 더구나 하우스에다가 머위며 취나물, 참나물. 상추등을 농사짓는곳인데.

바쁠 땐 교회사택에 급히 달려 오셔서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통에

아내가 항상 손을 걷어 부치고 도와주었는 데.

이젠 제가 그 일을 대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사역이라는 것이 예배때 마다 같은 설교를 할 수는 없고. 그래서 늘 설교원고를 준비해야 되는 내 입장에

농사일을  먼저 도와 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도 못하고 그저 부지깽이도 손이 된다는 농촌에서 무슨 핑계를 댈 수도 없고.

 

 세상에 말이 도와주고 거들어 주는 것이지 참 힘들었습니다.

매실은 빨리 따줘야지. 옆에 나물 하우스에선 시간 맞춰 오는 상회들 차시간에 서로 손 맞춰 일해도 모자르는데. 웬 느닷없이 동네 앞에 개 팔어~~~ 염소팔어~~~ 하는 마이크대고 확성기를 틀은 트럭이 너무 한가롭게 보였습니다.

 

 아직 늦 봄인데 왜 이리 땀이 나는 지...

시원한 물 한바가지가 그렇게 신선하고 새로은 보물처럼 생각이 들고

이런 일을 아내가 나 대신 다 해줬구나...

 

여긴 도시가 아닙니다.

나에게 밭도 논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교회에 여러모로 쌀이며 부식이며 이런것을 음으로 양으로 보태주는 인심이 사는 곳인데, 제가 몰라도 한 참 몰랐던 것이죠.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주방에 들어가 보니 아침에 벌려 놓은 설겆이가 그대로 있고.

식탁에도 반찬뚜껑이 열려져 있는 데로. 가끔가다 웽웽하는 파리들만 아마 잔치를 했나 봅니다.

 

만사가 귀찮아지는 데

문득 전에 아내가 제 마음과 같았을까.

이혼 후 아내는 직장을 구했습니다. 다행히 집과 가까운 어린이집에 교사로 취직을 했는데.

얼른 세탁기도 돌려 놓고 또 시계를 보니 아내가 돌아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군요.

 

 

그래도 헤어졌어도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밥을 많이 해 준 것 같은 데.

여전히 밥 하는 것은 할 때마다 어렵더군요.

 

이 자리를 빌어 밥 잘하는 사람이 제일 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저처럼 이혼 후에 해주는 밥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 해 드리는 손에게

복이 가장 많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나의 아내도 저를 위해서 천번이 넘게 밥을 해주었는데.

복을 많이 빌어 줘야지요.

 

 밥 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덧)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