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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이명박들...초조와 불안의 나날


BY 2009-02-16

청와대가 여론 조작에 몸소 납시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아랫것들(견찰들)이 여론조사에 떼 지어 개입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추어같이 서툴러서 영 성에 차지 않은 겐가.
아니면, 용산은 도심테러에 대한 응징이라는 조중동들의 화려한 말빨이 예전과는 달리 신통치 않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대놓고 여론 왜곡에 나선 게, 용산 관련해서만 벌써 두 번째다.

똥이 되어 나온 것만 해도 이 지경이니 방귀는 을매나 뀌어댔을 것인가. 갱제 살리기도 바쁘신데 이런 것까지 직접 챙기시다니, 좀 천천히 하시지. 그러다가 귀하신 몸 망가지면 어쩌려구.

어떤 죽음을 은폐하려 또 다른 죽음을 이용한, 상식을 뒤집는 엽기적인 일이 백주대낮에 벌어졌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이명박이 거품 문 게 불과 엊그제인데, 왜 그랬을까.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 이명박들이 보여줬던 일련의 행태들을 복기해보면 힌트를 어렵잖게 찾아낼 수 있다.

컨테이너, 건국절, 지하벙커, 미네르바, 방송장악, 그 이름도 알흠다운 4대강 정비, 용산의 특공대, 그리고 3.1절 기념 ‘나라사랑 랩송’ 만들기 등....에 일관되게 배어 있는 것은, 초조와 불안이다. 요즘 왜 그렇게 법떼들이 설쳐대겠는가.


정권 잡았을 때, 이명박들은 모든 게 술술 잘 풀릴 것으로 봤다. 갖은 불법, 탈법, 위법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큰 표 차이’로 이겼으니 흥분할 만도 했다.


그때는, 땅파기 공사판 만들어 갱제를 살리는 척만 하면, 맘 놓고 해먹어도 될 줄 알았다.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대놓고 떠들어댔다. 아무리 삽질해도 그래도 노무현보다는 낫다, 생각할 거라고 국민을 얕보았다.

어륀지가 그랬다. 무지몽매한 것들아,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고 해야 맞다. 어때, 노무현하고는 뭔가 차원이 다르지?


이어, 하늘을 찌르는 이명박들의 통 큰 자신감이 대형 사고를 냈다. 평소 존경하는 부시 각하를 카트에 모시는 영광에 보답고자, 미친 소고기 수입이라는 선물을 덜컥 줘버린 것.


그때는, 답답하게시리 질질 끌어온 노무현과 달리 갱제전문가다운 화통한 모습을 보여주면, 역시 갱제대통령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며 국민들이 열광할 줄 알았다. 실제로 자신이 아끼는 조중동도 한미 찰떡 동맹의 걸림돌이 제거됐다며 아주 홀딱 벗고 환영했었고.


부시 형님과의 유쾌한 딜에 기분이 째진 나머지, 이명박은 ‘잃어버린 10년’이 국민들에게 무시무시한 것을 남겨놨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5월초 촛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촛불 때문에 자신감은 뒤집혀졌다.


이명박과 조중동들은 잃어버린 10년의 진실에 대해 사람들이 진짜로 깨닫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은 죽어줘야 했다. 국민들도, 잔말 말고, 진짜 잃어버린 10년인 줄로 꼴딱 속아 넘어가 주어야 했다. 노무현이 갱제 망쳤으니 갱제대통령을 밀어주자는 구호가 진짜 먹혀들어갔다. 더 이상 뭘 바랄 것인가. 


그러나 어쩌랴, 극적인 반전이 지둘리고 있었다.


김대중, 특히 노무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권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됐다. 힘을 가진 자들이 허용된 범위를 이탈할 경우, 그들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터득했었다.  


노무현은 모든 사람들을 뉴타운으로, 강남으로 들이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뉴타운, 강남 되기를 이명박에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서프라이즈!... 잃어버린 10년과 노무현이 남겨준 그 정신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때는 굳이 경찰특공대가 출동하지 않아도, 여론을 조작하지 않아도, 속도전을 외치지 않아도 민주주의는 작동됐다. 그때 사람들은 민주정부에 역사를 맡겼었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갈등은 그때도 산적했었지만, 적어도 그것을 인정됐고 소통하려는 자세는 있었다.


그때는 광장이 굉장히 열려 있어서 사람들은 광장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지금은 정확히 그 반대다.


이명박들의 불안, 초조는 이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나온다. 그 10년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총합의 힘이 바로 촛불이다.
그 10년의 경험에 따라, 사람들은 이명박을 찍었던 똑같은 손으로 촛불을 들었다. 아니면, 그 이름도 거룩한 절차적 합법성을 가졌으니 이명박을 어쩔 수 없이 인정했던 똑같은 입으로, 이제 더 이상 쥐씨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09년 2월 16일자 경향신문 만평


허용된 범위 바깥으로 이명박들이 감히 이탈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저항하기로 한다. 거리로 나서서 다시 역사를 직접 담당키로 한다. (최장집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바로 그게 촛불이다.


이명박들이 지금 과속에 역주행까지 서슴없이 해대는 것은 촛불에 덴 트라우마 때문이다. 자꾸만 되살아나는 그 두려운 경험을 잊기 위해서라도 돌격해야 한다. 더구나 해먹을 시간은 자꾸자꾸 가는데, 봄은 꼬박꼬박 올 것이고 사람들은 ‘6.10’을 잊고 넘어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이명박들은 깨달아 가고 있다. 사람들이 노무현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지금은 견찰과 떡찰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갱제에 대한 자신감도 잃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전 국토의 공사판, 초조와 불안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익숙한 곳, 돈깨나 만질 수 있는 그곳, 그리운 청계천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갈 것이다. 사상자를 무수히 내면서.    


물론 과속 역주행의 운명은 익히 알려져 있다. 둘 중 하나다. 스스로 전복되거나 아니면, 불가피한 충돌 끝에...

 

ⓒ 초모룽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