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창을 두드립니다.
누구시요..
바람입니다..
왜 오셨습니까..
가을입니다..
알아요..근데...우리집 만큼은 오지 마시요.
왜요..
주인장이 가을만 되면 몸살을 심히 앓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도 아적 앓고 있나요?
예...그러니 오지마시요.
여기..와야..수수대처럼 늙어버린 마음만 있습니다.
여기는 말이죠.
혼자 노래을 불렀습니다.
선생님..저예요.
애들입니다.
얼마전에 같이 쪼맨한 작업을 더불어 한 친구들 입니다.
그래..너무 보고 싶다...잘 지내고 있지..
네...저두 보고 싶어요.
그래..나두..
다음주까지 시험 보구 만나요..선생님..
그래..그러자.
아휴..지겨워 죽겠어요.
웃었습니다.
일찍 시집을 갔더라면 지금 아들, 딸로 있을 대학 초짜들..
그들과 작업을 하면서 울고 웃고..내 젊은 날로 돌아가
마음 껏 펼쳤던 향연들이 죽 머리를 훓고 지나갑니다.
열정은 있으돼..아직 미흡한 그들을 보면서..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인 그들이 새삼 부러워 나도 모르게
속병을 앓은 날도 있었습니다.
왜...그렇게 젊음은 그렇게 아름다울까요..
...
스물세살에 결혼한 멀리에서 오신 손님은 밤잠을 설친
눈빛이 그대로 비춰졌습니다.
사주를 놓고...좀 색다른 이야기를 늘어 놓았습니다.
남편이 위암으로 수술을 했고..
다시 제발 할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주 팔괘상 토가 꽉 차 있으니..당연한 결과지요.
병술년에 시작한 종양은 올초 수술을 했으나..
내년이 무자요..다음년이 기축이니..
세운에 토가 또 들어와 범람을 하니..이를 어쩜 좋을까..
이런저런 말을 하며...좀 부부정이 깊으라 말했습니다.
근데요.
부부정이 처음부터 너는 너..나는 나..그랬겠나요.
경금의 아내는 마음에 꽁꽁 언 이슬이 맺혔으니..
서슬퍼런 날이 한으로 남아 있지 뭐예요.
스물 일곱살에 데리고 있던 여직원이 남편과 밀애를
나눴고...그 여직원 조용히 짐 챙겨 나가거라..했더니..
나간다던 여직원은 방에 들어가 칼로 손목을 그었답니다.
남편...병원 오는 것이 싫어 그 여직원 간병까지 하고..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군요.
짧지만 그 마음은 어쩌겠어요.
이분..절대 속 이야기 잘 안하는 성격인데..
눈에 이슬 맺히며 조근조근 이야기 하시는 마음이
어머..어머..한조각 한조각 내려 앉는 기분 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남편의 바람은 욕심처럼 불어 닥쳤고..
애들..가정..그 무엇인데...자신을 자꾸 다듬으며
이만치...불혹을 넘기어 처연한 한 만 간직한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젠 남편을 봐도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 답니다.
그냥...같이 한지붕 아래 사는 사람..
다 지워진 마음에 무엇이 남았겠어요..
그런데..이분은 울고 계십니다.
어느새 미운정이 들어 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그 얼마나 기막히겠어요.
사실은 미운정이 더 무서운 정이라..
애뜻한 감정은 미운정에서 더 질겨집니다.
\' 마음이 없다해도 아직 애들 아빠고..\'
바람 막이는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 날엔 열심히 바람 피우고..
이제 좀 살려고 하니..
몸에 병까지 찾아와..
아...이 가련한 삶을 어찌 할고..
가신 뒷자리에서 자꾸..생각이 나서 한참 멍하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하며 부르는 아직 뭘 모르는 친구에게
밑도 끝도 없이..
\" 니들 남자 잘 보고 시집 가거라..알았지..\"
\" 어머 선생님...남자가 없어 허전해 죽겠어요.
뮤지컬 보러 왔는데 혼자예요\"
\" 혼자....쯧쯧\"
이래 놓고는 웃었습니다.
남자가 있어야지..
허전하니까..있어야지..
근데...무엇때문에 그 반쪽은 그렇게 속을 썩인다니..
무엇때문에..
고운 얼굴이 쪼글쪼글 세월을 맞고..
쌍커플 진 커다란 눈에 이슬이 맺히고..
소심해진 어깨가 더욱 가라앉으니..
결혼이란게..이런 건가..
부풀어 오른 결혼의 환상과..
인고를 넘긴 여인은 불과 이십년 차이 거늘..
너무도 세월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그 인연 전생에도 인연이고..다음생도
인연이니..요번에 좀 잘 풀고 가세요.
이 팔자가 뭔지..따져따져 들어가면 만난 사람을
또 만나고...덕도 한도 같은 맥으로 흐르더라..가 됩니다.
남편이란 이름으로...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인간대 인간으로 보면 그도 외로운 인생이라..
큰 맘 먹고 배 위의 상처 어루 만져 주세요.
살과 살의 에너지는 감동을 받으면 나쁜 인자는
모두 쓸려 내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살성의 원칙 이지요.
까끌까끌한 바람이 살에 와 부딪칩니다.
이 바람 만큼 오늘 오신 분의 마음에도
한은 엉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은 맘 구멍 조금 내어 놓고 용서하구 용서하구..
용서하면...어느새 훨훨 춤추며 날아갑니다.
일체의 만법이 한 끝 자기 손톱 밑에 있는데..
무슨 구시렁이 필요 할까요..
그저 오늘 꿈 속에서나..이 쓰린 아픔이 좀 훨훨
아무것도 아니냥...깨달음의 극진한 꿈만 꿨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날에 두 손 꼭 잡고 맹세 했겠지요.
우리 이맘 변치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