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쇼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눈에 확 들어온 \'화끈한\' 부제와 \'19금\' 마크에 사로 잡혀
<박철쇼>를 보노라면 세상이 참 말 그대로 \'화끈\'해졌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나이 좀 찬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내용이라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콩닥콩닥
가슴 졸여하는 것들은 머리 속에서 존재하는 지식이 실재의 행위로 화학변화하는 순간들이 아니던가. <박철쇼>는 백과사전 뒤적이며 남몰래 관련 상식을 보던 개인전술의 시대가
이제 물 건너 간지 오래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휙휙 잘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과연 옐로우 저널리즘의 광풍이라고 불리울 만큼 본능을 자극하고 선정성에 기대는
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케이블 방송 시장이다.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심리야 태초부터 있어왔다 한들 그걸 이용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곤, 감히 그럴 수 있으리라곤 불과 몇 년 전까지 생각 잘 안 하며 살았다.
남이 쇼파에서 하든, 식탁에서 하든, 개집에서 하든 대체 무슨 관심거리란 말인가.
구성애 씨는 \'아우성\' 신드롬 때와 다름 없는 명쾌하고 솔직한 성 상식을 전해준다.
그러나 사실 그녀도 방송 중간 중간 민망해 할 만큼 <박철쇼>가 자극적인 이유는
\'철스 패밀리\'라는 이름을 가진 출연주부패널단의 \'(의도된) 솔직함\'에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를 성에 대한 솔직함으로 포장하여 파는
그 솔직하지 못한 기획의도에 있다. 안다. 세상이 변했다는 걸. 아니 변하고 있다는 걸.
섹스는 죄악이 아니며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 미덕이란 것을 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출연해 자신의 \'밤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부들은 일면 솔직한
신세대 주부로 보일락 말락 한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시청자가 생판 처음 보는 여자의 선호체위를 알 필요는 없으며,
그녀의 자극세포가 귀에 몰려 있는지 배꼽에 쏠려 있는지 말해주기 전엔 전혀
궁금하지 않다. \'쿨함과 솔직함\'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쓰고 남의 사생활에 집중하게 하는 이 제작 행태는, 맞은 편 아파트 창문을 향해 천체 망원경을 들이대며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였다\'라고 항변하는 것과 같다.
자진해서 창문을 열었다는 그녀들은 자신들이 정말 솔직한 건지 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숨길 것 없고 창피할 것 없다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쏟아낼 때마다
이야기하는 그녀와 박철과 시청자들과 심지어는 전문가인 구 소장까지도 낯 뜨겁다는
식으로 반응을 자주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거 보세요. 우린 지금
자극적인 얘기를 하고 있으니 시청자님도 어서 흥분하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 \'그게 솔직한 거에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거 챙피한 거 아니에요.\'
라고 주입 당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의 실생활도 그러한가. 정작 그 주입교육도
\'섹스 앤 시티\'로 대변되는 비현실적인 선생님이 해주신 거 아닌가.
내 어째 하루종일 브런치를 먹는다 했다. 먹을 시간이 없어서 먹는 음식을, 따로 시간 내서 따로 약속 잡아 먹는다 그럴 때부터, 이 나라의 잘못된 \'시크함\'과 \'쿨함\'을 가진
사람들은 영리한 상업방송 제작자들의 과녁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30,40 대라는 출연주부단 그녀들의 외모는 하나같이 처녀같다.
날씬하고 쭉쭉빵빵한 그녀들을 보며 질투와 함께 묘한 동경을 갖게 되는 일반의
주부 시청자들은 그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칫 멋지고 좋은 것으로 인식해 버릴 수 있다. 멋진 옷에 멋진 헤어 스타일을 한 그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얻는 것은 무엇일까. 성에 관한 상식? 그런 거라면 이미 널리고 널렸다.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조언? 이미 수없이 많은 전문 게시판들이
각각 수십만개 씩의 Q&A로 무장되어 있다.
결국 우리가 <박철쇼>의 성에 관한 토크를 보며 얻는 것은 남의 집 이야기를 들으며
얻는 비밀스러운 쾌감의 점유율이 크다.
게다가 성에 관한 이야기이며, 본인들 입으로 직접 한다. 이보다 자극적일 수가 있을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실은 <박철쇼>의 시청자 안에는 남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본다.
모르는 여자의 다리 사진 하나에 수백개의 리플을 달아대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억눌린 욕망은 다분히 <박철쇼>의 상승하는 시청률에 일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재밌으면 보고, 싫으면 보지 마라, 라고 아메바처럼 세상 살 일이 아니다.
사생활을 공개하겠다는 자와 사생활을 보겠다는 자가 공존한다고 해서,
그렇게 수요공급의 원칙이 완벽히 지켜지고 있다고 해서 다 좋게 넘어갈 일도 아니다.
마약을 원하는 자와 마약을 파는 자 사이엔 검은 돈이 존재하듯이,
<박철쇼>의 허울 좋은 기획 안에는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이목을
중독시키는 저열한 의도가 숨어있다.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 살아도 마냥 돈 타령하는 건 너무 비참하다.
방송 앞부분에 순수한 토크타임을 구성하여 이러한 지적에서 피하려 한다 한들,
되려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만 줄 뿐이다.
정말 당신이 <박철쇼>를 통해서 배우는가. 때론 배울 것이다. 뻔히 알고 있던 것들을 말이다. 아, 또 배울 것이다. \'그 여자가 뒤로 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실제 이런 식으로 토크를 한다). 차라리 더 저속하게 가면 비겁하단 소린 안 듣지,
안 그런 척 내숭 떠는 이 프로그램이 아주 불여시같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