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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성희롱과 옛선비의 성희롱


BY 2006-03-10

우리 역사상 기억될 만한 성희롱사건이 종종 때 양반 마을인 북촌에서 일어났다. 영의정을 지낸 송질의 따님이요 후에 호조관서와 삼정승을 고루 역임하는 홍언필의 부인은 맹렬 여성이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홍언필이 술상을 들고 들어온 예쁘장한 계집종의 손목을 넌지시 잡았다.

양반들의 전형적인 성희롱인 것이다. 이 장면을 숨어서 본 송부인은 조금 있다가 보로 덮은 소반을 들고 와남편 앞에 놓고 나갔다. 떠들어 보니 계집종의 손가락 하나가 잘린 채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후, 삼불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상전은 계집종의 손을 잡지도, 말을 걸지도 말라는 삼불이다. 이 삼불의 행동 철학은 벙어리통으로 구현돼 우리 생활 깊이 뿌리 내렸던 것이다.

한말까지만 해도 한남동에서 장충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와 서대문밖의 무악재에 벙어리통을 굽는 도요지가 있었다. 이 가마에서 구운 벙어리통을 아도라 했다. 한양의 풍수가 농맹아를 많이 낳는 지형이라 이를 예방하기 위해 두 고개에 아도를 굽는 가마를 설치하고, 집집마다 벙어리통 하나씩을 마련해 둠으로써 농맹아의 기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미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당파싸움이 심했던 조선조 중엽에도 벙어리통이 널리 쓰였던 사실이 문헌에 나온다. 물론 지금처럼 저금통으로 쓰였던 것은 아니다. 모략과 음모가 날뛰는 세상인지라 보지도, 듣지도,말하지도 말라는 경계용 그릇이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은 벙어리통을 손님 앞에 넌지시 밀어놓는다.

앞으로 오갈 대화에서 시국이나 정세에 관련된 발언은 하지도 듣지도 말자는 암묵의 합의를 벙어리통이 대행했던 것이다.

시집가는 딸에게도 벙어리통 모양의 은노리개를 주머니 끈에 달아주는 관습이 있었다. 시집가는 당일 신부는 삼불 화장을 했는데, 보지 못하게끔 눈에 꿀을 바르고 듣지 못하게끔 귀를 솜으로 틀어막았으며 말하지 못하게 끔 대추 씨앗을 어금니에 물려 가마를 태웠던 것이다.

성희롱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강화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는데,조선조 선비들의 삼불으 되새겨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남녀가 함께 직장에서 근무하는 터라 옛 선비들의 삼불을 따라할 수는 없지만 신체접촉을 삼가고, 성적 대화를 금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언사나 행동을 금한다면 불핖요한 오해를 받지 않는 처세가 될 것이다.
 
작금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성추행 사건이3월8일 여성의 날을 바로 앞두고 국회의원이라는 분 께서  X가슴 을  식당집 주인인가 하여  술김에동아일보 여기자를 뒤에서 주물렀다고 한다. 이 사태는 대대적으로 국가적 대망신을 초래하고 자치장 선거에 정치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온 여성에대한 모독을 주는 안하무인에게 나라를 맡겼나 하는 한탄스러움까지..
옛 선비의 삼불의식을 알기나 하는 지..진정한 선비정치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