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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 보다도 본능이 앞서다.


BY 2006-10-07

세자가 열살 안팎이 되면 세자빈을 정하는데,
그 절차를 간택이라 했다. 먼저 금혼령(禁婚令)을 내린다.
일단 조선 팔도의 모든 처녀를 예비 세자빈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어 팔도의 감사들이 뽑은 처녀의 신상을 적은 단자를 적어 올리는데 이를 초간이라 한다. 30명 내외의 초간 통과자 가운데 재간에 진출하는 건 7명이다.
이중 3명이 삼간에 올라 마지막 심사를 받았다.

소현세자의 세자빈 간택 때 있었던 일이다. 삼간에 오른 3명의 처녀 가운데 권씨 성의 소녀가 있었다. 삼간 때는 궁중에 초대되어 낮것이라 불리는 음식을 대접받으며 관찰 받게 마련인데, 이 처녀는 젓가락을 두고도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가 하면 실성한 것처럼
히죽히죽 웃어 탈락되었다.

헌데 궁궐을 나와서는 멀쩡하여, 부왕인 인조대왕이 그 말을 듣고 소녀의 꾀에 넘어갔다고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간택에 오르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던 것은 비단 권씨 처녀 하나에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간택이 있을 만 하면 혼기에 이르지도 않은 딸들을 미리 여의었고,
심지어 독초를 발라 피부병을 가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부귀영화를 안겨다 주는 왕비로 선택받는 절호의 기회를 왜 그렇게 기피하고 두려워했을까. 첫째, 왕비가 되면 외척에 세도가 형성되고 세도가 형성되면 기필코 가문이 멸하는 화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둘째, 일단 간택의 망에 들면 선택되고 안되고 와는 관계없이 파산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처녀의 옷차림에서부터 가마 빌리는 값이며, 유모와 몸종들의 치장에 간택하는 관리들의
금품 요구 등 빚더미에 올라앉게 돼 있었다. 셋째, 간택에 올랐던 처녀는 살(煞)이 끼었다
하여 정상적인 결혼 대상에서 소외 받았다.

특히 삼간택에서 선택받지 못한 처자는 처녀로 늙어야 했던 것이다. 일국의 왕비가 되는 것은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한 여인의 삶으로 볼 때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다.
후궁들과의 암투는 물론이고 오직 임금 한 남성의 승은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많은 궁녀들에 대한 질시 등 험난한 여정이다.
또한 지엄한 자리인 만큼 여염의 여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제된 삶으로 인해
왕비는 여성이 아니었다.
따라서 사려 깊은 처녀나 집안에서는 왕비의 자리를 기피했던 것이다.

귀신도 처녀로 죽은 손각씨가 가장 원한이 깊고 무섭다고 여긴 우리네 정서상 부귀영화보다 중요한 것은 본성적 삶이었다. 여성들의 성의식이 적극화되면서 부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무릇 남성들은 여성들의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부귀영화보다 우선임을 알아야 하겠다. 왕비의 자리도 팽개치는데 주부자리야 오죽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