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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의 소야곡.


BY 2007-09-29

입술이 퉁퉁 부었다.

추석날을 열심히 보낸 훈장이다.

 

시댁에선 추석 전날 상을 차린다.

오색만찬의 전주곡 이라고 해야 하나..

 

한쪽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할 때면 모두 숨 죽여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숨 죽은 자와 숨 쉬고 있는 이 모두...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막내인 내가 누리는 행복이 이렇게 크다.

경전을 소리 죽여 읊고 있으면 큰 시숙님도 작은 시숙님도..

큰 형님도 작은 형님도...그리고 얼마 있으면 시집 갈 조카들도

마지막 우리 막둥이 딸도...모두 잔잔해진다.

 

이 느낌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깔린다.

그래서 나는 참 행복한 여자다...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그랬다.

 

\" 엄마..나중에 저쪽 세상 가면 분명히 큰 절 세번을 받으실겨..

  돌아가신 아버님이 엄마한테 얼마나 고맙겠어요..

  이렇게 훌륭하게 자식들 키워서..\"

 

한 일가의 역사는 조용히 쓰여지고 있었다.

 

이 기쁨을 한 가득 몸으로 느끼고 나니..

가족이 왜 좋은지..

가족이 있어 왜 뿌듯한지..

가족이 주는 애뜻함에 스스로 박수를 보낸다.

 

지금 세상에 무엇이 없겠는가..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이제 마음을 넉넉하게 할 차례가 되었다.

마음으로 느끼는 그런 명절을 가져보라..

 

\" 할아버지가 참 훌륭하시다..너희들 처럼 훌륭한

  손자 손녀를 보셨으니...감사합니다..그래\"

 

힘이 들어간 말에 가족들은 웃음으로 대답한다.

 

역사 앞에 장사는 없다.

역사처럼 철저하게 심판 받는 것도 없다.

역사 만큼 그대로 답습 되는 것도 없다.

 

깊게 생각하고 갈 문제다.

 

이런 상생에 젖고 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천금을 얻는 것 처럼 기뻣다.

 

그리고 바쁘게 휙휙 시간은 간다.

 

몸 풀 날을 코 앞에 두고 있던

나의 어머니는 그 독덩이를 품고도

펌프질(수도 있기 전)를 해가며 조상께 예을 올렸다.

 

좀 일찍 나왔으면 우리 엄마 덜 고생 했을 터인데..

명절 다 치루고 그 깔끔한 성격에 솥단지 거울 모양

닦아 놓고 걸레를 행주로 만들어 놓고..

애가 뱃속에서 지쳤는지..한 주먹 걸이 밖에 안되게

나왔단다..

보름 지나 이틀째에...

그 주먹한 것이 이제 세아이의 엄마다.

 

내가 이 일을 해먹고 사는 것도 본래의 시나리오가

가져다준 업이 아닌가 생각해서...

기쁘게 받아들여진다.

 

해마다..귀빠진 날이 되면 할 일이 더 많다.

 

몇년전에 용한 무당을 뵌적이 있다.

 

그 분 왈.

\" 절대 생일 챙겨 먹을라 마소..명 대로 살고 싶으면\"

\" 왜요..\"

\" 생일 챙겨 먹을 사람도 하늘이 정해 주는데..

  그 하늘이 생일 챙겨 먹으라 하지 말라네..\"

웃었다.

 

그래..이년의 팔자에 무슨 생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서글퍼 운적도 있었다.

 

그런데..그런데...말이지.

 

태어남도 호사고 죽는 것도 호사인데..

뭐 그런 것을 가지고 서글펐나 생각하니..

참..들 되었다...그랬다.

 

이런 생일날에 난 손님과 많은 씨름을 하며..

천장이 다 헤진 입으로 울기도 했다..웃기도 했다..

팔자 타령을 신나게 했다.

 

꼭 작두 위에 춤추는 무녀처럼...

 

팔자 참 재미있지요..

팔자..참 묘하지요..

팔자...이 팔자 말이여요..

 

신나게 놀고 나니 술시를 넘겨 해시로 들어간다..

 

바람난 남편 잡을 길이 없어..

펑펑 울던 손님도..

옆에서 같이 풍월 하던 객도...

다 제 갈길로 가고...

엄마 기다리는 아이들의 제촉만 찌릭찌릭 울린다.

 

동생이 주차장에서 기다린지 꽤 되었다.

고단에 지친 입과 눈은 긴장이 풀어지니

잠시 덜덜 떨린다.

미안하다..미안해..

잠시 묵상을 하고...

장엄한 생일날의 소야곡은 끝을 맺었다.

 

아들이 속을 썩이는 이도...

이사를 가야 할 사람도...

사업이 안되는 사람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면접 봐야 할 딸의 시험 결과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이 마음도...

알길이 없고 찾을 길이 없어 왔는데..

 

마지막으로 오신 남편을 찾는 아내가

눈시울을 적신다.

 

\" 오늘은 일찍 오지..\"

\" 엄마..미안해..좀 늦겠네..\"

\" 으이구..\"

 

엄마의 생일날 덕담은 으이구....

 

재주가 이러니 어쩌겠어..

엄마 미안해..

 

훵하게 뜬 달을 보고...

 

그날 그밤에도 너는 떠 있었느냐...

 

달아 달아...밝은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