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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시춘] '나는 노무현이로소이다.'


BY 2009-04-24

“나는 노무현이로소이다”
(서프라이즈 / 유시춘 / 2009-04-24)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者)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凌辱)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烟氣)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


지난 보름여 간 우리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매일매일 검찰이 공급하고 언론이 생중계하는 ‘노무현비리’를 듣고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이 나있습니다.
오죽하면 ‘적진’ 핵심부에서 ‘이런 수사 처음 보았다’고 할까요? 드디어 회갑선물로 받았다는 고급시계 이야기까지 대문을 장식합니다.
입 달린 사람들은 다 한마디씩 거듭니다. 저 혼자 깨끗한 척하더니 꼴좋다고.


그 숱한 검찰수사가 구속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법정에서 유죄판결로 결론나는 비율이 몇 퍼센트일까요?
전문가가 아니므로 수치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직무상 알게 된 ‘알려진 비밀’을 실토하겠습니다.
2001년 국가인권위가 출범하고 3년간 진정 받은 2만여 건 중에 너무도 많았던 것이 검찰의 편파, 왜곡, 늦장수사와 관련한 억울함의 호소였습니다.
그 진정인들이 모두 피해자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연 하나하나는 그들 나름으로 너무 간절했습니다. 수사권도 강제력도 없는, 그저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인 국가인권위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억울한 사연들이 모래알처럼 많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때 여러 날을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일은 그토록 지난한 일입니다. 국가권력이 한 무력한 남자를 간첩으로 몰아 수렁에 빠뜨린 후,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우리는 드레퓨스사건을 통해 보았습니다.
 
‘이 가방 안에 공산주의자의 명단이 들어있다’라는 허언으로 시작된 매카시즘 광란은 지구상의 가장 선진적 문명국인 미국을 야만과 불신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이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매카시의 가방은 빈 가방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진실’은 그토록 해저 3만리처럼 먼 곳에 파묻혀 때로 인간의 이성과 도덕과 용기를 시험합니다.


진실 여부를 다투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브리핑하는 법치(?)국가


노무현이라는 한 자연인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동의하고 지원했던 사람으로서 이즈음 일어나고 있는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너무나 참담합니다.

검찰은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기관이므로 불편부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아름답고 신성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우리의 현대사는 이를 권력의 ‘하수인’으로 이용해왔습니다. 이를 입증하는데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노무현은 이 파행을 되돌려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권위를 송두리째 놓아버리고 평검사와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일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그런후에 검찰은 당시의 살아있는 권력이라 할 사람들을 많이도 기소하고 단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검찰은 이제 죽은 권력이 된 이들을 향해 무소불위의 거침없는 칼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아직 법정에서 진실 여부를 다투지도 않은 사안, 피의사실을 버젓이 브리핑하는 것이 과연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수사기관은 수사권을 위임받기도 했지만 또한 이와 함께 관련자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즈음 저는 정말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광주학살과 군사반란, 그리고 5000억이라는 단군이래 최대규모의 뇌물사건으로 사법적 단죄를 받은 전두환 노태우와 비교하는데 이르러서는 그저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저에게는 노무현이 한 자연인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지냈지만 노무현 또한 범인과 다름 없이 그 한계와 결점을 지닌 자연인입니다.


거꾸로 매달아서 먼지털이로 샅샅이 털어도 나올 먼지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또한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자금을 살포한 기이한 기업인과 인연이 아예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저는 국가인권위 재직 시절 ‘이라크파병 반대선언’을 주도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러내놓고 반대하기도 했고 한미 FTA를 강행하는 그의 본심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또한 기득권의 중심네트워크인 조중동을 향해서도 아무 전략 없이 그저 ‘말’로만 비판했습니다. 그 결과로 ‘되’로 주고 ‘말’로 받았습니다. 제가 보는 그는 이해타산에 밝거나 능수능란함과는 거리가 먼 허술한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런 그가 한 시대를 끌고나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21세기 한국이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심각한 파탄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그런데 이제 그와 함께 그가 가리키던 가치마저 송두리째 매장당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이들은 다 저와 같이 참담할 것입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같다’는 단세포적 냉소와 불신이 우리 사회를 뒤덮지나 않을지요.


슬프고 아픈 가슴으로 뒤척이다가 떠오른 생각이 위의 만해의 시편입니다. 겉으로는 윤리, 도덕, 명분이라는 달콤한 포장을 하지만 그 속에 탐욕과 불의를 감춘 현상들이 이 부조리한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문명은 꾸준히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확대하고 신장하는 방향으로 부단히 진보해왔습니다.


고달프고 신산스러운 우리의 현대사 역시 만난을 거듭하면서도 국민의 풍요로운 생활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향해 전진해 오지 않았습니까? 만해의 ‘당신’은 만해의 상징어인 ‘님’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타락한 사회, 치욕적인 삶 속에서 윤리, 도덕, 법률은 사실상 권력과 돈에 봉사하는 기만적 허상일 수 있습니다. 식민통치의 어둠 속에서도 그랬고 유신왕조와 5공의 피묻은 권력 내에서도 그랬습니다.


법률이름이 ‘긴급조치’ ‘국가보안’일 뿐 기실 ‘권력한테 대드는 이놈 너 뜨거운 맛 좀 봐라’였습니다.


7,80년대의 피뜨거운 일군의 청년 학생들의 정의감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불철주야 노동현장을 지키는 근면한 노동자들의 힘으로 우리는 세계 굴지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심각한 파탄에 직면했습니다. 민생은 거덜나는 중이며 민주주의는 뚜벅뚜벅 후진중입니다. 세계의 공인을 받은 남북평화공존정책은 유리그릇마냥 박살나려하고 있습니다.


부조리하고 그릇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광정하려는 집단의 노력만이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이 반복된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


만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 시편은 회의하고, 흔들리는 우리들에게 주는 잠언이요, 경구입니다.


저 역시 때로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하는 도저한 유혹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홈페이지를 폐쇄할 작심을 하는 노무현의 글을 읽고 잠들지 못했습니다. 잠시 눈을 감은 비몽사몽 간에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악몽에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정부도 언젠가는 죽은 권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경전에서는 ‘권력은 눈 위에 새긴 발자국’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검찰의 이와 같은 전방위의 무소불위 권력이 반복된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이요, 국민을 불안하고 슬프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바라건대, 저는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의 가치관과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지만 어쨌든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만해와 동시대를 살았던 홍사용 시인은 식민통치 시대의 불행과 위선을 향해 비탄과 애상으로 일관했습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이 세상 어디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다 왕의 나라이로소이다.


무력한 지식인의 반어와 냉소와 절규는 답답한 마음을 대변해 주었지만, 현실의 한 모서리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동일한 현실을 대하는 두 시인의 통찰과 행동은 이렇게도 달랐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노무현 세력은 모두 가난뱅이였습니다. 집 한 칸 없이 전세나 월세로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만날 때면 오히려 백수인 제가 차를 산 적이 많습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방의 사람들입니다. 그들 역시 모두 나름대로 많은 한계와 결함을 지닌 갑남을녀입니다. 털면 모두 먼지가 나옵니다. 다만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직을 맡거나 녹을 먹지 않았지만 저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를 품고 있는 우리 모두는 여전히 ‘노무현’


작금의 이 현실이 너무 모욕적이고 고통스러워 모든 걸 잊고 어디 멀리 벽지에 숨어 상추 심고 꽃 구경하고 풉니다.

그런 저의 덜미를 잡는 것이 만해입니다. 그리고 비록 그 행동 양식이 만해의 반대편에 서 있지만 너무 절절한 홍사용의 표현을 빌어 자신을 정의해봅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노무현이로소이다’
 
끝으로 여러분께 하나 알리고픈 사실이 있습니다. 이미 아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1980년 12.12군사반란으로 권력의 기초를 단단히 다진 전두환 신군부 일당이 정치적 반대자를 일거에 몰살시키기 위해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날조합니다. 모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하 취조실에서 6월 중순에서야 ‘광주항쟁’ 사실을 알고 까무러치고 오열합니다.


그리고 군사법정은 김대중에게 광주항쟁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은 최후진술을 합니다. 저는 그 최후진술문을 읽고 그의 지도자됨에 경탄했습니다. 무한한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사후에 결코 정치보복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 그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주었던 전두환을 사면하고 진실로 용서합니다.
 
격동기의 지도자로서 가진 참으로 거인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 대통령은 작금의 현실에 ‘서글프다’고 하십니다.


정말 서글프고 슬프고 아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를 여전히 품고 있는 우리 모두는 여전히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은 우리를 보고 이제 자신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어쩔 수 없이 되뇝니다.

“나는 노무현이로소이다”

 

 

 


ⓒ 유시춘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