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03

기로에 선 이명박 정권


BY 2009-02-10

우리 속담에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말이 있지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이런 속담을 들어왔던지라, 자연스럽게 저 속담이 내포하고 있는 세계관을 체화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먹으면서는 전혀 다른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목수는 좋은 도구를 많이 갖고 있는 목수'라는 것이지요. 출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 vs 좋은 도구를 많이 갖고 있어야 훌륭한 목수.


두 가지 속담이 어쩌면 다른 얘기를 하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표현의 강조점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정반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굳이 레떼르를 붙이자면 전자가 관념론, 후자가 유물론. 전자가 동양적 세계관, 후자가 서양적 세계관...

저는 이명박을 보면서 '좋은 도구는 엄청 많이 갖고 있는데, 그 도구들을 전혀 쓸 줄 모르는 허접한 목수'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명박이 갖고 있는 좋은 도구는 스스로 장만해서 사용하고 그래서 손에 익은 그런 도구들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 때문에 자연스럽게, 법적인 보장 위에서 주어지는 그런 도구들이죠. 그 도구들 가운데에는 전임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공들여 준비해 물려준 것들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막강합니다.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처리해야 할 사안에 따라서, 상대해야 할 인물이나 세력에 따라서, 객관적인 주변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대통령은 그 가운데 적당한 도구를 골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이 취임 이후 보인 행태는 그 도구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해서 그 도구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있는 대통령이라면 그 도구를 잘 사용할 뿐만 아니라 더 정교화해서 차기 대통령에게 물려주는 대통령이라고 해야겠지요.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이명박은 농림수산식품부 관리와 전문가들의 경험과 전문성, 조언을 무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해체한 뒤 우리나라 IT 경쟁력이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제2롯데월드에 대한 공군 전문가들의 판단은 이미 마무리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대중문화와 순수문화를 막론하고 바짝 강화되고 있는 검열은 지난 10년간 가까스로 숨통을 트였던 창작의 영역을 질식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자신과 언론의 긴장관계에 대해 "언론과 권력이 서로 부정한 거래를 하지 않아 좋고, 언론이 알아서 정부와 공무원의 부정부패/비리를 감시해주니 매우 좋은 시스템"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이렇게 간단한 원론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칙은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쉽습니다. 그리고 한번 무너진 원칙은 권위를 갖기 어렵고, 권위를 갖지 못하는 원칙은 대개 무용지물입니다.


언론의 자율성이 무너지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될 때 그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큰 손해로 이어질지에 대해 이명박은 아예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지난 10년에 비해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긴장이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 전체에게 향후 매우 높은 비용 지불을 요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명박이 훼손한 남북관계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그 훼손된 가치를 통해 우리가 상실한 기회가 얼마나 많은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이명박은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자산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망가뜨렸습니다. 그러니 점점 대통령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줄어들게 됩니다. 남북관계의 예만 보더라도 이명박은 북한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무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비핵개방 3000? 심지어 시베리아 천연가스관을 북한을 통해 연결하겠다는 얘기도 했지요? 그거 잘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명박이 지난 연말에 갑자기 교육인적자원부 고위 공무원들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하도록 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교육인적자원부 외에도 상당수 부처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이명박은 매우 불만이 많으며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청와대 참모들조차 '대통령 울렁증'이 생겼다는 소문도 들려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명박은 지하 벙커에 들어갔고, 곧이어 이번 용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모든 사태의 진전이 보여주는 것은 간단합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거의 없어져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명박 집권 이후 '공무원들을 공격한 것이 이명박의 치명적인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은 사실상 지지계층이 없는 정치인이며, 그런 그로서는 공무원들이야말로 국정 수행의 절대적인 동반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 얄팍한 대가리로 공무원들을 판단하고 마치 개혁의 걸림돌인 것처럼 씹어대더군요.


사실은 공무원들처럼 부리기 쉽고, 공무원들처럼 부리기 어려운 조직도 없습니다. 공무원들에게 항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노동삼권조차 누리기 어려운 조직입니다. 따라서 무척 부리기 쉬운 조직이지요. 하지만 공무원들처럼 마음대로 자르기 어려운 조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부리기 어렵습니다. '복지부동'은 이런 특징을 잘 짚은 표현입니다. 이런 공무원들을 잘 부리는 방법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유능한 장관을 앉히는 겁니다. 장관이 유능하고, 업무를 잘 파악하고, 휘하 핵심 인재들을 잘 휘어잡으면 그 부처는 잘 돌아갑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별로 걱정할 일이 없지요.

문제는 이명박이 과연 유능한 장관을 앉혔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강부자, 고소영, S라인, 어륀지, 만사형통, 리만브라더스 등등 이명박의 인수위 시절부터 일세를 풍미했던 온갖 인사 관련 유행어를 다시 한번 기억에 떠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 현인택 통일부장관 내정자야말로 압권이더군요. 화룡점정, 점입가경, 청출어람, 다다익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등등... 표현할 단어가 부족하다는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둘째, 이것이야말로 진짜 핵심인데, 바로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신념, 소신, 능력으로 공무원들을 감복시키고 변화시키고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장관을 잘 앉히는 것이야 어떻게 보면 임시방편이고, 확률도 높지 않습니다(유능한 장관감이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경륜은 비록 속도는 좀 느려도 가장 확실하게 전체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자발적으로 공익을 위하여 헌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명박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것도 이 부분입니다. 공무원들은 상사 앞에서는 얼마든지 말 잘 듣는 공복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 추진은 다릅니다. 본인들의 소신과 신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업무 추진이 겉돌기 마련입니다. 표면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그 실제 성과는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이런 경험이 결정적으로 '이명박의 영이 서지 않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명박으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위 공무원들을 전부 갈아치우고 싶은 것이구요.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나요?


결국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치켜든 게 바로 벙커요, 강경진압입니다. 실제로 이명박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공무원 조직은 그나마 검찰이나 경찰 등에 불과했다는 얘기입니다.

경찰이나 검찰은 공무원 조직 내에서도 상명하복 위계질서가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경찰은 더욱 그렇지요. 이번 용산 참사는 궁지에 몰린 이명박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수단이 낳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만 삑사리가 났지요. 사실은 이 삑사리도 이미 예고됐던 거라고 봐야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래도 민주경찰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사람 잡아본' 경험이 없는데, 당장 변화된 매뉴얼과 프로세스에 적응하려니 사고가 터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지금 이명박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것, 이대로 가면 그 결말이 뻔하다는 것을 이명박도 느낄 겁니다. 이명박이 그걸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조짐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KBS 경영진은 회사 내 반이명박 PD 등을 대상으로 초강경 징계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언론 파업과 맞물려 긴장이 조성되는 상황이었는데, 얼마 뒤 갑자기 징계 수위를 대폭 낮췄습니다. 지난 연말 MB 악법 통과가 무산된 것과 맞물려 이명박이 맞본 대표적인 정치적 패배입니다. 작은 변화 같지만, 이것이 보여주는 조짐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또 하나 얼마 전 박근혜까지 포함한 한나라당 중진들과의 대화입니다. 그 모임은 사실상 박근혜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일 케이크까지 준비해 박근혜를 배려하는 모습, 실은 이명박이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태도입니다. 이명박이 그렇게 싫어하는 박근혜의 도움을 요청할 정도라는 얘기입니다.


이명박이 최근 극우 인사들의 발언이나 요청에 대해 부쩍 염증을 낸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자신의 권력으로 극우인사들의 요구 정도는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만만치 않고 일이 점점 더 꼬여가기만 하는 데 따른 반응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 사실 이명박으로서는 어떻게든 최소한의 명분만 세우고 실제로는 용산참사에 항의하는 세력들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명박이 고수해온 정치적 태도나 원칙 등으로 보자면 이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뉴라이트나 조갑제 무리가 격렬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명박은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


내 짐작으로는 이명박은 지금 소프트랜딩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인 방향성으로 보자면 너무 당연하고,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하지만 저 시도가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방향 전환의 시기, 항공기로 치자면 이/착륙 시점에 위험이 극대화되는 법입니다.

게다가 이명박은 저런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자산과 도구들을 함부로 망쳐버렸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경찰력이라는 무기조차 이번 김석기의 사퇴로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쓸 수 있는 무기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저는 앞에서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 vs 좋은 도구를 많이 갖고 있어야 훌륭한 목수' 이 두 가지 명제가 실은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좋은 도구를 많이 써보지 못해 사용할 줄도 모르고, 그래서 온갖 훌륭한 도구들이 엉터리라며 연장 탓만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명박에게 연민의 정도 느낍니다. 그저 밀어붙이는 것, 다른 사람들 다 무시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영혼이죠. 하지만, 온 세상이 저런 인간의 지 조때로 기준에 맞춰 돌아갈 수는 없는 겁니다.


이런 소리 하면 이명박 지지자, 노무현 지지자 양쪽 다 싫어하겠지만 저는 사실 '노무현이야말로 이명박의 미래'라고 보는 편입니다. 아마 둘 다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개념은 많이 다르겠지만, 결국 두 사람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는 신자유주의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하자면 한미FTA의 추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문제는 이명박이 노무현의 결론 지점이 아니라, 노무현의 출발점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보자면 노무현이 임기 마무리 시점에 도달한 결론에서 출발하는 신자유주의자 대통령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노무현의 임기 시작 시점도 아니고 과거 인권 변호사 시절의 문제의식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 숙제를 언제 다 할까요? 내가 보기엔 이명박이 임기 안에 그 숙제 못합니다. 다만 임기 끝날 때 쯤에는 "아, 내가 무슨 숙제를 해야 했는데..." 이 정도 자각은 가질 수도 있으리라고 기대해봅니다. 하지만 이명박이 그 숙제 해내기를 기다리기에는 우리나라 사정이 너무 급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명박 본인을 위해서나 우리나라를 위해서나 이명박이 어떤 방식으로건 빨리 물러나는 것이 최선의 결과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