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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은 날 깨우고..


BY 2006-06-05

나도 모르게 글씨를 쓰다가 그만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얼마전만해도 전초전으로 졸리다 졸음이 온다..아! 왔구나..

이랬는데..

요즘엔 무엇을 하고 있다가도 그냥..왔구나! 가 되어 버립니다.

꾸벅꾸벅..

손님이 문을 두드려 깨우십니다.

\" 아이고..오셨어요\"

벌떡 일어나..안 졸은 척..

얼매나 이 모습이 우습 습니까..

이도 직업병 입니다.

졸다가 오셨어요라니..

내가 보아도 제 모습이 가관 입니다.

모양새 안 나옵니다.

 

어제는 능가산 내소사에 다녀 왔습니다.

\" 여보 가요\"
\" 그래 가지\"

짧은 말을 주고 받고, 애들 몰고, 친정 엄마 모시고 절에 갑니다.

어른들은 신나고, 애들은 굴뚝 입니다.

\" 바람 쐬러 가자 \"

\" 엄마만 가셔\"

남편..

\" 엄마한테 말투가 그게 뭐니..\"

제가 눈을 꿈벅 거립니다.

\" 아무말 말고 따라가 \"

\" 피 \"

당신도 그랬고, 나도 그랬어요.

예전에 다 지나간 남어지 아닌가요..

그땐 반항이 멋 인줄 알때지요.

부모한테 반항 안하면 누구한테 하나..그러려니..

그래도 역시 편은 편이네요.

남편이..

 

산과 들과 여유와 내가 하나 되는 시간 입니다.

흘러가는 차량의 행렬을 보며, 용의 꿈틀거림을 느낍니다.

온몸에 기가 모이네요.

문득..

앞 차량을 보며 웃었습니다.

살그머니 남편의 손을 잡았습니다.

날 쳐다봅니다.

\" 여보 저기 봐요\"

트럭 안에 가족이 탔습니다.

뒷 창문으로 가족 상황이 다 보이네요.

운전하는 아빠, 그 옆의 엄마..그 옆의 큰 딸..

뒷 작은 공간에는 초등학교 1.2 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얼마나 다복해 보이는지..

바로 옆 비싼 승용차가 가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길에서 캡틴이 될 수 있는 것은 날긋날긋한 내 눈앞의

트럭이 단연 으뜸 입니다.

남편도 웃습니다.

나도 같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의 아이들과 엄마를 보았습니다.

우리집 승합차도 단연 으뜸 입니다.

 

초여름의 문턱은 화사한 옷을 입었습니다.

하늘도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고..

산도 나름대로 색을 입었고..

두둥실 마음은 저편으로 갑니다.

 

마을 언저리마다 농군의 얼굴도 보이네요..

전엔 느낌이 없었습니다.

어르신들 일하는 것을 보면 응..일하는 구나..

이랬는데..

지금은 경의롭기까지 합니다.

놀이 삼아 가는 이 길도 왠지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상상을 합니다.

막걸리에 김치..달걀말이 해서 저 들녁에 앉어 같이

이야기 한자락 늘어 놓으면..

참 좋것다..

산이고 들이고 집이고 사람이고 정성들여 일군 이 터에

막걸리 한사발이면 온갖 시름 훨훨 날라가고..

참말로 좋것다.

 

혼자 웃는 내얼굴을 남편 따라 웃네요.

이심전심이라..

대충 알겠지요. 제 맘을...

 

전라도 땅은 왠지 기운이 맑습니다.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내소사도 그러하네요.

바위산의 장엄함을 뒤로...

절을 여자의 가슴 모양 앉아 있습니다.

열두폭 병풍처럼 좌와 우를 동그스럽게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중앙 부처님이 앉아 내려 보십니다.

더불어 당산나무 두 그루가 천년의 위용을 자랑하며

있네요.

자연스러움, 있는 그대로, 꾸밈 없이, 더불어..

수능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깊이 앉아 인사를 하니 몸이 가벼워집니다.

이야기를 많이 담은 자리는 온갖 상념들이 쏙쏙

살아납니다.

나와 같이 천년전 사람도 앉아있을 터이고,

나와 같이 천년전 사람도 기원을 드렸겠지요.

그래서 터는 다져지고, 마모되고, 인고가 녹아 못난 중생을

다시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 버립니다.

그림으로만 남아 있네요.

흔적으로만 남아 있네요..

터는 그렇게 천년을 또 거슬러 올라갑니다.

 

내려오는 길에 아들 묻습니다.

\" 무슨 소원 빌었어요\"

\" 글쎄\"

\" 왜 엄마는 매일 글쎄라고 말해요?\"

\" 글쎄..니까 글쎄지..\"

\" 피..\"

\" 넌 무슨 소원 빌었어?\"

\"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달라고..\"

\" ...00아..절은 소원 빌러 오는 곳이 아니야 \"

\" ..\"

\" 절은 소원 들어주는데가 아니고, 너 잘못한거 있으면

  참회하러 오는 곳이야 \"

\" 아..남 마음 아프게 하고 그런거..\"

\" 알고 있네..훌륭해\"

 

사람들은 절에 오면 무엇을 구하러 옵니다.

실은 부처님은 돈이 많거나 부자도 아닌데..

그냥 앉아 있는 분인데..

한마디로 부처입니다.

 

\" 00야 약속 하는 것은 꼭 지켜야 하지?\"
\" 네\"
\" 부처님 앞에서 약속한 거 있어 없어?\"

\" 있어요\"
\" 못 지켰으면 다음에 또 지키겠습니다.

  잘 지켰으면 다음에도 잘 지키겠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거야 \"

\" 음..\"

\" 부끄럽지 않게 약속 잘 지켜!\"
\" 네\"

나도 다짐를 합니다.

부끄럽지 않기를..

사주쟁이가 참으로 심오해지는 날입니다.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하늘과 맞 닿은 전나무 숲에서..

나의 심의 파장이 멀리 메아리 됩니다.

 

내려오는 길에..

낙조를 봅니다.

참으로 경건하구나...

하루의 여정처럼 깊고 깊구나..

 

성인들의 설하신 자리 자리마다....그 기운의

자락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언제쯤 옳거니란 답이 나올까요.

아직도 제 머리는 글쎄로 자리 잡았습니다.

서서히 저 광채의 빛도 밤으로 감싸 안것만...

아직도..

오리무중으로..

물음표만 남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